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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이커머스 정산 기한 규제 본격화
티몬·위메프, 업계 대비 정산 기간 길게 설정해 판매 대금 유용
"개정안 실효성 부족하다" 업계·국회 등 의견 대립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통해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기한을 최대 20일로 설정한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시장 혼란을 야기한 티몬·위메프(티메프)가 긴 정산 주기를 악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선제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정위의 대책이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커머스 대금 정산 체계 도마 위로
2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18일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안을 발표,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기한 및 판매 대금 관리 체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공개한 개정 방안에 따르면 매출액 100억원 혹은 거래 규모 1,000억원 이상인 국내 온라인 중개 거래 플랫폼은 최대 20일 내로 판매 대금을 판매자에게 정산해야 한다. 숙박·공연 등 소비자가 구매를 먼저 한 뒤 서비스가 나중에 공급되는 경우 소비자가 실제 이용하는 날을 기준으로 10일 안에 정산해야 한다.
이커머스 업체가 금융기관에 별도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해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판매 대금 비율은 50%로 정해졌다. 예치된 판매 대금은 압류할 수 없고, 플랫폼이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공정위의 법률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장을 뒤흔들었던 티메프 미정산 사태의 배경에는 긴 정산 기간으로 인한 유동성 관리 문제가 있었다"며 "공정위가 법률 개정을 통해 이커머스의 정산 및 대금 관리 체계를 손보면 사태 재발 위험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티메프 정산 주기, 여타 업체 대비 길어
실제 티몬은 매월 마지막 날부터 40일 이후, 위메프는 월 매출 마감 이후 두 달 뒤 7일에 정산금 100%를 지급해 왔다. 이는 국내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에 비해 매우 긴 수준이다. 대부분의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은 1~3일 내 '빠른 정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11번가는 2008년 론칭 때부터 '에스크로 서비스'(구매 안전 거래 시스템)를 통해 일반정산을 실시하고 있다. 11번가의 일반정산은 고객이 구매 확정을 한 이후 이틀 안에 정산금을 100% 지급하는 방식이다. 지마켓은 구매 고객이 구매를 확정한 다음 날 판매 대금을 지급하며, 고객의 구매 확정이 없더라도 배송완료일로부터 최대 9일 안에 정산 대금을 지급한다. 네이버쇼핑 역시 택배사에 제품이 집하 완료된 다음 날 100% 정산하는 빠른 정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단 이커머스 업계 1위 업체인 쿠팡은 여타 업체들 대비 정산이 느린 편이다. 쿠팡에 입점한 판매자는 '주 정산'과 '월 정산' 중 정산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 주 정산은 판매 금액의 70%를 판매된 주 일요일에서 15영업일 이후 먼저 정산받고, 이후 나머지 30%를 익익월 1일에 정산받는 방식이다. 월 정산을 선택할 경우 매달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영업일 15일 후에 판매 대금 100%를 정산받을 수 있다. 다만 빠른 정산(하나 체크카드 발급 이용자 한정)으로 정산받으면 고객이 해당 거래에 대한 구매를 확정한 이후 하루 안에 90%의 거래금을 정산받게 된다. 나머지 10%는 주 정산·월 정산 선택에 따라 기존 정산일에 정산받을 수 있다.
개정안에 대한 업계 평가
이런 가운데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국내 대부분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주기가 20일보다 짧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공정위가 이커머스 1위 업체인 쿠팡의 정산 주기에 발맞춰 법률을 개정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지난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를 통해 혜택을 보는 기업이 쿠팡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체 29곳 중에서 19곳이 이미 10일 이내 정산 주기를 사용하는 곳"이라며 “쿠팡을 제외한 대부분 플랫폼이 정산 주기를 1~3일로 하고 있는 만큼 법정 정산 주기를 '20일 내'보다 더 짧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너무 급격하게 정산 주기를 줄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산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자금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은 신생 기업의 이커머스 시장 진입과 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벤처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도입은 기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은 물론이고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이커머스 산업에 진입하려는 벤처·스타트업의 혁신 의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태조사 등 업계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10일∼20일 이내의 정산 주기가 도입되면 이커머스 플랫폼은 정상적인 사업 확장과 혁신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며 "결국 관련 산업 전체의 줄폐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내다봤다.
학계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입법조사처·플랫폼법정책학회 공동 주최 특별세미나 ‘플랫폼 규제 법안의 주요 쟁점과 전망’ 종합토론에 참석, “정산 주기를 20일 이내로 당기면 당장 신생 기업들이나 성장해야 할 플랫폼 기업들은 맞추기가 어렵다”며 “쿠팡 등 대기업은 (단축된 정산 주기를) 맞출 수 있겠지만 마이너한 플랫폼들은 이를 못 맞추기 때문에 독과점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