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화폐에 선 그은 중국 “스테이블코인 금지, 통화 권력은 중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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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 단일 체계 강화 신호
민간 스테이블코인 진입로 차단
달러 견제보다 통화 주권 사수에 방점

중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불허하며 민간 주도의 디지털 화폐 실험을 전면 중단시켰다. 인민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자금세탁·불법송금 등 금융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규정하며 ‘화폐 발행권은 중앙에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반면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해 달러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달러의 디지털화’ 흐름을 경계하며 자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e-CNY)를 중심으로 한 국가 주도형 통화 체계를 공고히 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시장에선 디지털 위안화의 확산성과 신뢰 확보가 향후 중국 통화 전략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금융안정 훼손” “투기 확산 우려” 규제 논리
29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27일 베이징 금융가포럼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 변수”라고 규정하고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제도적 기반조차 완성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국제 금융당국도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금세탁, 불법 해외 반출, 테러자금 조달 같은 민감한 영역이 스테이블코인을 통로로 활용될 수 있고,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이런 흐름이 관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견 ‘암호화폐 단속 강화’라는 익숙한 기조를 반복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통화 디지털화의 주도권을 중앙은행에 집중시키겠다는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판 은행장은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이 투기적 기대를 부추기고 있으며, 일부 저개발 국가의 통화 주권을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는 인식이 국제결제은행(BIS)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당국 사이에 퍼졌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에서 사실상 ‘달러의 디지털 분신’처럼 작동하면서 달러 편중 구조를 한층 더 굳히고, 동시에 감독 사각지대를 넓힌다는 문제의식이다.
아울러 판 은행장은 인민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의 위상을 통화 구조 안에서 더 최적화하고, 더 많은 상업은행이 운영기관으로 참여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미 상하이에 디지털 위안화 국제운영센터를 두고 국경 간 결제를 다루는 전담 조직을 마련했으며, 베이징에는 CBDC 관리센터를 구축해 통화·결제 인프라를 행정적으로 고정하는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중국은 ‘스테이블코인 전면 허용 → 민간 자율 확산’ 모델이 아니라 ‘CBDC 집중 → 국가 관리형 확산’ 모델로 방향을 정했다는 신호를 직접 발신한 셈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에는 지난 몇 년간 누적된 경험이 작동했다. 중국은 2021년 금융범죄 억제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명분으로 암호화폐 채굴과 거래를 전면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신장 지역을 중심으로 비트코인 채굴 해시레이트 비중이 다시 세계 3위 수준까지 회복될 정도로 지하 활동이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완전 봉쇄” 선언만으로는 투기 자본과 자산 유출 통로를 깔끔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점을 이미 학습했다는 의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투기와 무단 송금의 통로’로 규정하며 선을 긋고, 법정 디지털화폐인 ‘e-CNY’만을 유일한 합법적 디지털 결제 레일로 남겨두려는 기조를 굳혔다.
CBDC에 정책 역량 집중
중국의 이 같은 행보는 민간 주도의 디지털 화폐 실험에 사실상 ‘정지선’을 긋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간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계열 앤트그룹과 징둥닷컴 등 다수 빅테크 기업이 홍콩에서 달러나 위안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 출시를 검토해 왔다. 홍콩 금융당국도 일정 수준의 자본금·준비금 요건을 채운 사업자가 허가를 받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8월부터 가동하는 등 안정적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결제수단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는 중국 인민은행과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로부터 “당분간 추진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으면서 전면 중단됐다. 중국 규제당국은 민간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화폐 발행과 유통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고, 이를 기업별 사업성 평가나 기술적 검증 문제가 아닌 원칙 차원의 금지 문제로 규정했다. “민간의 화폐 발행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되새긴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솔루션이 아니라 통화 주권의 침해 가능성으로 취급된다.
중국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경계하는 표면적 이유는 신뢰성과 안정성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나 실물자산에 1대 1로 연동되는 구조지만, 준비금이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보전되는지와 어떤 회계 기반으로 투명하게 관리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장은 지난 8월 비공개 포럼에서 바로 그 문제를 짚었다. 그는 “준비금 없이도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구조, 그 뒤에 붙는 파생상품성 레버리지, 즉 결제 인프라로 포장된 채권형·투기형 자산의 복제 가능성 등이 우려된다”며 “스테이블코인의 실제 수요가 얼마나 실물 경제를 반영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뢰성과 안정성만큼이나 중국 당국이 우려하는 대목은 통화정책, 환율 관리, 자본통제라는 국가 거시 레버리지의 붕괴다. 지금까지 중국은 자본유출 관리와 환율 방어를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유지하며 외환 흐름을 국가 전략 차원의 민감 영역으로 분류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에 연동된 사설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 겉으로는 ‘위안화 국제화’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중앙은행 통제 밖의 위안화 유통 채널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 순간 스테이블코인은 정부만이 가져야 할 화폐 권력의 약화를 의미하게 된다. 결국 이번 조치는 “CBDC만이 국가 통제형 디지털 화폐체계로서 안전하다”는 메시지이자, “화폐 발행권은 시장이 아니라 중앙에 있다”는 통화 주권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글로벌 통화질서 재편 속 ‘보수적 선택’
BIS는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99% 이상이 달러에 연동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민간 암호화폐가 아닌, 사실상 ‘디지털 형태의 달러 유통망’이라는 뜻에 가깝다. 달러와 1대 1로 교환 가능한 토큰이 스마트폰 지갑을 통해 국경을 넘기 시작하면, 달러는 현금이나 은행 계좌 없이도 생활 결제, 해외 송금, 온라인 상거래, 무역 대금 결제에 바로 투입된다. 이러한 흐름은 중남미와 일부 신흥국 등 현지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곳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미국은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미 전략 자산으로 다룬다. 비자와 마스터 등 카드사들은 스테이블코인 기반 정산 기능을 실제 결제망에 포함시켰고, 블랙록을 비롯한 다수의 대형 자산운용사는 미국 국채를 기초로 한 온체인 펀드를 만들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가능한 달러 현금성 자산’으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의회 역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 규칙 안으로 끌어들이는 규제 틀을 추진 중이다. 핵심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결제권을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처럼 기존 금융망이 취약한 지역까지 확장하고, 이를 통해 달러의 지위를 물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러한 파급력을 잘 알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국무원은 위안화 국제화 로드맵에서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실제 정책 옵션으로 상정했다. 해당 로드맵에는 인민은행과 기타 금융 규제기관의 역할 분담, 위험 관리 체계, 해외 결제 활용 범위, 외화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무역 결제 시나리오까지 포함됐다. 위안화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수출입 대금 결제나 역내 공급망 정산에 투입하면, 실물 교역에서 위안화의 사용 비중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당시 인식이었다. 이는 ‘중국식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하자는 시나리오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중국의 최종 선택은 미국식 모델과 달랐다. 화폐 발행권과 결제 인프라, 거래 데이터 축적 권한이 분산되는 순간 위안화 관리 능력이 약화된다는 판단 아래 민간이 발행·유통을 주도하는 모든 스테이블코인 실험 자체에 제동을 건 것이다. 미국이 ‘민간 스테이블코인+달러’를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라면, 중국은 ‘e-CNY+중앙은행’을 안에서 단단히 세운 뒤 외부로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향후 쟁점은 다시 중국식 모델이 글로벌 교역과 결제 네트워크에서 어느 수준까지 수용될 수 있느냐, 그리고 민간형 스테이블코인이 아니라 중앙은행형 디지털 위안화만으로 국제화가 가능한가라는 문제로 좁혀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