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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 USA 시대' 연 엔비디아, 美로 이동하는 반도체 공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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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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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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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블랙웰 GPU 양산 돌입 
美, 설계·제조·후공정까지 전 생산망 구축 본격화
동아시아 중심의 반도체 밸류체인 주도권 이동

엔비디아의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Blackwell) 칩이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첫 양산에 돌입했다. 설계부터 제조·후공정에 이르는 전 생산 생태계를 현지화하려는 엔비디아의 구상이 본격화했다는 평가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전략과 맞물려 있다. 강력한 투자 유치 정책과 고율 관세를 앞세운 미국의 압박 속에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현지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반도체 밸류체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美 반도체 투자, 2027년부터 경쟁국 앞서가

21일(이하 현지시각)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투자는 2025년 210억 달러(약 29조7,000억원)에서 2027년 330억 달러, 2028년 430억 달러(약 61조4,000억원)로 급증할 전망이다. 2027년~2030년까지 미국의 총 반도체 투자액은 1,580억 달러(약 2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클라크 청 SEMI 디렉터는 “지금까지 확인된 반도체 제조 투자 계약을 토대로 추산할 때, 2027년부터는 미국의 반도체 투자액이 한국, 대만, 중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미 정부의 지원 정책과 주요 글로벌 기업의 참여가 맞물린 결과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자, 2021년 반도체를 국가 안보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다. 이어 2022년 제정된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주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를 추진했다. 올해 초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도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고율 관세와 세제 혜택을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투자는 대만과 미국, 한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TSMC는 대미 투자액을 650억 달러(약 92조원)에서 1,650억 달러(약 237조원)로 대폭 늘려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6곳과 첨단 패키징 시설을 짓고 있다. 인텔은 1,000억 달러(145조원)를 투입해 차세대 반도체 생산단지를 구축 중이며,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370억 달러(약 52조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38억7,000만 달러(약 5조5,000억원) 규모로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열린 블랙웰 양산 기념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엔비디아

엔비디아, 현지 생산량 5,000억 달러로 확대

대규모 투자에 따른 미국 내 첨단 칩 생산도 첫발을 뗐다. 지난 17일 엔비디아는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자사의 최첨단 GPU인 블랙웰 칩의 양산을 시작했다. 그동안 TSMC 대만 공장에서만 독점 생산되던 칩을 미국에서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가장 중요한 단일 칩이 미국 내 최첨단 시설에서 생산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산업 재편 비전이 현실화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이번 양산을 계기로 미국 내 기술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에 나섰다. 그동안 엔비디아는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안정적인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중국은 엔비디아에 의존해 왔는데 미 정부가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면서 엔비디아는 주요 수입원을 잃어야만 했다. 최근에는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을 가시화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결국 엔비디아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웰의 양산은 첨단 GPU의 미국 내 생산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다만 현재 미국에서는 TSMC의 첨단 패키징 기술(CoWoS)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AI) 가속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만 TSMC 공장을 거쳐야 한다. 엔비디아는 향후 4년간 협력사들과 함께 5,000억 달러(약 714조원) 규모의 AI 칩, 서버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에서 생산되는 블랙웰 칩은 앰코, SPIL 등 패키징 업체들과 협력해 제조에서 패키징, 조립, 테스트까지 전 과정을 미국에서 진행할 방침이다.

TSMC 입장에서도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할 반도체 품목 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 TSMC는 향후 애리조나 공장에서 AI·통신·고성능 컴퓨팅에 필수적인 칩을 2~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통해 생산할 예정이다. 애리조나 제2공장 건설도 추진한다. 지난 17일 웨이저자 TSMC 회장은 “강력한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토지를 매입해 생산시설 확충에 나설 것”이라며 “향후 매달 10만 장 이상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반도체 공장인 기가 팹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SK, 현지 빅테크 고객 확보에 유리할 듯

이 같은 변화에 한국 반도체업계의 속내도 복잡해졌다. 동아시아의 첨단 칩 제조 역량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빅테크가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춘 반도체 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이라는 조건을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생산 체계를 얼마나 빨리 안정화하느냐가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정적인 품질 확보를 전제로 신속하게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출수록 고객 확보에 유리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첨단 공정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은 미국 파운드리 거점으로 전통 공정 중심의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과 달리 최첨단 공정을 전담한다. 현재 내년 가동을 목표로 2나노 공정용 양산 설비를 도입하고 있다. 2나노는 올해 하반기 상용화된 최신 파운드리 공정으로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TSMC만 양산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내년부터 테일러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AI6가 양산될 예정인데, 공정은 2나노가 유력하다.

반면 대만은 ‘본토 우선’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TSMC는 올해 하반기 대만 공장에 2나노 공정을 도입했는데 이는 미국 공장 도입 시점보다 2년 이상 빠르다. 추후 미국에서 2나노 양산이 시작되더라도 전체 물량의 30%만 배정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경기 화성과 미국 테일러에 2나노 라인을 동시 구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대만 안보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은 본토에 칩 생산기지를 유지해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비록 최첨단 공정 기술력이나 수율 측면에서는 TSMC가 앞서지만,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인 빅테크들이 미 정부의 압박에 자국산 부품 구매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산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삼성전자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삼성전자와 체결한 165억 달러(약 22조7,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에 대해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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