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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출신 존 리 본부장 ‘중도 사의’, 우주청 ‘시그니처 미션’ 동력 상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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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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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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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서 대통령급 연봉 발탁
3년 임기 가운데 절반 채우고 떠나
정권 교체 이후 L4 탐사 사업 좌초
존리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사진=우주항공청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으로 우주항공청의 실무 책임자를 맡았던 존 리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3년 임기 중 절반도 채우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우주탐사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핵심 인사가 돌연 물러난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 이후 핵심 사업이 좌초되며 조직이 추진력을 상실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3년 못 채우고 중도 퇴진

26일 우주청에 따르면 리 본부장은 전날 우주청에 사의를 표명했다. 우주청은 리 본부장이 10월 24일자로 사직을 요청한 상태로, 규정에 의한 퇴직 절차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존 리 본부장은 별도 '알리는 말씀'을 통해 “지난 1년여 간 우주청 출범과 안착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모국에 돌아와 우주항공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 본부장은 NASA에서 29년간 일하며 NASA 헬리오피직스 프로젝트 관리자, NASA 산하 고더드우주비행센터 위성통합본부장 등을 지낸 우주 전문가다. 미국계 한국인으로 미국 백악관 행정예산국에서 예산관리자로도 일했다. 우주청은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리 본부장을 우주청 R&D를 총괄하는 초대 우주항공임무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우주청은 "리 본부장의 사직이 처리된 이후 후임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임용될 때까지 NASA 출신 김현대 항공혁신부문장 등을 중심으로 업무를 차질없이 챙겨나갈 것"이라고 했다.

리 본부장 주도 'L4 탐사 사업' 퇴짜

리 본부장의 사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새 정부 들어 핵심 사업이 좌절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주청에 따르면 ‘라그랑주 4점(L4) 탐사’ 사업의 기획연구 수행처인 한국천문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태양 관측 L4 탐사의 타당성 검토, 임무 발굴 및 국제협력 방안 마련을 위한 기획 연구’를 수행해 최근 그 결과를 우주청에 제출했으나 반려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연구는 L4 태양권 우주관측소 구축 미션의 임무를 발굴하고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주관측소 설계 및 기술 요구 사항을 정의하고 예상 운영 비용과 기술적 타당성 및 리스크 평가를 수행하는데 약 4억원이 투입됐다. 라그랑주점은 L1~5 총 5개 지점이 있다. L1에는 NASA의 태양관측선 ‘소호’, 인도의 태양 탐사선 ‘아디트야’ 등 이미 인류가 보낸 탐사선들이 자리 잡았다. L2에도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 우주망원경이 선점했고, NASA의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등이 향할 예정이다. 하지만 L3~L5에 자리 잡은 탐사선은 없다.

이에 리 본부장은 취임 직후부터 L4 탐사선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그는 본부장으로 임명되기 전 천문연과 관련 공동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리 본부장은 앞선 인터뷰에서 “한국만의 시그니처 미션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L4 외에도 블랙홀 등 화성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로드맵 잔치'로 끝나나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기계에서는 L4 사업 추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L4 탐사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실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게 이유였다. 익명을 요구한 과기계 관계자는 “우주청은 L4 탐사를 세계 최초로 말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는 취지라 강조했으나, 남들이 하지 않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며 “L4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무엇인지 정의해야지, 최초라는 이유로 무작정 도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간 우주 산업을 키우겠다고 설립된 우주청이 L4 탐사를 추진해 산업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지적도 나왔다. 천문연이 L4 탐사선 주요 부품을 해외에서 사오겠다는 ‘얼렁뚱땅’식 사업 기획을 내놓으면서 방향성 역시 잃었다는 지적이다. 한 우주 업계 관계자는 “생뚱맞은 L4 탐사를 하려면 목적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도전적 과제를 수행해 국내 기술력을 내재화하던가 아니면 실리를 추구해 해당 사업에 투입할 예산을 민간 산업 육성에 써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당초 우주청 출범 당시 제기됐던 우려들과 일정 부분 일치한다. 적극적인 민·관 협력을 통해 글로벌 우주항공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우주청을 설치하는 정부의 목표였다. 2045년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갈 혁신적인 우주항공 기업을 2,000개 이상으로 육성하고, 100대 기업도 1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양질의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고, 4조원의 투자로 우주항공 산업을 420조원 규모로 키워서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하지만 당장의 현실은 초라하다. 우주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주산업 인력은 1만 명에 지나지 않고, 우주항공 분야 기업도 300여 개 수준이다. 100대 기업에 속하는 한화·KAI·대한항공 등 3개를 제외한 대부분은 세계 무대에 나서기 어려운 영세기업이다. 누리호·다누리호의 발사 성공과 수리온·T-50·KF-21 등의 개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차지한 우주항공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 실행 예산과 산업 연계 방안 역시 부재하다. 결국 리 본부장이 강조했던 ‘한국만의 시그니처 미션’ 구상은 정치적·재정적 뒷받침이 사라진 순간 힘을 잃었다.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로드맵 잔치’가 현실화된 셈이다.

한편, 리 본부장이 사퇴를 앞둔 시점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여당에서는 리 본부장이 다음 주 호주에서 열리는 국제우주대회(IAC)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퇴를 예정하고도 해외 출장을 가는 게 맞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퇴를 앞둔 본부장이 국민의 혈세가 동원되는 출장을 떠나려는 것은 졸업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며 "남은 임기를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개인의 추억쌓기로 채우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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