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향해서도 비판" PEF에 칼 빼든 금융당국, 출자·인수금융 시장 찬바람
입력
수정
국세청·금융감독원, 나란히 주요 PEF 압박 강화 금감원장 "국민연금, LBO 활용 PEF에 투자해도 괜찮나" 연이은 규제·압박 속 시장 자금 흐름 얼어붙어

금융당국이 사모펀드(PEF) 감독을 강화하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다. MBK파트너스, 스톤브릿지캐피탈 등 대형 PEF가 줄줄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현장검사를 받는 가운데, 금감원장까지 국민연금의 PEF 출자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내며 시장이 받는 압박이 눈에 띄게 가중되는 양상이다.
당국 검사에 짓눌리는 PEF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달 블랙스톤,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주요 외국계 PEF에 대한 비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법인뿐 아니라 주요 파트너 개인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사4국은 ‘재계 저승사자’라 불릴 만큼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는 국세청 내 정예 조직이다. 이에 외국계 PEF들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을 고용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비슷한 시기 금감원도 PEF 검사에 착수했다. MBK와 스톤브릿지캐피탈에 검사 인력을 투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년간 업계에서 거론돼 왔던 금감원의 PEF 검사 가능성이 현실화한 것이다. 금감원은 그간 PEF 전담 부서를 두지 않았지만 최근 관련 인력을 확충하며 조직 정비에 나선 상태다. 차후 검사 결과에 따라서 금감원이 부서 확대 및 인력 보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K는 지난 3월에 현장검사를 받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으며, 스톤브릿지캐피탈은 최근 현장검사를 마친 뒤 최종 결과를 내놓기 전 질의응답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내부 심의와 법적 검토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검사 결과는 내년 초에 나올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수조원 규모 운용 자산을 지닌 PEF는 무엇보다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들여다봤다"며 "내부 인력 운용과 절차를 고려해 다른 PEF나 증권사에 대한 검사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장, 국민연금에 비판적 견해 드러내
지난 21일에는 이찬진 금감원이 차입매수(LBO) 방식을 활용하는 PEF에 대한 국민연금 출자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 원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이 LBO 방식을 활용하는 PEF에 출자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LBO 방식의 PEF와 관련해 기관 투자자들이 자금을 제공하는 게 ESG 기준에 맞냐는 점에 대해 2015년부터 계속 지적해 왔다"고 발언했다.
이 원장이 언급한 LBO는 인수자가 인수 대상 회사의 자산 또는 수익 능력을 바탕으로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을 일으켜 기업을 매수하는 금융 기법이다. 통상 PEF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차입한 뒤 피인수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된다. 인수 후 피인수기업은 SPC와 합병 등을 통해 차입 주체가 된 뒤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을 활용해 부채를 상환한다.
LBO의 가장 큰 장점은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잠재 능력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을 차입금으로 인수한 다음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매각하면 적은 자금 투입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대 수익률이 높은 만큼 리스크도 크다. 인수 뒤 기업가치 향상에 실패하면 기업이 부채 상환 부담을 떠안게 되고, 최악의 경우 핵심 자산 매각으로 이어져 근로자와 지역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미칠 수 있다.
이 원장의 발언을 접한 시장은 금감원장이 LBO의 순기능을 외면하고 단점만을 극단적으로 부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모든 투자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데, 특정 사례만을 갖고 전체를 매도하는 것 같다"며 "LBO가 아니었으면 연기금·공제회 등 출자자(LP)들에게 많은 수익을 돌려주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감원장이 국민연금 운용 독립성에 간섭하는 발언을 반복하니 기금운용본부도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PEF에 대한 인식 간극이 너무 커서 국민연금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줄줄이 활기 잃어가는 시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PEF를 향한 출자 자체도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된 ‘바젤Ⅲ’ 규제 탓이다. 해당 규제에 따라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산정하는 방식이 엄격해졌고,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PEF 출자에 대한 위험가중자산(RWA) 비율이 400%까지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금융사의 CET1 비율이 떨어져 자본 건전성 부담이 커지고, 은행 및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RWA 부담이 큰 PEF 출자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에 금융지주 계열 출자자들을 중심으로 출자 계획 조기 종료 현상이 속속 관측되고 있다. 보통 11월까지는 블라인드 펀드 및 프로젝트 펀드 출자가 이어지곤 하지만, 올해는 상반기부터 출자를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한 곳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신한캐피탈을 비롯해 IBK캐피탈, 하나캐피탈, JB캐피탈 등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들이 예년보다 일찍 출자를 잠정 중단하거나 보수적으로 출자에 나서고 있다. 시장의 자금 흐름이 눈에 띄게 얼어붙은 것이다.
PEF 시장과의 동조화 현상이 나타난 인수금융 시장에서도 신규 일감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반기에는 신규 인수금융 주선 실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클 거란 예측이 우세했지만, 실제 하반기 인수금융 시장에서는 리파이낸싱 거래만이 성행했다.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걷히며 전방 M&A 시장에서 굵직한 거래가 잇따라 성사됐음에도 불구, 후방 인수금융 시장까지 그 수혜가 확산하지는 못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