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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재무부 간 환율 실무협의 다음 달 美 재무부 환율보고서 발표 직접 개입보단 협상 카드 활용 가능성 커

한국과 미국이 지난 5일 ‘환율 협상’에 나서면서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된 환율 실무협의가 본격화했다. 달러 대비 원화의 절상(원·달러 환율은 하락) 압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다음 달 미국 재무부가 발표하는 ‘환율보고서’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韓·美 환율 협상 개시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과 로버트 캐프로스 미 재무부 국제차관보는 지난 5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나 1시간가량 환율과 관련한 실무협상을 진행했다. 지난 4월 24일 한미 재무·통상 수장이 워싱턴DC에서 ‘2+2 통상협의’를 진행하고 양국의 기재부와 재무부가 별도로 환율 관련 논의를 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최 차관보는 당시 ‘2+2’ 통상협의‘에 배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5일 대면으로 만나 실무 협의를 한 것이 맞다”며 “시장 운영의 원칙에 대해 상호 이해를 공유하고, 향후 의제에 대해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품목별 관세 폐지를 위한 ‘줄라이 패키지’와 같이 할지, 별개로 할건지는 모르겠다”며 “상대(미국)가 있어서 협의 내용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는 상호관세 조치 유예가 종료되는 오는 7월 8일 전까지 4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 패키지(7월 패키지)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2+2 통상협의' 이후 양국은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 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실무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관세 협상서 원화 절상 압박 우려 제기
이번 협의를 두고 시장에선 미국의 원화 절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강달러'를 자국 무역적자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만큼, 협의 과정에서 원화 가치 상승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하면 과거 ‘플라자합의’ 때 일본처럼 수출경쟁력 약화, 장기침체 등을 겪을 수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을 겨냥해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 중 첫 번째로 ‘환율 조작’을 꼽은 바 있다. 다만 이때만 해도 ‘변동환율제’가 아닌 중국이나, 대규모 돈 풀기로 통화 약세를 유도해 온 일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시장은 풀이해 왔다.
그간 미국은 반기마다 환율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며 무역 상대국의 외환 정책을 감시하고 있다. 각국이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시키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하반기 중국·독일 등과 함께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정한 대미 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기준을 기술적으로 넘어선 탓이지 한국 정부의 외환 정책 자체를 미국이 문제 삼은 건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 ‘환율’ 끼워 넣은 미국, 숨은 포석은?
미국이 직접적인 원화가치 절상을 압박하지 않더라도 환율을 협상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커지는 모양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궁극적인 관세전쟁 목적은 미국으로 제조기지를 움직이자, 글로벌 밸류 체인을 붕괴시키고 로컬 밸류 체인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그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제 미국에서 수출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약달러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가 각국 관세 협상에서 환율 개입을 위한 언급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는 분위기다. 미국이 대만과 관세 협상 중 절상 압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만 달러 가치가 크게 오르기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장도 지난 6일 아시아 통화 강세에 대해서 "미국이 개별 국가를 만나면서 환율 얘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일본 엔화든 중국 위완화든 그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트리면 미국은 매우 불공평한 불이익을 안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경제·금융당국은 시장 24시간 모니터링을 지속 중이다. 김범석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은 "향후 미·중 간 첫 공식 무역협상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 이벤트들이 계속 예정돼 있는 만큼 경계심을 갖고 금융·외환시장 24시간 모니터링을 지속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주요국 통상협상, 지정학적 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향후 매주 한 차례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개최해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