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당위성 없으면 보험사가 지급보증 중지, 보험료 3% 인하 효과 과잉정비 금고형 확정 시 사업 취소, 약물운전 보험료 20% 할증 청년층 '부모 보험 무사고' 3년 인정, 지급보증 절차 전자화

앞으로 자동차 사고 시 가벼운 부상을 입은 환자는 장기치료 보험금을 받기 까다로워진다. 자동차 보험금을 과다 수령하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없애기 위한 조치로 경상 환자가 8주 넘게 장기 치료를 받으려면 보험사에 추가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그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보증이 중단된다. 정부는 과잉 지급되는 합의금과 치료비 등 보험금 누수를 막아아 향후 가입자의 자동차 보험료가 3% 남짓 인하될 것으로 추산한다.
나이롱 환자 급증에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대책 마련
26일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국민의 자동차보험료 부담 완화와 사고 피해자에 대한 적정
배상을 지원하기 위해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그동안 약관 등 근거 없이 관행으로 지급하던 향후치료비(합의금)은 치료 필요성이 큰 중상환자(상해등급 1~11급)에 한해 지급하도록 근거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23년 기준 경상환자에게 지급된 합의금만 1조4,000억원으로, 치료비(1조3,000억원)보다 커 보험금 누수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앞으로는 염좌 등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가 8주를 초과하는 장기치료를 희망할 경우 보험사에 진료기록부 등을 제출해야 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끼어들기로 인한 비접촉 사고에도 피해 운전자가 급정거로 인한 근육 긴장·염좌 등으로 202회 통원치료를 받아 1,340만원 상당의 치료비를 받은 사례도 있었는데, 이같은 과잉 진료 및 보험금 누수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보험사는 장기치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지급보증 중지계획을 환자에게 안내할 수 있고 향후치료비를 받으면서 건강보험 등 다른 보험으로 중복 보험금을 타는 행위도 ‘이중 수급’으로 보고 막기로 했다.
마약·약물 운전에 대해서도 음주운전 등 다른 중대 교통법규 위반과 마찬가지로 보험료 할증 기준(20%)을 마련하고, 마약·약물 운전, 무면허, 뺑소니 차량 동승자에 대해서도 음주 운전 차량 동승자와 같이 보상금을 40% 감액해 지급한다. 아울러 사회 초년생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부모의 자동차보험으로 운전한 청년층(19~34살)의 무사고 경력을 새로 인정하기로 했다. 배우자 차량을 이용하는 운전자도 운전자한정특약 종류와 무관하게 무사고 경력을 최대 3년 인정받는다. 현재는 배우자 ‘부부한정특약’으로 운전한 경우에만 무사고 경력을 인정한다. 정부는 이번 개선안을 통해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줄어 개인의 자동차보험료가 3% 안팎으로 낮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경상환자 과잉진료에 보험료 폭증하고 손해율 늘어나
그동안 연간 발생하는 경상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과잉 진료를 받으면서 보험금이 폭증해 이것이 결국 손해율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한국에선 경상환자 진료비가 심각한 정도의 부상을 입어 중상환자로 분류된 사람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자동차 사고 경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85만3,000원으로 2014년 30만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중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1.56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상환자의 치료비 증가율이 중상환자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여기에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음에도 보험으로 최대한 오래 치료받으려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4대 손보사에서만 106만6,000여 명이 경상환자로 진단 받았다. 문제는 이들 경상환자 가운데 치료 필요 기간을 부풀리거나 진단서 발급 횟수를 늘려 장기 치료 모드로 돌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작년 말 서울 강남에서 차량 수리비가 23만원에 그친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한 커플이 병원 치료비와 합의금으로만 1,700만원의 보험금을 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지급 보험금 상승의 원인이 됐다. 4대 손보사에 따르면 통상적 경상환자(2주)의 2배가 넘는 4주 초과로 진단받은 사람이 약 18만5,000명으로 이 중 4만7,000여 명은 진단서를 3회 이상 발급받았다. 진단서만 18회 이상 떼어간 사람도 140명이나 됐는데, 진단서를 18번 받으면 일반적으로 치료 기간이 40주로 늘어나게 된다. 실제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 증가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경상환자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상해 12급은 평균 진료 기간이 2021년 35.8일에서 2022년 37일로, 203년에는 37.6일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더 등급이 낮은 13급은 2022년 49.7일에서 2023년 72일까지 늘어 더 큰 부상을 입은 12급보다 진료 기간이 긴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반면 자동차 사고 자체는 줄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교통사고 건수는 19만8,296건으로 2019년 20만9,664건과 비교해 1만건 이상 감소했다. 과잉 진료는 건강보험 누수 요인이 될 수 있고 자동차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배경이 된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KB손보, 메리츠화재, 롯데손보, 한화손보 등 7개 손보사의 올해 1~8월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0.9%다. 전년 같은 기간(78.4%)보다 2.5%포인트 오른 수치다.
나이롱 환자 막으려다 선의의 피해자 생기지 않아야
일각에서는 중증환자에게만 합의금을 지급하도록 약관을 개정하는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나이롱 환자들이 향후치료비를 받는데 악용한 질환들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뇌진탕은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기만 해도 진단서가 발급되는 일이 많아 '나이롱 환자'를 만드는 주된 항목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해등급 11등급의 중상으로 분류돼 이번 대책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규제 풍선효과'로 뇌진탕 치료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부 등 관계부처가 안건을 논의한 지난해 12월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도 이런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뇌진탕을 경상에 해당하는 상해등급 12등급으로 내리거나 아예 경상환자의 범위를 상해 11등급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023년에도 경증환자가 4주 이상 치료 시 2주마다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약관 제도를 변경했지만, 당시에도 현장에서 일부 환자들이 제도를 우회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뇌진탕 진단을 받아내는 일이 많았다.
경증환자의 치료기간이 늘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향후치료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상환자들이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으며 치료기간을 늘리면 결과적으로 보험금 누수를 잡는 데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경증환자의 치료기간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통상적인 치료기간(8주)를 초과하는 경우 보험사가 진료기록부를 제출받아 치료의 적정성을 판단하고, 치료비 지급보증을 중지할 수 있게 권한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는 환자의 권익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체 손상이 아니더라도 허리나 목 등에 후유증이 남아 만성질환이 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입는 환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문가들은 "일탈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전체 대상자의 치료 기회 자체를 줄였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노출될 수 있다"며 "제도에 담긴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