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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이 부른 혹한기’ 후방산업까지 흔들, 반도체·배터리 업계 긴축경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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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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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인피니언· NXP·ST마이크로, 대규모 구조조정 착수
반도체부터 배터리까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먹구름
얼티엄셀즈·SK온 등 생산기지 투자 중단 등 조정 검토
Infineon Technologies TE 001 20240808

미국 인텔, 독일 인피니언, 네덜란드 NXP, 프랑스·이탈리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에 더해 미국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글로벌 반도체 공룡들이 잇따라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도 안전지대가 아니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자생력이 약한 반도체 설계 업체들을 중심으로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에 부는 '한파'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인피니언은 5일(현지시간) 컨퍼런스콜에서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했다. 전체 직원 5만8,600명 가운데 약 2.5%인 1,400명을 줄이고, 선진국 법인 직원 1,400명을 저임금 국가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이 골자다. 한국에 있는 후공정 공장을 대만의 패키징 업체 ASE에 매각하는 방안도 이날 확정했다. 이를 통해 인피니언은 2027년까지 11억 유로(약 1조3,5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세계 2·3위권 차량용 반도체 업체도 올해 실적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등 긴축에 들어갔다. 세계 2위 기업인 NXP는 최근 3분기 매출 목표치로 31억5,000만~33억5,000만 달러(약 4조3,000억~4조6,000억원)를 제시했다. 이는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평균)인 33억6,000만 달러에 못 미치는 수치다. 세계 3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올해 연간 매출 목표를 기존 140억~150억 달러(약 19조2,500억~20조6,500억원)에서 132억~137억 달러로 낮춰 잡았다. 두 회사가 매출 목표를 하향 조정한 만큼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도 비용 절감을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에 전체 직원(10만 명)의 15%인 1만5,000명을 감원하고, 4분기 배당금 지급을 유예하기로 했다. 인텔은 이를 통해 100억 달러(약 13조8,000억원)를 절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텔의 2분기 매출은 128억,3000만 달러(약 17조6,400억원)로 컨센서스(129억4,000만 달러)를 하회한 데다 3분기 매출도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인텔은 내년을 기약하는 상황이다. 18A 공정 주력의 코드명 팬서레이크(Panther Lake) 프로세서와 서버용 프로세서인 클리어워터 포레스트(Clearwater Forest) 시험 버전의 부팅을 끝내고, 내년에 본격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두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 18A 공정의 성능이 입증되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주로 기사회생하겠다는 목표다.

국내 반도체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대기업 외에는 현재 인력을 유지하지 조차 힘든 것이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의 경우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다. 소재·장비 등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메모리나 파운드리 등 제조업과 달리, 팹리스는 급여가 예산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감원 외에는 비용 절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불안정성도 팹리스업계의 감원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다리 역할을 담당하는 디자인하우스업계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주요 고객과 파운드리 기업들이 직접 반도체를 제작하고 있어서다. 톱 다운 방식으로 디자인하우스에 주문을 내려주는 대만과 달리 한국에서 디자인하우스는 영업사원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AI 반도체 기업들이 올해와 내년 중 일제히 칩을 양산하게 되면 옥석 가리기에 처해질 운명이다.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경우 인력을 가장 먼저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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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 후폭풍에 배터리업계도 휘청

반도체업계에 긴축 바람이 부는 데는 전기차 캐즘의 영향이 크다. 수년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던 세계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접어들자 완성차업계가 생산량을 하향 조정했고, 이에 차량용 반도체업체뿐 종합반도체업체들도 유탄을 맞은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1,407만 대로 전년 대비 33.5% 증가했다. 판매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2021년(109%), 2022년(56.9%)과 비교하면 성장세 둔화가 뚜렷하다. 국내 시장만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2022년에 걸쳐 국내 전기차 판매는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2023년에는 전년 대비 1.1% 역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6만5,557대로 전년 동기보다 16.5% 감소했다.

전기차 캐즘 여파에 배터리업계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최근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 짓고 있는 ‘합작 3공장’의 건설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얼티엄셀즈 3공장은 총 26억 달러(약 3조6,000억원)가 투입되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로, 2022년 착공해 올해 하반기 준공 예정이었다. SK온도 포드와 추진 중인 켄터키주 합작 2공장의 양산 시점을 2026년 이후로 미룬 상태며, 삼성SDI 역시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2개의 배터리 공장을, GM과 인디애나주 뉴 칼라일에 1개의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가동 시점이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대외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올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도 연초 기대치에 못 미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SNE리서치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6.6%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업계는 당초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전년 대비 20%대 중반 이상 성장할 것으로 봤으나, 현재로선 성장세가 10%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도 올해 들어 2026년까지 판매될 전기차 전망치를 작년보다 13.5%(670만 대)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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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고객사들도 업황 부진, '감원 칼바람' 지속

반도체업계 부진을 견인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반도체 기업들의 고객사인 글로벌 빅테크의 실적 악화가 지목된다. 이에 기업들의 해고 칼바람도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애저 클라우드 사업부에서 대대적인 인력 해고를 감행했다. 애저 클라우드 사업부 내 애저 포 오퍼레이터(Azure for Operators) 및 미션 엔지니어링(Mission Engineering)팀이 주요 구조 조정 대상으로, 해고 인력은 1,500명에 달했다. MS는 지난 1월에도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와 엑스박스(Xbox)에서 1,900명을 해고한 바 있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 역시 급성장 중인 클라우드 사업부에서 대규모 해고를 진행 중이다. 올해 1월, 4월, 5월에 걸쳐 모두 57개 직책을 없애고, 지속 가능성, 컨설팅, 파트너 엔지니어링에 중점을 둔 팀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여러 클라우드 팀에서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고 있다. 광고 영업팀에서도 수백명의 직원을 해고했으며 어시스턴트(Assistant) 부문과 픽셀(Pixel), 네스트(Nest), 핏빗(Fitbit) 하드웨어를 관리하는 팀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애플도 전기 자동차 프로젝트를 포기한 후 600여 명을 해고했고, 이에 더해 자율 주행 전기 자동차 프로젝트와 관련한 수백개의 일자리도 없앴다. 델 역시 지난해 1만3,000명의 직원을 감축한 데 이어 올해도 전 세계에 있는 자사 직원 6,000여 명을 해고했다. 이처럼 IT업계에서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매월 대량의 해고가 이어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1월에는 19,350명의 인원 감축이 있었고, 2월에는 15,589명, 3월에는 7,403명의 감원이 단행됐다. 4월에는 22,153명이 해고된 데 이어 5월에는 9,882명, 6월에는 10,083명이 회사를 떠났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해고 삭풍이 하반기에 더욱 강도를 더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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