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자회사 SK온에 이어 SK이노도 비상경영체제 돌입 지난해부터 전사 차원의 리밸런싱·재무개선 병행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 IPO로 자금 수혈 추진

SK그룹 에너지부문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이 조만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한다. 최근 주력 사업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회사 차원에서 위기감이 높아지자 선제적으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위기의 중심에 있는 SK온이 지난해 7월 비상경영을 선언하며 임원 연봉 동결, 희망퇴직 등에 나선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까지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며 위기감이 에너지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구성원 의견 수렴 후 '비상경영' 선포 예정
28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5월 초 '비상경영'을 선포할 예정이다. 현재 내부적으로 임원 조기출근 확대, 매주 비상경영회의 개최를 비롯해 각종 회의·교육 축소 등 비용 절감을 위한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사전 의견을 청취한 뒤 구성원의 피드백을 반영해 비상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SK 핵심 관계자는 "5월 초 연휴를 마치고 7일 경에는 전사 차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메시지가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은 앞서 지난해 7월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당시 SK온은 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하고 극복 의지를 대외에 알리는 차원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분야별 최고 책임자(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고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직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분기 흑자 전환을 조건으로 임원 연봉을 동결하고 임원 대상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했다.
같은 해 9월에는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SK온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지난 2021년 출범 이후 처음이다. 희망퇴직 신청자에게 연봉의 50%와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무급휴직 신청자에게는 2년 간 학위과정의 학비 50%와 학위 취득 후 복직 시 나머지 50%를 지급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SK온 측은 "경영 효율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SK온은 지난해 4분기 적자로 전환하며 총 1조1,270억원의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세 차례 무산됐던 SK엔무브 IPO도 재추진
최근에는 사업 포트폴리오와 자산 구조 재정비를 위한 리밸런싱 전략이 일환으로 윤활유 자회사인 SK엔무브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SK엔무브의 IPO와 관련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는 "SK엔무브의 비즈니스모델을 더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적절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고 그 수단 중 하나로 IPO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래 SK이노베이션은 2013년과 2015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SK엔무브의 IPO를 추진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IPO 대표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공동주관사는 KB증권·JP모건·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하면서 성공 가능성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SK엔무브 IPO가 성장의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주요 산업군인 정유, 석유화학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으며, 배터리를 담당하고 있는 SK온도 완전한 흑자 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시간이 상당수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경기 둔화에 따른 정유 및 전기차 수요 약세, 이자비용 증가 등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실적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가운데 SK엔무브는 기존 내연기관 윤활유 사업을 넘어서 전기차 윤활유, 액침냉각 등 배터리 열관리 기술 시장을 개척하며 신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SK이노·E&S 합병 등 사업의 밀도 높여
SK온의 실적 개선이 더디지만 지금까지 SK이노베이션의 리밸런싱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가장 규모가 컸던 SK이노베이션-E&S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4분기 SK이노베이션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그룹의 미래산업인 배터리 부문도 현금이 충당된 상황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E&S 합병 효과로 당분간 영업흑자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지난해 11월 9만원대에서 3개월 새 12만원까지 상승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에 시달리던 SK이노베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도 합병 이후다. 지난 4분기 실적은 E&S와의 합병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으로, 2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탈피하고 1,599억원의 이익을 냈다. 주당 2000원의 배당을 발표하고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자신감도 덧붙여졌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자산은 2023년 말 80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36.9% 증가한 110조600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이 중 현금은 같은 기간 20.1% 증가한 16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룹은 두 회사를 합치면서 SK이노베이션의 포트폴리오가 석유, 화학, LNG, 전력, 배터리, 신재생에너지로 확장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포트폴리오가 확장된 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시너지 창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추진 가능한 사업만 3가지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신설한 에너지솔루션 사업단과 E&S가 운영해 온 솔루션 사업의 협업을 통해 그룹 관계사의 전력 수급을 최적화하고, AI 데이터 센터 등에 토탈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에는 LNG를 직도입해 자가 발전설비를 가동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E&S가 개발 중인 호수 가스전에서 추출한 원료를 이노베이션이 직접 확보해 활용하는 사업도 진행한다.
재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 리밸런싱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를 자회사 SK온으로 봤다. E&S와의 합병으로 재무구조를 탄탄히 해 체력을 바탕으로 캐즘을 견디고 주류가 될 배터리 사업을 끈질기게 하겠다는 계획을 본 것이다. SK온은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차례로 흡수 합병했다. 이번 합병으로 SK온은 기존 배터리 제조 사업에 더해 원자재 조달 및 물류 역량을 강화하고 재무 안정성을 확보했다. 합병 전 매출은 13조원, 자산은 33조원이었으나, 합병 후 매출 62조원, 자산 40조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또 연간 약 5000억 원 규모의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추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