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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부과 대상 전 산업으로 확대
中 후공정·재수출 교역 구조 변화 전망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투자 ‘과열’ 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급속하게 전선을 넓히는 모습이다. 고율 관세의 대상이 중국산 제품이나 철강 등 일부 품목으로 한정됐던 과거와 달리 반도체, 자동차 등 전 산업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약속한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집행 역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에도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방법은 달라도 ‘미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한뜻
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주최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프라이오리티 서밋’에 참석해 “이른 시일 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에 대해 관세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들(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간단히 말해 관세를 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면 된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의 역점 사업인 반도체지원법(CHIPS Act·칩스법) 보조금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 직후 나온 것으로 눈길을 끌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보조금 지급 조건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한 노조 가입 노동자 고용,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저렴한 자녀 보육 서비스 제공 등 조건이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2002년 8월 제정된 칩스법은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에 대해 390억 달러(약 57조원)의 보조금과 132억 달러(약 19조원)의 연구개발(R&D) 지원금 등 5년간 최대 527억 달러(약 77조원)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서둘러 보조금 최종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집행은 트럼프 행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칩스법 시행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면서 해당 법률에 따라 보조금을 받기로 한 기업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는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370억 달러(약 53조4,000억원) 이상 투입되는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가 해당 공장을 건설하면서 미 상무부에서 지원받기로 한 보조금은 47억4,500만 달러(약 6조8,000억원)다. SK하이닉스 또한 인디애나주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면서 미 상무부로부터 최대 4억5,800만 달러(약 6,6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계약한 상태다.
중국 사업 지속에도 먹구름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칩스법에 따라 자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중국 생산 시설을 유지 중인 기업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산업으로서는 보조금 삭감에 대한 우려를 높이는 대목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부품·소재·장비를 수출한 후 중국에서 후공정을 거쳐 메모리 반도체를 재수출하는 교역 구조가 주를 이룬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의 40%가량을 생산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이 어떤 식으로 관세를 부과할지 의문”이라며 “반도체 직수출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 관세율이 발표되면, 관세로 늘어나는 비용과 미국에 공장을 구축하는 비용을 저울질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 철수를 택할 경우, 기존 생산 시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떠안을 손해 또한 막대할 전망이다. 이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중국을 벗어난 여타 기업의 실패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은 과거 중국 소형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해 설립했던 합작 사업에서 해마다 적자를 거듭한 끝에 남은 지분마저 모두 포기하고 손을 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LG화학이던 당시 중국 베켄테크놀로지와 소형전지 합작사 ‘장시VL배터리’를 설립했다. 창립 첫 해 4억원의 적자를 거둔 장시VL배터리는 2021년 102억원, 2022년 19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실적이 악화했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은합작사 지분 모두를 베켄 측에 무상양도하고 2023년 상반기에만 125억원의 손상차손과 13억원의 지분법손실을 인식했다.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와 대중 압박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로선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이은 대규모 투자, 트럼프의 근거 있는 자신감
일각에선 칩스법 축소 또는 폐지가 미국의 AI 기술 패권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가 미국의 반도체 생산을 위축시키고, 이는 연구 성과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AP통신은 “대부분 국가가 반도체 생산과 수입을 늘리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대세를 거스르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 같은 우려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의지를 거듭 밝히는 가운데서도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 소식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대만의 TSMC가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6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미국의 AI 반도체 패권 경쟁에 힘을 보탰다. 3일 웨이저자 TSMC 회장과 백악관에서 회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TSMC는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최소 1,000억 달러를 새로 투자할 것”이라면서 “신규 투자는 애리조나주에 5개의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데 사용된다”고 밝혔다. 이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AI 반도체는 바로 이곳(미국)에서 만들어질 예정”이라며 “이것은 경제 안보는 물론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중국 또한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를 극복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AI를 포함한 기술 혁신을 꼽았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규제 완화로 제2, 제3의 딥시크(DeepSeek)를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4일 막을 올리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AI 기술 강화는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1인 체제를 확고히 했던 만큼 올해 양회에서는 정부조직 개편보다는 경제 회복과 첨단 산업 육성 정책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게 학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