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도 설비도 구조조정" 석유화학 업계, 생존 위해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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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 시행 롯데케미칼은 각지 설비 구조조정에 '속도' 석유화학 구조조정 선두 주자 日, 어떻게 성공했나

LG화학이 석유화학 부문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다. 공급 과잉·경기 침체로 인해 석유화학 업황이 눈에 띄게 악화한 가운데, 정부의 요구하에 업계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하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 보다 전향적인 태도로 산업 재편을 견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화학, 본격 감원 착수
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화학은 대산과 여수 공장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 의사를 파악하고 있다. 생산직·사무직을 통틀어 만 58세 이상 직원이라면 희망퇴직이 가능하다. LG화학은 희망퇴직자에게 정년까지 남은 기간의 급여를 보전해 주고,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위로금은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임금피크제 적용자가 대상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설비 매각이나 업체 간 통합 등이 추진될 경우 구조조정 범위가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들어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 자체는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23조5,389억원, 영업이익 9,145억원을 거뒀지만, 석유화학 부문은 1분기 565억원, 2분기 9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석유화학 실적이 미끄러진 배경에는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 등이 있다. 시장 악재가 누적되며 석유화학 업황 전반이 악화하자, LG화학을 비롯해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최대 370만 톤(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을 포함한 자구책을 업계에 요구 중이다. LG화학의 희망퇴직은 정부의 구조 개편 주문이 실제 현장에서 실행으로 이어진 사례인 셈이다.
롯데케미칼의 구조조정 행보
LG화학 외에도 다수의 석유화학 기업이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례로 롯데케미칼의 경우, 현재 논의가 한창인 여수·대산·울산 석유화학 단지 NCC 감축 방안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현재 각 석유화학 단지의 NCC 설비를 통폐합해 한 곳으로 몰아주는 방안이 거론되는 중"이라며 "롯데케미칼은 여수산단에서 NCC 설비 통폐합의 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롯데케미칼, LG화학, 여천NCC, GS칼텍스 등 여수산단에 생산 기지를 둔 석유화학 기업들의 합산 캐파(CAPA·생산 능력)는 626만5,000톤으로, 국내 전체 석유화학 캐파의 49%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 기업 중 NCC 사업 유지가 가장 간절한 것은 단연 롯데케미칼이다. 여타 기업들은 NCC 의존도가 비교적 낮거나, 그룹 차원에서 석유화학 외 안정적 수익 창출원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의 기초화학 부문 매출 비중은 65%에 달하며, 롯데그룹의 핵심 축인 유통 사업의 실적 역시 신통치 않다. 그룹 전체 매출의 30.4%가 창출되는 석유화학 사업마저 축소하게 되면 롯데그룹의 시장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롯데케미칼은 HD현대케미칼과 생산량 조절을 위한 설비 구조조정 논의도 진행 중이다. 양 사가 각각 보유한 대산 지역의 NCC 자산 가치를 평가하고, 롯데케미칼의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긴 뒤 단일 통합 법인을 출범하는 방식이다. 통합 후에는 중복되는 생산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생산량을 줄여 효율을 제고할 예정이다. HD현대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6대 4 비율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합작 법인이다.

日, 석유화학 침체 선제 대응해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서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정부 주도 석유화학 구조조정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일본 석유화학 구조조정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를 ‘세 번의 칼춤’으로 돌파했다. 1차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오일 쇼크 여파로 석유화학 수익성이 악화하자, 정부가 특별산업구조개선임시조치법(산구법)을 제정하며 칼을 빼 든 것이다. 이에 따라 노후하거나 중복된 NCC들이 줄줄이 폐쇄·통합됐다.
1990년대에 있었던 2차 구조조정에서는 정부가 시장의 자발적인 인수합병(M&A)을 유도했다.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산업재생법)을 도입해 합병·분할 기업들에 세제 특례를 주고, 공정거래법 심사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진행했다. 그러자 기업 간 ‘빅딜’이 활발해졌다. 미쓰비시화성과 미쓰비시석유화학이 합병해 현재 일본 1위 종합화학업체인 미쓰비시화학으로 재탄생한 시기(1994년)도 이 때다. M&A를 통해 합종연횡한 석유화학 기업들은 전자소재·의료기기 등 스페셜티로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2000년대 3차 구조조정 때는 정부가 규제 완화·세제 인센티브 등 간접 지원만을 남겨 뒀다. 기업들은 ‘콤비나트(상호 보완적인 공장 등을 한 지역에 모은 기업 집단)' 통합과 해외 생산 기지 확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이후 현재까지도 일본 석유화학 업체들은 활발하게 사업 재편을 진행 중이다. 일례로 미쓰이화학은 저수익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초 및 그린 소재 사업부를 2027년까지 분사한 뒤 다른 회사와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10여년 전부터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 상승 등 문제점을 인식,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 부재, 기업들의 소극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모두 좌초됐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은 국가 기간 산업 성격을 띤다"며 "사업 재편이 서둘러 진행되지 않을 시 건설, 가전 등 모든 산업군이 막심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본처럼 선제 대응을 했어야 하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