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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가스 기준 초과 차량 10만5,000대 이상 판매 美 정부 당국에 16억 달러 벌금·보상금 지불하기로 스바루, 다이하쓰 등 도요타 자회사 조작 스캔들
일본 도요타 자동차 그룹의 트럭 등 대형 엔진 제조 자회사인 히노(日野) 자동차가 미국에서 판매한 디젤 엔진 트럭의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혐의를 인정하고 16억 달러(약 2조3,300억 원)의 벌금과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지난해 도요타의 자회사인 다이하쓰로부터 촉발된 일본 자동차 업계의 성능 조작 스캔들에 이어 또 다시 도요타 자회사의 부정조작 행위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글로벌 자동차 1위 도요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과에만 매몰된 기업 문화가 일본 자동차의 기술 리더십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美 당국 "인증 부적합 사실 알고도 데이터 조작"
미국 법무부는 16일(현지시각) "일본 히노자동차가 지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배출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차량 10만5,000대 이상을 판매한 혐의를 인정했다"며 "벌금과 보상금을 합해 총 16억 달러(약 2조3,000억원)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히노 측이 지불할 벌금은 형사 벌금 5억2,176만 달러(약 7,600억원), 민사 벌금 4억4,250만 달러(약 6,400억원), 캘리포니아주 벌금 2억3,650만 달러(약 3억4,000억원) 등으로 미시간 동부 연방지방법원의 승인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히노의 부적합 엔진에 대한 조사는 지난 2019년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히노의 인증 신청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배출량 데이터의 불일치를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CARB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와 추가 점검을 진행해 2010~2019년식 중대형 트럭 엔진에서 미승인 보조 배출 제어 장치가 탑재된 것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이 부적합 엔진은 미국 전역에 히노가 제조·판매한 중대형 트럭에 장착돼 연방 정부와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기준치를 초과하는 질소산화물이 배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 정부 당국은 "히노는 인증 요건을 알고도 규정을 우회하기 위해 수년 간 배기가스 데이터를 조작해 엄청난 규모의 대기 오염을 유발했고, 나아가 미국의 환경 및 소비자 보호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히노의 이번 합의에는 초과 배출량 상쇄를 위한 1억5,500만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과 2017~2019년식 대형 트럭 엔진에 대한 1억만 달러 규모의 리콜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 아울러 5년간 히노 디젤 엔진의 미국 수출을 금지하고 포괄적인 규제 준수 및 윤리 프로그램을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20년 동안 배출가스·연비 조작해 일시 생산 중단
히노의 연비 조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히노는 무려 20년 동안 배출가스와 연비 관련 조작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히노는 2016년 가을 이후 시험을 시행한 트럭과 버스 8개 차종에 대해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했다고 발표했는데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부정조작을 저지른 시기와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것이다. 특조위는 히노가 배출가스 관련 규제를 시작한 2003년 이래 생산 차종의 열화 내구시험 때 부정행위를 저질러왔으며 연비와 관련해서는 2005년 규제 이래 대형 엔진에서 부정행위를 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히노는 부정조작이 발생한 원인으로 짧은 납기에 맞추기 위한 압박과 함께 엔진 개발과 성능시업 부서가 같았으며 감시체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문제의 엔진을 탑재한 8개 차종의 '형식 지정'을 취소했다. '형식 지정'은 자동차의 성능을 유지하고 대량생산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조치로 1951년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지정이 취소됐다. 이에 따라 당시 거의 모든 트럭과 버스 차종의 일본 내 출하가 일시적으로 전면 중단된 바 있다.
이외에도 국토교통성은 부정행위가 밝혀진 엔진 외에도 현행 생산 엔진 14기종 가운데 12기종에서 배출가스 장거리 내구시험 부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이중 건설기계용 등 4개 기종은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고 나머지 8개 기종은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히노 측은 기준 부적합 차량의 생산을 자체적으로 정지했지만 국토교통성은 기준 적합 차량에 대해서도 출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기준 부적합 엔진을 탑재한 차량을 리콜하도록 하는 지도 조치도 취했다. 리콜 대상 차량은 2만900대 규모다.
부정조작과 관련한 논란은 곧 재정적인 손실로 이어졌다. 당시 히노는 배출가스 조작 1개 기종을 탑재한 차량 4만7,000대에 대해 리콜을 시행했는데 리콜 비용 증가 등으로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에 사상 최대인 847억엔(약 8,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독일 다임러 트럭 산하의 미쓰비시 후소와의 경영 통합에 대해 기본 합의를 이루었으나 부정조작으로 인한 제재금과 미국·호주 등의 집단소송으로 인한 배상금이 거액에 달할 가능성으로 인해 재무 불안을 이유로 통합 시기를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도요타 성과중심 문화가 성능조작으로 이어져
지난해 히노의 모회사인 도요타자동차는 2017년 스바루, 2022년 히노에 이어 자회사의 품질인증 조작 스캔들로 또 다시 곤욕을 치뤘다. 2023년 말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요타의 자회사 다이하쓰공업이 자동차와 엔진을 대량 생산할 때 필요한 형식 지정 취득 과정에서 에어백 성능 시험 등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2024년 1월에는 차량 엔진, 지게차 등을 만드는 자회사 도요타자동직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도요타자동직기는 성능 테스트 때 ECU(전자제어장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차량 출력을 일시적으로 높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디젤 엔진 3종의 성능을 조작했다.
다이하쓰가 촉발한 성능 조작 스캔들은 일본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1월 85개사를 대상으로 과거 10년간 유사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하도록 지시했고 같은 해 6월 도요타를 비롯해 마쓰다, 야마하발동기, 혼다, 스즈키 등 5개 업체로부터 자동차 성능 시험에서 조작행위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도요타의 경우 단종된 4개 모델을 포함해 총 7개 차종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도요타는 보행자와 탑승자 보호 시험과 관련해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토교통성은 현재 생산 중인 코롤라 필더, 코롤라 악시오, 야리스 크로스 등 3개 모델에 대해 출하·판매 정지를 지시했다.
도요타 내부에서 이 같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도요타 자체 조사위원회는 성과와 수익에 집착하는 목표 지향적 문화, 비판을 어렵게 하는 상명하복 분위기 등이 성능 조작까지 이르게 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신차 개발 과정에 시간과 인원이 부족한데도 양산일 준수 지시가 내려오면 이를 무조건 지키기 위해 영업 직원들까지 강당에 모아두고 개발을 돕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3도어로 개발된 차량을 경영진이 5도어로 바꾼 경우도 있었는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성능 개선 관련 일부 과정을 건너뛰기도 했다. 이 같은 일정 단축 압박이 결국 성능 제고 대신, 조작을 통한 눈속임을 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도요타 조사위는 “값이 싸면서도 성능 좋은 차를 단시간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품질 부정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경영진의 현장 소통 부족도 지적된다. 도요타는 2000년대 들어 ‘세계 1위’, ‘1000만대 생산’ 등을 목표로 정하고 자회사 등에 ‘더 빨리 많이 만들라’는 주문을 넣었다. 현장에 과중한 일감을 부여한 것인데, 이게 달성되면 ‘극한으로 몰아야 성과가 나온다’라고 자화자찬식 경영 전략을 이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사이 현장에선 눈속임과 조작이 계속됐지만, 경영진은 내부 고발 등이 있기 전까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사토 고지 CEO는 이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장 근로자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