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은 돌려받았다" 막 내린 11번가 분쟁, SK·FI 양측 '최악' 피해서 타협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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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스퀘어 11번가 지분, SK플래닛에 100% 매각 얼어붙은 유통 투자 심리 고려해 대승적 결단 내린 FI들 SK그룹, 투자자 신뢰 훼손 막기 위해 리밸런싱 후 생긴 여유 활용

SK스퀘어가 이커머스 계열사인 11번가를 SK플래닛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이 투자금 전액을 회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23년 콜옵션(조기상환권) 행사 포기로 촉발된 SK그룹과 투자자 간 분쟁은 2년 만에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11번가, 결국 SK플래닛 산하로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11번가 지분 100%를 SK플래닛에 매각하는 안을 최종 의결했다. 거래가 완료되면 11번가는 SK플래닛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편입된다. 이번 매각으로 11번가의 투자자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와 블라인드 펀드에 출자한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 투자자들은 투자 원금을 전액 회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 2018년 나인홀딩스 컨소시엄(H&Q코리아·국민연금·새마을금고)은 11번가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이 중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것은 국민연금(4,000억원)이었다. 당시 나인홀딩스 컨소시엄은 SK스퀘어와 주주 간 계약을 통해 자금 회수 장치를 만들었다. 5년 내로 11번가의 기업공개(IPO)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SK스퀘어가 FI 지분을 되사는 콜옵션을 행사하고, SK스퀘어 측이 이를 포기할 시 FI가 SK스퀘어 지분을 포함해 제3자에게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1번가는 기한 내 상장에 실패했고, SK그룹은 2년 전인 2023년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11번가 기업가치가 하락한 만큼 약정된 수익으로 지분을 되살 시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FI는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통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으나, 원매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올해 콜옵션 행사 시점이 다시 도래하자 SK스퀘어는 투자금을 상환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원금 상환이 '타협점' 된 이유는?
시장은 3조원대 기업가치를 전제로 투자를 단행했던 나인홀딩스 컨소시엄이 '원금 상환' 선에서 타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현시점 유통 기업들에 대한 시장 수요는 사실상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라며 "FI들도 경영권 매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흐름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SK 측이 투자금 상환에 나서지 않았다면 원금 회수조차 어려웠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은 유통업계 내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형 사고'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수면 위로 떠오른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큐텐그룹 산하의 이커머스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는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유용하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일으켰고, 이후 나란히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은 이들이 입점 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대금은 1조2,790억원, 피해 업체 수는 4만8,0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티몬은 지난 6월 오아시스의 품에 안기며 재기를 노렸지만, 피해자들의 반발로 재개장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인수자를 찾지 못한 위메프는 서울회생법원이 회생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누리집에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를 하는 등 사실상 파산 절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 홈플러스가 만성적인 경영난과 누적된 적자로 인해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사건 역시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쳤다. 해당 사태를 촉발한 근본적 원인으로는 2015년 PEF MBK파트너스로의 매각이 지목된다. 당시 MBK는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고가였던 7조2,000억원을 투입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이 중 70%에 달하는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 등을 활용한 대출로 마련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MBK의 운영과 수익 창출 방식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실제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인한 임차료 부담,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경쟁 등에 짓눌리며 매출이 급격히 악화했다. 금융부채도 영업이익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국민연금 손실만큼은 막아야" SK의 결단
SK 측이 선뜻 투자금 상환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이어진 리밸런싱 행보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은 지난해 7월부터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을 진행해 왔다. 오는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고, 총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목표였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배터리 부문(SK온)의 적자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마저 석유화학 침체로 위기에 직면하자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29일 발간된 한국신용평가의 '일단락된 SK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가시적인 성과와 추가적인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SK그룹의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34%, 2024년 말 117%, 올해 6월 103%로 점차 안정되고 있다. 순차입금은 2023년 말 83조원에서 올 6월 71조원으로 줄었다. 2024년부터 그룹 비핵심자산 매각을 통해 약 9조원을 확보한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올 상반기 15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린 결과다. 올 하반기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에코플랜트 등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 결과가 반영되면 SK그룹의 올해 말 부채비율은 10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에 11번가 FI들에 투자금을 상환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에 손실을 안기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내부 요구 역시 투자금 상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출자기관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시장 신뢰가 무너지며 향후 신규 투자 유치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성 자본을 조달한 SK그룹 입장에서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부채성 자본조달 규모는 약 18조원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