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세망 시험대 오른 한국, 우회수출 통로 차단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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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한국산’ 둔갑 수출 급증
우회 경유국 낙점 시 통상 불이익 우려
산업 피해 불가피, 무역 방어선 시급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해 제삼국을 경유하는 중국산 ‘택갈이 수출’이 급증하면서 한국이 새로운 통상 압박의 교차점으로 떠올랐다. 관세청이 올해 적발된 국산 둔갑 수출 규모가 3,500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힌 가운데, 정부는 내년부터 제삼국 조립 제품까지 우회덤핑으로 간주하는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통상 규제 속, 한국이 ‘우회 경유국’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한 정밀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美 관세 회피 여파 우려
22일 통상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는 수출국이나 수입국이 아닌 제삼국에서 조립・완성한 제품에 대해 우회덤핑을 판단하는 세부 기준인 ‘관세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은 지난 8월 기재부가 제삼국 등을 이용해 관세를 회피하는 경우까지로 우회덤핑 과세 범위를 확대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당초 정부는 수출국에서 제품을 ‘경미하게’ 변경하는 경우만을 우회 덤핑으로 규정했지만, 앞으로는 수입・수출국이 아닌 제삼국에서 조립・완성하는 경우도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제삼국 조립 완성・여부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은 △가공 공정의 성격 △소요 비용 △투입된 생산설비 수준 등 투자 규모 △덤핑 물품 공급국의 부품 및 원재료 비중 △제삼국에서 발생한 부가가치 비중 △덤핑조사 전후 덤핑 물품이나 관련 부품·원재료 등의 교역 변화 등 총 6가지다. 정부는 이들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예컨대 중국이 베트남에 원재료를 보내 가공한 후 한국으로 수출할 경우, 중국에서 바로 들어와야 할 물품인데 덤핑방지 관세를 피하려고 베트남에서 생산한 척하는 게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무역 문턱을 높이려는 까닭은 외국 기업들의 저가 수출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최근 무역 통계에 의하면 올 상반기 중국의 글로벌 수출액은 3조500억 달러(약 4,362조7,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가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4월 산업생산은 6.1% 상승했으며,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5%를 넘어섰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의 관세율을 기록한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달성한 성과다.

수출 경쟁 과열→규제 표적 위험도
당국은 중국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미국 시장에 유입됐을 것으로 봤다. 관세청에 의하면 올해 1~8월 적발된 국산 둔갑 우회수출 규모는 3,5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금액 기준 1,313%, 건수 기준 150% 증가했다. 특히 이 중 미국향 우회수출 비중이 98%에 달하면서 우회 경유지로서 한국이 집중 조명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과 중국산 수입 규제 강화가 이어지자,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거점으로 삼는 ‘택갈이 루트’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관세청은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고 지난 4월 ‘미국 관세정책 특별대응본부’ 산하에 무역안보특별조사단을 신설했다. 해당 조직은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시스템을 활용해 대미 수출 추이와 화물 이동 패턴을 실시간 감시한다. 조사 결과 귀금속과 종이 제품 등 고관세 품목에서 한국산 둔갑이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산 금 가공제품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악용해 ‘한국산 0% 관세’로 통관된 사례가 다수 포착됐다. 이들 국가는 최대 158%에 달하는 관세를 회피했고, 한국 세관에는 외국산으로 신고하면서 미국 세관에는 ‘Made in Korea’ 원산지증명서를 제출했다.
이 외에도 베트남산 방수포가 한국산으로 둔갑해 미 정부 조달시장에 납품된 사례, 덤핑방지관세 최고 257.11%가 부과된 중국산 철강 플랜지를 한국산으로 각인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특히 종이쇼핑백은 중국산 최고세율 172.36%를 피하기 위해 포장 교체 후 한국산으로 신고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유럽연합(EU) 시장에서도 중국산 멜라민을 스페인산으로 위장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교체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이는 원산지 조작 방식이 단순 표기 조작을 넘어 원산지 증명과 수출 신고, 운송 경로까지 다층적으로 위조하는 ‘복합형 세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 수출이 한국의 통상 신뢰마저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 물품이 한국을 경유해 한국산으로 둔갑하면, 한국산 제품의 대미 신뢰도가 저하되고 향후 협상에서도 ‘우회 경유국’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8월 행정명령을 통해 6개월마다 우회수출 적발 국가와 기업을 공개하고, 해당 품목에는 40%의 추가 관세 및 조달 제한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우리 산업계의 피해는 물론 향후 한·미 통상 협상에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기업 피해 현실화,방어체계 구축 절실
이런 가운데 유럽에선 중국산 물량 우회를 겨냥한 조치 논의가 본격화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중국산 고율관세(최대 145%) 이후 가격이 낮아진 중국산 화물이 유럽 항만으로 재유입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27개 회원국과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수입 급증 품목과 경로를 실시간 추적 중이다. 이와 함께 세관·선적 데이터의 이상 패턴을 기반으로 덤핑 위험이 높은 산업 과잉 부문(철강·기계·중간재 등)을 1차 타깃으로 삼고, 급격한 수입 증가가 확인되면 신속 보호조치(세이프가드)와 수입할당(쿼터), 추가 가산관세 발동까지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이 같은 EU의 행보는 ‘우회경로 차단’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발 관세 충격으로 중국산이 동남아를 경유해 유럽으로 들어오거나 원산지 표기를 바꿔 통관되는 루트가 포착되면, EU는 국가·품목별 쿼터 설정과 원산지 검증 강화를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EU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대미 보복관세 카드를 검토하면서 미국의 ‘중국의 과잉생산 진압’에는 공조하되, 자국 시장의 2차 충격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못 박았다.
이러한 유럽의 행보가 한국에 건네는 신호는 명확하다. 유럽의 국가별 할당 총량 축소나 우회 차단 조치가 본격화하면, 한국 시장은 중국산의 우회 수출 품목과 경쟁하는 동시에 규제의 비의도적 표적이 될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특히 보세구역 반출입·제삼자 명의 수출·중계무역 형태로 포장된 물량이 FTA 체계로 들어오다 적발되면, 개별 기업의 제재를 넘어 국가 단위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 국내에서 이미 반덤핑 제소가 최대치로 늘어난 상황에서 원산지 검증과 통관 사전심사를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전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