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시아에 추가 제재 채비, 유럽과 '2차 관세' 공조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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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러시아산 원유 연간 11억 유로어치 구매" 주장 “러시아 지원하는 中에도 경제 제재 가해야” 강조 미-EU 대러 제재 논의하는 고위급 회담 준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시행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유럽연합(EU)과 협력해 중국 등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국까지 겨냥하는 ‘2차 관세’ 조치를 구체화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차례 제재 강화 가능성을 시사해 왔지만, 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하며 실제 조치는 미뤄왔다. 그러나 전쟁이 3년 반 이상 장기화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강경 대응 기조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러 제재 2단계 준비”
7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2단계 제재를 시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라는 취재진 질의에 "그렇다(Yeah, I am)"고 답했다. 구체적인 조치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추가 제재 의지를 분명히 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반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뒤집고 최근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14일 러시아가 50일 내 우크라이나와 휴전을 합의하지 않으면 러시아 및 러시아산 원유·원자재 구매국에 100% 상당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산 석유의 주요 구매국인 인도에 기존 25% 상호관세에 추가 25%, 총 50%의 관세를 부과하며 1단계 2차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직접 관세를 부과할 뿐 아니라 석유 등 러시아산 제품을 구입하는 다른 나라들에도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2단계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같은 날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도 NBC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과 공조해 2차 제재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와 러시아 경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지가 경쟁하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EU가 추가 제재에 들어가서 러시아 석유를 사는 나라들에 대한 2차 관세를 부과하면 러시아 경제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고, 그것이 푸틴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유럽정상들에게 “러시아 원유 구매 중단” 촉구
트럼프 대통령의 2단계 제재 시사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푸틴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해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 전승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 '반미(反美)·반서방' 연대의 결속을 과시한 직후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최근까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규모 공습을 강행하는 등 제대로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다,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북중러 연대의 결속에 직면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2단계나 3단계(제재)는 아직 하지도 않았다"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한 뒤 "푸틴이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그에 만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소속 유럽 지도자들과 통화할 당시 “ 러시아산 원유가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면서 유럽 정상들에게 구매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러시아가 EU에 연간 11억 유로(약 1조7,900억원)어치의 원유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전쟁 노력에 자금을 지원하는 중국에도 경제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 에너지 매개로 중·러 밀착, 미-EU 협상 중대 전환점 되나
실제 러시아와 중국을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는 매개는 에너지다. 이달 초 중·러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 측은 러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을 건설하기로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를 체결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연간 500㎥의 천연가스를 30년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핵심 문제인 공급 가격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중국의 변화로 중·러가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은 협력 심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팽배하다.
인도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징벌적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현재 러시아 원유 수출량의 3분의 1은 여전히 인도로 가고 있다. 이들 3개국이 경제적으로 결합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따른 각국의 반발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미국은 유럽과 대러 제재를 논의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P통신은 유럽연합 대러 제재 특사 데이비드 오설리번이 이끄는 EU 고위급 대표단이 9일 미 재무부를 방문해 베선트 장관을 비롯한 미 당국자들과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백악관, 국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도 회담에 참여하며 EU 측에서는 에너지, 제재, 금융서비스, 무역담당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JD 밴스 미 부통령은 지난 5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통화를 했으며, 다음날인 6일 베선트 장관과도 논의를 했다.
단, 중국은 러시아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지만 미국이 곧바로 중국을 겨냥한 2차 관세를 발동할지는 미지수다. 외교가는 미국이 직접 제재 카드를 꺼내기보다 유럽을 통해 중국·인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향후 유럽-러시아-중국 간 에너지·외교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