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구조조정 중대 변수로 떠오른 샤힌프로젝트, 내년 완공 시 NCC 중심 업계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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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 국내 최초 TC2C 공장 내년 가동 예정 사우디서 원유 받아 중간과정 생략하고 에틸렌 생산 석화 구조조정 합의 '답보 상태' 속 중대 변수로

국내 석유화학업계 최대 규모인 9조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샤힌프로젝트(Shaheen Project)'가 내년 상업 가동을 앞둔 가운데, 국내 석화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국내 주요 석화 업체들이 줄줄이 적자를 내는 현 시장 상황에도 샤힌프로젝트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정도의 효율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에틸렌 신규 공급이 늘어날 경우 감축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석화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샤힌프로젝트, 경쟁사 대비 수율 극대화
27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샤힌프로젝트는 현재 공정률 85%로 내년 가동을 앞두고 있다. 내년 6월 기계적 완공(장치만 완공한 상태)이 예상되며 이후엔 시험운전을 거쳐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샤힌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짓는 첨단 석화 복합시설이다. 투자액만 총 9조2,580억원이며 시설 면적은 88만㎡(약 26만 평)로 국내 석화 투자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될 에틸렌은 연간 180만 톤으로, 지난해 국내 에틸렌 생산량(1,295만 톤)의 15%에 육박한다.
샤힌프로젝트는 석화업계에서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에틸렌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다. 기존에는 휘발유 등을 정제하면서 나온 부산물인 나프타를 활용해 에틸렌을 생산했지만, 샤힌프로젝트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라는 설비를 통해 원유를 직접 나프타 등 석화 원료로 전환한다. 석화 기업 간부는 “원유에서 얻을 수 있는 석화 원료 수율이 20%에 불과했지만 TC2C 공정을 활용하면 70%까지 오를 것”이라며 “값싸게 에틸렌을 만들어 공급하는 중국과의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 석화사들은 시장이 부진과 호황을 오가는 사이에서도 제대로된 산업 재편 논의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2년 전 샤힌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본격 가동되면 원가 경쟁을 할 수 없으니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도 석화 산업 재편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연내 최대 37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계획을 내달라고 석화업계에 주문했다. 국내 생산능력(1,470만 톤)의 4분의 1에 달한다.
설비 감축 기조 역행하는 '폭탄' 격
문제는 감축 규모다. 설비 합리화를 필두로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제품의 생산을 줄여야 하는 데다,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생산으로 설비를 전환해야 하는데, 업계에선 샤힌의 설비 대비 효율성이 뛰어난 만큼 경쟁 업체들을 압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정부 감축안에 따르면 여수산단에서는 생산능력 120만~150만 톤, 대산산단 150만 톤, 울산산단에서 67만 톤 가량을 줄여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산단 별로 20~30%의 생산능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울산산단의 경우 대한유화 90만 톤, SK지오센트릭 66만 톤, 에쓰오일 20만 톤 등 총 176만 톤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췄다.
이런 와중에 에쓰오일이 샤힌프로젝트의 주요 설비들을 가동하면 에틸렌 생산능력이 연산 180만 톤가량 추가된다. 이는 기존 울산산단 생산능력을 뛰어넘는 수치로, 울산산단이 정부의 에틸렌 감축 규모를 충족하려면 에쓰오일도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더욱이 그간 업계에서도 에쓰오일이 석화사업 재편 자율협약에 참여한 이후부터 꾸준히 감산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30일 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와 함께 울산 석화단지 사업재편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아직 생산량을 조절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은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공장을 감축하는 자구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NCC 감축 대신 대한유화나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나프타를 받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에쓰오일이 아람코에서 싸게 들여온 원료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라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이번 석화산업 구조조정의 취지는 일방적으로 규모를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얘기"라며 "단순히 감축을 진행한다고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석화산업 구조개편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인데, 에쓰오일은 이미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 자체적으로 마무리하는 단계"라며 "샤힌프로젝트는 기존의 설비가 따라올 수 없는 원가 경쟁력과 운전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경쟁력이 뛰어난 설비를 감축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업계, 구체적인 지원책 부재·형평성 지적
이에 업계에서는 샤힌만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유 직도입으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정유사 에쓰오일이 감축에 나선 경쟁사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울산만 해도 NCC를 보유한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의 에틸렌 기준 생산규모는 각각 90만 톤, 66만 톤 규모로 가격(20~30%↓)도 싸고 용랑(180만 톤)도 더 많은 샤힌프로젝트가 더해지면 시장 판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특히 대한유화는 그동안 나프타를 에쓰오일로 부터 공급받아 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수급처까지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국내 석화업계가 고통을 분담하는 상황인 만큼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자율적으로 감축을 해야 하는데 샤힌프로젝트 시설 투자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감축안에서 빠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에쓰오일만 빠지면 누가 공급 감축을 진행하려 하겠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에쓰오일의 샤힌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나머지 업체들만 뼈를 깎는 공급 감축을 진행하면, 이는 에쓰오일에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며 "샤힌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석화업계의 공급 감축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꼬집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석화 업체들의 NCC 시설 가동 중단 움직임이 가속화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샤힌프로젝트가 채택한 TC2C 방식이 보편화될 경우 NCC 업체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석화 제품을 제조할 수 있어서다. 이는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 등 기초유분 매출 비중이 높은 업체들을 위기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롯데케미칼은 연결조정 전 19조원 매출 중 13조원의 사업부가 기초유에 해당하며, 한화토탈에너지스는 11조원 중 5조원, SK지오센트릭은 14조원 중 10조원의 사업이 영향을 받는다. 또한 NCC 업체들의 원가 상승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비싼 중동산 원유와 나프타 수입이 증가했다는 점도 작용하지만, 종전 이후에도 T2C2 방식과 경쟁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존 방식은 원유 10톤에 기초유분 제품 1톤을 생산하지만, T2C2 방식은 4~5톤을 생산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장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기한인 연말까지 기업 간의 자발적 합의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만 제시하고 결과만 민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며 "업황 악화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각사 이익을 배제하고 합의만을 위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대한 세부 방향성과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지 않은 점도 비판 대상이다. 앞서 정부는 구조조정 참여 기업에 금융·세제·규제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관련해 세부 기준과 지원 방식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