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만 남았다” 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 철수, 중국 무비자도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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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입점 상징성보다 수익성 악화에 무게
中 무비자 시행에도 공항 점포 매출 제자리
면세 산업 ‘포스트 명품’ 전환기 돌입

신라면세점에 이어 신세계면세점까지 인천공항 제2터미널 이탈을 선언하며 ‘공항 입점=브랜드 위상’의 공식을 무너뜨렸다. 면세업계의 적자 행진이 장기화한 가운데 인천국제공항공사와의 임대료 협상마저 줄줄이 결렬되면서 막대한 위약금을 물더라도 늦기 전에 철수를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업계는 인천공항과의 분쟁 속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제도 시행에 따른 매출 회복에 기대를 걸었으나, 효과가 시내 면세점에만 집중되면서 마지막 희망의 끈도 사라지게 됐다.
공항 중심 면세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30일 신세계면세점 운영사 신세계디에프의 모회사 신세계는 이사회를 열고 인천공항 면세점 DF2(화장품·향수·주류·담배) 권역 사업권을 반납한다고 공시했다. 신세계는 지난 4월 인천지방법원에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임대료 조정 신청을 제기한 이후 협상을 이어 왔지만, 공항 측이 법원의 강제 조정안을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서 철수를 결정했다. 법원은 이달 초 인천공항에 신세계면세점 27.2%, 신라면세점 25%의 임대료 인하를 권고했으나, 공항 측은 “입찰 당시 탈락 업체들이 제시한 임대료보다 낮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신세계는 현 구조에서는 영업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유통업계는 이번 철수를 두고 공항 면세점 사업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안으로 평가했다. 불과 한 달 전 호텔신라가 인천공항 DF1 권역 사업권을 철수하며 위약금 약 1,900억원을 감수한 데서 알 수 있듯, 사업 지속에 따르는 적자 위험이 위약금보다 막대하다는 지적이다. 신라면세점은 2023년 계약 이후 주 고객군의 소비 패턴이 달라진 만큼 임대료 부담을 덜어 달라고 공항 측에 거듭 요청했지만, 신세계와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이탈을 결심했다. 인천공항 내 면세점의 잇따른 철수는 신라가 먼저 “적자 감수보다 위약금이 낫다”는 계산을 시장에 보여주고, 그 계산식을 신세계가 추인한 것에 가깝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은 글로벌 브랜드 유치, 해외 관광객 유입, 그룹 이미지 제고의 세 축을 한 번에 해결하는 일종의 쇼윈도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롯데면세점이 2018년 임대료 부담으로 철수한 뒤 재입찰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밀려난 것을 두고 '괘씸죄'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한 번 이탈하면 재진입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타 대형 사업자도 최대한 버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신라면세점 철수를 계기로 힘의 균형점 또한 달라진 모양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달 13일 호텔신라의 목표가를 6만6,000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인천공항 일부 철수로 적자 폭 개선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항이 더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전략 거점이 아니라는 신호 또한 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라와 신세계가 연이어 이탈했다는 건, 공항이 쥐고 있던 ‘재입찰 불이익’ 카드의 실효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라고 짚으며 “반대로 말하면, 공항이 임대료를 현 수준으로 고집하는 한 앞으로도 빠져나가는 업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다.

단체 관광객 소비 패턴 도심으로 이동
이처럼 공항 면세점이 가지는 상징성과 실익이 동시에 퇴색된 요인으로는 단연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가 꼽힌다. 애초 면세업계는 지난 9월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제도 시행으로 침체됐던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효과는 공항이 아닌 도심 면세점에만 국한됐다. 한국면세점협회에 의하면 지난달 국내 면세점 구매 고객 수는 261만9,835명으로 전년 동원 대비 4.6% 증가했으나, 대부분의 외국인 소비자는 시내 면세점에 집중됐다. 특히 신세계면세점은 명동점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 동기 대비 약 90% 늘고 매출이 40% 증가했지만, 인천공항점 매출은 제자리걸음했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동선 변화에서 비롯됐다. 2020년대 이후 중국 단체 관광객의 쇼핑 패턴은 ‘출국 직전 공항 구매’에서 ‘입국 초기 도심 소비’로 완전히 이동했다. 단체 여행 일정 대부분이 서울 주요 상권에 집중되면서 여행 초반 시내 면세점에서 계획했던 물품을 구매하고, 공항에서는 최소한의 면세품만 추가 구입하는 식이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출국 전 공항에서 대량 구매가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인플루언서나 여행사 추천을 통해 도심 브랜드 매장을 직접 찾는 경우가 많다”며 “공항은 단순 통로로 전락하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내 면세점의 매출 구성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은 지난달 29일 무비자 입국 이후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주얼리·아이웨어·레더 등 중가 제품군 매출이 10% 이상 상승한 데 따른 결과다. 반면 공항점은 고가 명품 중심의 구성 탓에 매출 반등이 지연됐다. 특히 화장품과 주류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0% 안팎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항 임대료를 비롯한 고정비 구조를 고려하면, 단기적 수요 회복으로는 적자 전환을 막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중국 소비자 사이 ‘실용 소비’ 확산
전문가들도 무비자 제도가 장기적으로는 관광산업에 긍정적이지만, 공항 면세점의 하락세를 되돌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소비 트렌드가 보여주기식 소비에서 실속형 소비로 바뀌면서 면세 산업의 명품 중심 구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집계에서 따르면 중국의 명품 소비는 2023년 일시적 반등을 보였지만, 지난해 모든 분야에서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하이난성의 지난해 상반기 화장품 소비액은 전년 동월 대비 40억 위안(약 5억6,000만 달러·8,000억원) 줄었고, 상하이의 소매 지출은 2.3% 감소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내 주택 경기 침체, 청년 실업률 상승, 정부의 장기 경기부양 지연 등이 맞물리며 고가 명품 중심 소비 트렌드를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한국 면세업계는 일제히 운영 효율화에 돌입했다. 호텔신라는 면세 부문 정규직 인력을 2023년 말 752명에서 올해 6월 666명으로 11% 줄였고, 롯데면세점 역시 같은 기간 910명에서 750명으로 18% 축소했다. 이들 면세점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고 외주 인력을 내근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절감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자리 불안과 업무 과부하는 고스란히 남은 직원들의 몫이 됐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달 신세계 본점 앞에서 고용불안 해소 촉구 집회를 열고 “면세 사업권 반납이 반복되는 동안 현장 인력 충원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근무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 명의 직원이 3~4개 매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식사나 휴식조차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 전반의 불황이 짙어진 가운데, 기대했던 ‘중국 특수’마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서 면세점은 이제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을 미룰 수 없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