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기업회생, 계좌 인출 시 법원 허가 必 “CP 발행 잔액 및 가용 현금 충분” 회복 가능 시점·선제적 대응에 방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진행하는 가운데 매장에 입점한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정산 지연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자금 회전이 빠듯한 중소 협력업체의 경우, 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연쇄적인 피해가 불가피한 탓이다.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법원 보고 등 절차상의 문제일 뿐 가용 현금 잔액이 충분해 대금 지급에는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정산금 의존도 높은 입점사 불안감 고조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 홈플러스 매장의 일부 입점업체가 지난 1월분 대금을 아직 정산받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점포를 임대해 영업하는 이들 업체에 법원 허가를 받은 후 지급하겠다며 정산금 지급을 유보한 상태다. 일부 매장은 “1월~2월 11일까지의 대금 정산은 법원 결정에 따른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형마트 입점사는 계약 형태에 따라 임차료 지급 방식이 다르다. 이 가운데 임대갑(정액 임차료)을 제외한 임대을(매출 대비 임차료), 특약(임대을+관리비) 입점사의 경우, 정산 대상이 된다. 대형마트 계산기기(포스)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전체 매출을 집계한 후 임차료와 관리비 등을 제외한 정산금을 지급받는 식이다. 이미 발생한 매출에 대한 정산이 늦어질수록 그 여파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일부 매장에서는 아예 자체 계산 시스템을 갖추고 나서기도 했다. 홈플러스 창원지점 내 커피 매장은 마트 전용 카드단말기를 치우고 외부업체 단말기를 따로 설치했다. 홈플러스 단말기로 결제를 받으면, 정산금 지급이 늦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한 입점사 관계자는 “우리는 소상공인이라 정산금이 나와야 인건비나 재료비 같은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며 “당장 카드 대금을 낼 돈도 없어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1월 사용분은 원래 2월 말 지급 예정이었지만, 연휴로 인해 3월 4일로 지급 일정이 조정됐다”며 “다만 기업회생절차로 계좌가 막히면서 지급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 결정에 따라 1월분은 차례대로 대금을 지급할 예정이며, 2월분은 애초 예정대로 이달 말 정상 지급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자산 효율화로 실적 악화 무마
업계에서도 홈플러스가 최근까지 기업어음(CP)과 전단채 발행으로 운영자금을 확보한 만큼 입점사 정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홈플러스는 지난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여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CP를 발행해 왔으며, 현재 발행 잔액은 1,880억원가량”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해명에도 일각에선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자산 효율화를 앞세운 MBK의 경영전략이 도리어 홈플러스의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MBK의 경영 공식 중 하나가 ‘자산 효율화’인데, 이러한 공식이 언제나 효과적일 수는 없다”고 짚으며 “이번 홈플러스의 위기는 MBK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MBK가 홈플러스를 경영한 2016회계연도(2016년 3월~2017년 2월)부터 2023회계연도(2023년 3월~2024년 2월)까지 유형자산과 매각예정자산, 투자 부동산 등을 처분해 확보한 현금은 총 4조1,130억원에 달한다. 처분액 기준으로 가장 많이 매각한 자산은 유형자산으로, 점포와 점포가 들어선 토지, 점포 내 영업기구 등을 매각한 대금만 약 3조4,000억원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자산 효율화의 이면에는 악화일로를 걸은 실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 또한 제기된다. 2016년 7조9,334억원에 달하던 홈플러스 매출액은 10년 만에 6조9,315억원으로 12.6%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또한 3,209억원(영업이익률 4.0%)에서 꾸준히 줄어들어 2021년에는 1,335억원 적자 전환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10년 사이 치솟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출구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평가다.
MBK는 이번 홈플러스 회생절차는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잠재적 단기자금 이슈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전 계획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제적 기업회생 신청이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방식인 것은 맞지만,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얽힌 유통 구조에서 자칫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협의가 지연될 수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MBK와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개시로 금융채무가 유예되긴 했지만, 현금창출력과 소유 부동산 등을 고려할 때 현금수지는 머지않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제2의 티메프 사태 발생 우려
이런 가운데 일부 대기업 납품사 중에서는 홈플러스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사례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의하면 LG전자와 삼양식품, 동서식품, 오뚜기 등 주요 가전·식품업체 10곳 이상이 홈플러스에 대한 납품을 일시 중단했거나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뚜기는 “홈플러스로부터 협력업체 대금 지급 관련 공문이 지연되고 있어 주말 이후 협상 상황에 따라 공급 중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홈플러스는 대금 결제용 자금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는 전날 성명을 내고 “6일 기준 가용 현금의 잔고는 3,090억원, 3개월 동안 영업활동을 통해 기대되는 순현금 유입액은 약 3,000억원”이라며 “일반상거래 채권을 지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납품 대금을 순차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물론, 기업회생 개시일인 4일 이후 매출 또한 계약에 따라 정상적으로 대금을 지급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티몬·위메프 사태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 부실 사태가 반복될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 교수 “대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납품이 계속된다면, 협력업체들의 채권이 더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반대로 물건이 매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마트 경쟁력 또한 떨어지는 악순환에 들어서게 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위기가 국내 유통업계 전반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