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동서 교육정책, 위기 속에서 드러난 제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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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드러낸 교육체계의 구조적 격차 자율과 통제의 균형이 회복력의 관건 신속한 결정과 투명한 점검이 지속 가능한 교육의 핵심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학생 성취도는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수학은 평균 15점, 읽기는 10점 떨어져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역사상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소득 수준이나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방향으로 하락했다. 표면적으로는 팬데믹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하락의 폭과 범위는 그보다 깊은 문제를 드러낸다. 위기 속에서 학습 손실을 줄인 국가는 단순히 예산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닫힌 뒤 얼마나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자원을 재배치했는지가 학습 손실의 폭을 결정했다.
이 차이는 행정 효율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주요 교육정책을 중앙이 일괄적으로 결정한 반면, 서구는 학교와 지방정부에 폭넓은 자율권을 부여했다. 바로 이 구조의 차이가 위기 대응의 속도와 일관성을 갈랐다.

학습 격차를 키운 결정의 속도
팬데믹은 교육체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중앙정부가 교사 배치, 교육과정, 예산과 정보 관리를 일원화한 국가는 빠르게 대응했지만, 권한이 여러 단계로 흩어진 국가는 수많은 결정을 조율하느라 시간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학습 손실의 폭도 달라졌다. OECD의 PISA 2022 분석에 따르면, 장기 휴교를 줄인 국가일수록 학업 성취와 학교 소속감이 높았다. 하지만 휴교 기간만으로 성적 하락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결정적 차이는 ‘대응의 속도와 일관성’이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학습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 과정에서 기초 읽기 능력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2022년 기준, 중하위 소득국에서는 열 살 아동의 70%가 짧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지 못했다. 이른바 ‘학습 빈곤’이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의 여러 국가는 기초학력 저하를 겪었고, 아시아의 일부 국가는 교사와 학생에게 과도한 부담이 집중됐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나았느냐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구조가 위기 대응력을 갈랐다는 점이다. 혼란이 컸던 곳에는 명확한 기준이, 통제가 과했던 곳에는 재량이 필요했다.
위기 속 동서 교육체계의 대응력 차이
동아시아와 서구의 교육체계는 위기 속에서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싱가포르는 교육부가 전략적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학교에 일정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혼합형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도 이 구조는 흔들리지 않았고, 싱가포르는 2022년 PISA에서 수학·읽기·과학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이 사례는 중앙집중이 곧 성과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명확한 우선순위와 신속한 조정이 안정성을 높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 역시 성적 하락 폭이 제한적이었다. 반면 서구의 다수 국가는 권한이 분산돼 교육 지원 체계를 한 방향으로 묶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체계가 얼마나 일관되게 작동하느냐였다.
재정 구조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중국은 2023년 교육예산을 전년보다 5.3% 늘려 6조4,595억 위안(약 1,200조원)을 투입하며 의무교육에 가장 많은 자원을 배정했다. 반면 미국의 고등교육은 공공 재원 비중이 39%로, OECD 평균 68%에 크게 못 미친다. 자금의 절대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기준을 세우고, 자금을 집행하며, 실행 속도를 확보하느냐였다.

주: 국가 구분-미국, OECD 평균(X축), 공공 재원 비중(Y축)
이처럼 제도 설계와 재정 구조는 국가의 대응력을 결정하고, 그 무게는 결국 교사들이 떠안게 된다. 국제교사학습조사(TALIS) 2024에 따르면 일본 중학교 교사는 주당 55.1시간을 일해, 참여국 평균인 41시간을 크게 웃돈다. 장시간 근무는 수업 준비와 협업의 시간을 잠식하고, 교사의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제도는 자원을 모을 수 있지만, 그 자원을 운용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면 품질은 유지될 수 없다.

주: 국가 구분-일본, OECD 평균(X축), 근무시간(Y축)
분권형 체제의 과제
서구의 분권형 교육체제는 전통적으로 학교의 자율성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팬데믹은 자율이 곧 효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학교마다 대응 수준이 달라지면서 정책의 속도와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자율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 없는 자율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준이 있는 자율성’이다. 국가 차원의 학습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초등 저학년의 읽기·수학 등 기초과목에 대해 간단하고 투명한 평가를 정례화해야 한다. 교수법 선택은 학교에 맡기되, 학습 상태의 점검과 지원은 중앙이 책임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교재와 학습 지원 체계는 중앙이 품질을 관리하고 지역이 실행을 맡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검증된 교재와 튜터링 프로그램을 중앙 목록으로 정리해 학교가 손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행정 절차를 줄여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교 간 협력망을 제도화해 목표와 성과를 공유하고, 교사들이 수업을 함께 설계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 주도형 체제의 과제
국가 주도형 체제는 위기 대응에서 강점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과도한 통제라는 약점을 드러냈다. 중앙이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가 행정에 묶여버리면 현장의 역동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업무 부담의 완화다. 문서 작업을 선택 사항으로 전환하고, 수업 외 업무를 줄이며, 학교 행정 인력을 늘려야 한다. 비교과 활동이나 동아리 지도 업무를 간소화하면 교사는 수업 준비와 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교육과정은 단순화하되, 실행의 재량은 넓혀야 한다. 핵심 성취 기준은 명확히 세우고, 구체적인 접근 방식은 교사와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명확한 목표와 유연한 실행을 병행하며 높은 회복력을 유지했다. 불평등이 남은 지역에는 중앙이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중앙의 통제력을 협력의 네트워크로 전환한 사례로 중국 상하이의 ‘책임 위탁학교제’가 있다. 성과가 높은 학교가 일정 기간 성취도가 낮은 학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위권 학교의 성취도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성과는 통제가 아니라 연결과 협력에서 나온다.
위기 이후의 교육 설계
이번 위기는 각국 교육체계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냈다. 교육정책의 차이는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일관되게 움직일 수 있느냐를 가르는 구조적 문제였다.
분권형 체제는 자율 속에서 방향을 세워야 하고, 국가 주도형 체제는 통제 속에서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기초학력 기준과 공통 자원, 그리고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두 체제 모두 회복의 토대를 투명한 학습 점검과 신속한 지원에 두어야 한다. 의사결정 구조가 제때 작동한다면 다음 위기는 지난 성과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학습 환경과 안정적인 제도 설계가 앞으로의 교육정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Institutional Differences in Education Policy: East-West Governance After the Shock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