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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합의도 막힌 유럽, 우크라이나 지원 막판 머리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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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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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동결자산 활용 방안 무산 위기
에너지 수출 급감·금융위기 러시아
미·유럽, 원유 수출 제재 공조 복원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가기 위한 재정의 마지막 한계를 시험받고 있다. 앞서 대다수 회원국이 남은 예산을 긁어모은 신규 지원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핵심이던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안이 벨기에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대안 마련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EU 국가들의 공동채권 발행 논의가 재정 적자 우려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 역시 에너지 수입 급감과 금융 불안으로 한계에 몰렸다. 미국은 이러한 틈을 타 러시아산 원유를 직접 겨냥한 제재를 통해 종전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나섰다. 

전후 배상 위험 우려에 신중론 대두

27일(현지시간) 국제 외교계에 따르면 헝가리를 제외한 26개 EU 회원국은 지난주 정상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집행위원회가 가능한 한 빨리 재정지원 선택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는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의 일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배상금 대출(Reparations Loan)’ 논의가 무산된 뒤, 이를 대신할 방안을 찾기 위한 조치다.

EU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투자 프레임워크’를 통해 핵심 인프라 복구와 중소기업 지원에 23억 유로(약 27억 달러·3조8,000억원)를 투입했다. 그러나 2026~2027년 재정지원 계획까지 고려하면 추가 자금 조달 없이는 유지가 어렵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 과정에서 거론된 배상금 대출 방안은 동결된 러시아 자산 중 만기가 도래해 현금화된 자금을 EU가 선차적으로 빌려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전쟁 후 러시아가 지급하게 될 배상금으로 상환한다는 구조였다. 1,400억 유로(약 1,630억 달러·23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단기 재정난을 완화하는 동시에 전후 복구 자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한다는 구상에서다. 

하지만 벨기에가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러시아의 동결 자산 대부분이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둔 국제 예탁결제기관 ‘유로클리어(Euroclear)’에 예치돼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전후 러시아가 자산 반환을 요구할 경우 누가 그 법적 책임을 질 것인가”라며 법적 리스크를 꼬집었고, 나아가 정부 예산 협상 중인 상황에서 자국이 공동 배상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여기에 프랑스와 독일 역시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즉각적 합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배상금 대출 방안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 때문에 EU 내에서는 공동채권 발행을 통한 대체 재원 마련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는 러시아 자산 활용보다 훨씬 복잡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이미 다수 회원국이 재정 적자와 부채 급증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공동채권은 각국의 정치적 부담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논의는 결국 EU가 처한 재정 여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U 집행위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러시아 자산을 활용한 배상금 대출뿐이라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법적 책임 문제를 두고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재정수입 붕괴 국면

주목할 만한 점은 러시아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경제는 전쟁 장기화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사실상 ‘자금 동맥경화’ 상태에 놓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6월 보도에서 “러시아 금융 당국 내부에서도 향후 12개월 내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banking crisis)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 나온다”며 “지난해와 올해 기업 및 개인 대출 상환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은행권의 부실채권(NPL)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신용평가기관 ACRA는 “3조7,000억 루블(약 467억 달러·67조원)규모의 대출이 부실화될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 전체 은행 자본의 20%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러시아 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부문도 급격히 흔들리는 형국이다. 러시아 재무부 집계에서 지난 7월 기준 석유와 가스 수출액은 전년 동원 대비 27% 줄어 7,873억 루블(약 99억 달러·14조원)에 그쳤고, 올해 1~7월 누계 수출 역시 2조1,900억 루블(약 276억 달러·39조원)로 1년 사이 19% 감소했다. 특히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수출 비중은 2021년 45%에서 올해 13%까지 축소됐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의 가격 상한제 도입으로 러시아 원유는 국제 기준가보다 배럴당 11.5달러 이상 낮게 거래되고 있으며, 그 여파로 국제 유가가 2026년 4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원유 생산비 구조 역시 러시아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 다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배럴당 10달러 수준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반면, 러시아의 생산원가는 육상 42달러, 해상 44달러에 이른다. 나아가 시베리아 일부 유전은 일찌감치 채산성을 잃었고, 65년 된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의 상당 구간도 EU의 금수 조치로 가동을 멈췄다. 과거 소련 경제의 상징이던 에너지 수출망이 붕괴하면서 러시아의 외화 수입 기반 역시 사실상 마비됐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세금 인하로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곧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져 전쟁비 조달 여력을 더 악화시킨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경제는 고금리와 수익 감소, 부채 급증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상태다. 러시아 은행의 기업 대출 포트폴리오는 올 1~2월에만 1조5,000억 루블(약 26조원) 감소했고, 대기업 78곳 중 6분의 1은 세전 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이자로 지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에너지 수출로 유지되던 재정이 붕괴되고 금융 시스템마저 흔들리는 만큼 러시아 또한 ‘돈이 말라붙은 전쟁’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종전 방정식’ 변수는 미·중 협상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움직임이 전쟁의 다음 단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등 러시아 핵심 석유 기업을 제재 대상에 추가하며 전쟁 재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번 제재는 거래 중개 금융기관까지 2차 제재 대상으로 포함하면서 러시아의 자금 이동 경로를 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며 맞서고 있지만, 고금리(17%)와 인플레이션(8%), 노동력 부족, 전시 재정 긴축이 겹치면서 러시아 경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유럽과 영국도 미국과 발을 맞추며 대러 공조 전선을 복원했다. EU는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2027년까지 전면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그림자 선단’이라 불리는 노후 유조선 네트워크 100척 이상을 추가 제재 목록에 올렸다. 또 러시아산 원유를 우회 수입하던 제3국 정유사와 운송사, 금융기관도 제재망에 포함시켰다. 영국 역시 러시아 주요 석유기업과 연계된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줄곧 불협화음을 내던 미국과 유럽이 처음으로 공조 행보를 재가동한 사례로 평가된다. 

문제는 ‘중국 변수’에 따라 제재의 실효성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에 헐값으로 원유를 공급해 왔다. 중국은 지난해 러시아산 원유 1억 톤(t) 이상을 수입하며 최대 구매국으로 부상했고, 인도 역시 8,000만 t 규모를 반입했다. 미국이 이번 제재에 2차 제재 조항을 포함해 중국·인도 정유사와 금융기관에도 경고를 건네자, 중국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 중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에너지 거래 관련해 한발 물러설 경우, 러시아의 수출망은 단기간에 위축될 공산이 크다. 반대로 중국이 기존 거래를 유지한다면, 서방 제재의 압박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도는 우크라이나 전황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는 내년 1분기까지 추가 지원이 없으면 재정이 고갈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유럽의 재정 여력 역시 한계에 봉착했으며, 러시아도 에너지 수입 급감과 금융 불안으로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원을 조이며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하고, 중국은 자원 거래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저울질 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무력 충돌이 총탄보다 ‘자금줄’이 더 중요한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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