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CBDC 성공의 열쇠는 보조금이 아닌 네트워크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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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경쟁력의 핵심, 보조금이 아닌 네트워크 설계 이용자와 가맹점 연결이 만드는 결제 전환점 상호운용성과 신뢰 인프라로 확산 기반 구축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결제 시장의 핵심은 금리나 시범 사업, 기술 규격이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결정짓는 요인은 결제망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며 급격한 확산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용자와 가맹점이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면 거래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시스템은 자체 성장 단계에 진입한다.
인도의 통합결제 인터페이스(UPI)는 2025년 8월 한 달 동안 200억 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했다. 브라질의 모바일 송금 시스템(Pix)은 하루 수백만 건의 결제를 기록하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는 17개 지역에서 누적 거래액 7조 위안(약 1,350조원)을 넘어섰다. 이 수치는 결제망이 일정 수준의 참여를 확보했을 때 네트워크 효과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전환점을 보여준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편의성과 접근성이 개선되고, 가맹점이 확대될수록 결제 생태계의 효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네트워크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 환경에서 평가하면 정책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 이제 초점은 ‘인센티브 없이 이용할까’가 아니라 ‘결제망이 스스로 확산될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핵심은 보조금이 아니라 설계다. 초기 단계부터 네트워크 확산을 고려한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결제 확산을 좌우하는 구조적 요인
CBDC 시범 사업은 대체로 새로운 결제 수단을 카드, 현금, 모바일 앱 등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결제를 개인의 선택 문제로 한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결제는 이용자와 가맹점이 동시에 참여해야 작동하는 양면 시장(Two-sided market)이다. 결제 확산의 핵심은 가격 수준보다 참여 구조에 있다.
이용자에게 일시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실험만으로는 가맹점 참여나 수용 불균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반대로 가맹점 수용이 확대되면 수수료가 다소 높더라도 이용은 증가한다. 대체 수단이 상대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가 그 대표적 사례다. 가맹점이 비용을 부담했지만, 이용자와 가맹점이 함께 늘어나는 구조를 조기에 구축해 시장을 선점했다. 반면 가맹점이 제한적이거나 상호운용성이 부족한 CBDC 실험은 실제 수요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한국의 사례도 이를 보여준다. 설문조사에서는 카드 사용이 전체 거래의 46%로 가장 높고, 현금은 16%, 모바일 카드는 13%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2024년 기준 오프라인 현금 결제가 7% 수준으로 줄었고, 모바일 지갑이 주요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실시간 결제 인프라도 이미 구축돼 있다. 따라서 새로운 결제 토큰은 카드에 대한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카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사용 습관과 경쟁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이용자와 가맹점이 안정적으로 연결돼 언제든 결제가 가능한 지속적 네트워크 환경이다.

주: 결제 수단 유형-현금, 신용카드, 모바일 간편결제(X축), 결제 비중(Y축)/실제(연한 빨강), 예측(진한 빨강)
네트워크 효과를 입증한 세 가지 사례
토큰 네트워크 효과는 이미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인도의 UPI는 모든 인가된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결제망으로 설계됐다. 은행, 전자지갑, 결제 앱이 동일한 QR코드와 계좌 식별 체계를 공유하면서 네트워크가 자가 확장 구조를 갖췄다. 확산을 이끈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높은 신뢰성, 간편한 이용 환경, 상호운용성 확보였다.
브라질의 Pix는 중앙은행이 표준 규격, 사기 방지, 별칭 관리 시스템을 주도하면서 소매 결제, 송금, 공과금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됐다. 낮은 지연 속도와 폭넓은 수용성, 공공 인프라의 주도적 역할이 결합되면 단기간에도 결제 습관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의 e-CNY는 기존 결제망과의 연계가 핵심이었다. 지방정부 행정 서비스, 교통, 관광, 교육 등 생활 영역에 사용 범위를 확대한 것은 단순한 시범 사업이 아니라 가맹점 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거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거래의 성격이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브랜드보다 속도와 편의성을 중시하는 일상 결제였다. 네트워크 효과는 바로 이런 반복적 이용 속에서 강화된다. CBDC 또한 일상에서 뿌리내릴 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CBDC 확산을 앞당기는 설계 전략
CBDC의 성공은 이용자와 가맹점이 동시에 늘어나는 전환점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확산 구조를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구축해야 할 것은 가맹점 인프라다. 많은 시범 사업이 소비자 지갑에 집중하지만, 실제 확산의 출발점은 가맹점이다. 결제망은 단일 QR 표준, 통합 별칭 체계, 명확한 규제 기준을 갖춰야 한다. 매대마다 서로 다른 QR코드가 놓이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다. 가맹점 등록은 당일 처리되고, 정산은 자동화돼야 한다. 매출이 안정적으로 정산되고 예측 가능한 구조가 마련돼야 가맹점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측 가능한 정산, 낮은 분쟁 비용, 즉시 입금이 가능한 체계가 확산의 기반이다.
상호운용성 확보도 필수적이다. 이용자는 결제 방식보다 작동 안정성을 본다. 인도의 UPI와 브라질의 Pix가 빠르게 확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방형 API를 통해 다양한 사업자가 동일한 환경에서 경쟁하고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CBDC도 중앙은행 부채, 상업은행 예금, 국채가 함께 작동하는 토큰화 플랫폼으로 설계돼야 하며,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닌 금융 인프라의 기반으로 기능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선도적 참여 또한 중요하다. 교통 요금, 공공요금, 세금, 등록금 등 일상적 공공 결제에 토큰 결제를 도입하면 결제망은 보조적 수단에서 핵심 인프라로 전환된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와 과거 카드 결제가 이 같은 방식으로 확산됐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뒷받침할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 결제망 확산은 사기 위험을 동반하지만, 대응 속도와 투명성이 신뢰를 결정한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Pix 확산 과정에서 환불 절차와 별칭 관리 체계를 강화해 피해를 줄였다. 핵심은 사기 자체의 제거가 아니라, 신속하고 투명한 복구다. 문제가 몇 시간 내 해결되고 결과가 공개될 때, 이용자의 신뢰는 네트워크 확산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주: 민간 금융기관의 정책 변화 유무(X축), 결제 수단별 이용 비중(Y축)/현금(파란색), 신용카드(빨간색), 모바일 결제(초록색), CBDC(노란색)
네트워크가 만드는 선택의 힘
UPI, Pix, e-CNY의 성공은 보상 경쟁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효율에서 비롯됐다. 결제망이 확대될수록 거래는 더 빠르고 비용은 낮아지며,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그 시스템을 선택했다.
CBDC 역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존 결제 구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가맹점이 한 번의 절차로 결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신뢰성과 성능을 입증하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결국 CBDC의 경쟁력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연결성에 있다. 모두가 사용하는 시스템일수록 더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널리 쓰일수록 그 자체가 표준이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Money Becomes a Network: Why Token Network Effects Will Decide CBDC Succes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