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남북 5시간 시대’ 가속, 中·日 고속철 수주전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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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간소화에 해외 업체 관심 급등
속도전 중국, ‘철도 동맹’으로 접근
일본은 기술력 앞세워 수주전 가세

베트남이 670억 달러(약 96조원) 규모의 남북고속철도 건설에 속도를 내면서 동남아 최대 인프라 프로젝트의 막을 열었다. 당초 2027년 예정됐던 착공 시점을 내년으로 앞당기고, 행정 절차와 재원 조달 구조를 재편하면서다. 베트남이 국가 주도형 추진 체계를 본격 가동한 가운데, 중국은 국영기업을 비롯한 자국 주요 철도사를 앞세워 자금·시공 패키지를 제시하고 나섰고,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일본은 신칸센 기술과 공적개발원조(ODA)를 묶은 고품질 모델로 대응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가 주도·민간 보완’ 구상
31일 현지 경제매체 카페에프(Cafef.vn)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회로부터 670억 달러 규모의 남북고속철도 투자계획을 승인받고 착공 준비 절차를 신속히 진행 중이다.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1,541km를 잇는 해당 노선은 20개 성과 도시를 관통하며 23개의 여객역과 5개의 화물역을 포함할 예정이다. 설계 속도 시속 350km에 달하는 이 철도가 완공되면, 베트남 북단에서 남단까지 30시간 이상 걸리던 이동 시간이 5시간 안팎으로 단축된다. 베트남 정부는 이 사업을 ‘국가특별중요사업’으로 규정하고, 행정·재정·법률 절차를 일괄 처리하는 방식으로 추진 속도를 높다는 방침이다.
애초 해당 프로젝트는 2027년 착공을 목표로 기술 표준과 재원 조달, 입찰제도 정비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팜 민 찐 총리가 내년 말 착공을 공식화하면서 일정이 1년가량 앞당겨졌다. 이를 위해 베트남은 주요 설계·감리 구간에 지명입찰제를 도입하고, 5월 정기국회에서 전체 패키지를 일괄 승인하기도 했다. 또 법무부는 일부 심의 절차를 간소화해 행정 부담을 줄였고, 교통부는 북부 철도망 확충 사업과 병행 추진해 일정 단축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같은 움직임은 베트남 정부가 인프라 투자 중심으로 자국 경제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려는 의지로 해석됐다.
재원 조달 구조 또한 구체화됐다. 베트남 정부는 총사업비의 30% 이내에서 해외 차입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국내 공공 투자와 지방정부 분담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와 동시에 지방정부에는 역세권 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등 부대사업을 통한 분담을 요구했으며, 환경·사회영향평가(ESIA)를 조기 착수해 토지 수용과 주민 이주 문제를 선제적으로 정리 중이다. 아울러 군수 물자 수송 기능을 병행해 국방 예산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고속철을 단순한 교통망을 넘어 산업 구조 전환의 촉매로 활용하겠다는 게 베트남 정부의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거대 민간 자본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인 빈그룹은 올해 5월 자회사 빈스피드(VinSpeed)를 설립하고, 남북고속철을 5년 안에 완공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빈스피드는 기존 정부 주도 방식으로는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민간이 기술과 자금을 통합 운용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세웠다. 다만 자금 조달 방식, 기술 공급국, 국제 금융기관 협력 방안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는 이어지는 형국이다. 베트남 정부는 빈스피드의 제안을 보조적 검토안으로 분류하되, 민간이 제시한 속도·효율 모델을 참고해 국가 주도 계획의 보완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정치적 결속력 활용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베트남이 남북을 잇는 고속철 본선은 자국 주도로 추진하되, 대외 금융과 기술을 끌어오는 통로로 중국의 손을 맞잡는 방식이다. 이미 다수의 중국 국영기업이 투자·시공·장비 공급을 한 번에 묶은 패키지 안을 건넸고, 베트남 역시 자국 북부에서 중국 국경으로 이어지는 보조 철도망을 열어준 상태다. 이는 두 나라가 사회주의 체제라는 공통점 외에도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 잇는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협력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베트남 입장에선 초대형 공공투자를 흔들림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외자와 공산당 간 교류 채널을 동시에 쥐는 편이 계산상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보낸 신호는 올해 하계 다보스 기간까지 이어졌다. 당시 베트남-중국 교통인프라 협력회의에서 중국중차(CRRC) 대표단은 남북고속철과 도시철도, 에너지 프로젝트까지 포괄하는 장기 파트너십을 제안하며 베트남 철도장비 현지 공급망까지 구축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베이징과 쿤밍, 톈진에서 열린 연속 면담에서는 중국교통건설공사(CCCC), 중국철도공사(CREC), 중국철도건설공사(CRCC) 등 3대 국영 철도기업 수뇌부들이 베트남 총리를 만나 “남북고속철을 포함한 인프라 개발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 국영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동남아시아 육상 교통망의 규격을 자국 표준으로 굳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베트남이 중국 노선을 선행 승인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베트남 국회는 올해 초 하이퐁–하노이–라오까이를 잇는 391km 중국 연결철도 건설 계획을 의결했고, 해당 노선의 재원 일부를 중국 대출로 조달하겠다고 명시했다. 중국 윈난성과 맞닿은 이 노선이 개통되면, 중국-베트남-아세안 물류를 한 줄로 꿰는 효과가 나온다. 여기에 중국 노선이 1,435mm 표준궤, 시속 160km급으로 설계됐다는 점 또한 이를 남북고속철에 도입하려는 표준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려는 계산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은 중국 노선을 먼저 열어놓고, 남북축을 뒤에서 밀어 올리는 순서를 택한 셈이다.
일본 무기는 ‘세계 최초 고속철’
변수는 일본이 중국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이번 사업에 달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상업용 고속철을 개통한 경험을 앞세워 “베트남이 장기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일본의 모델을 참고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지고 있다. 베트남이 여객은 신형 고속철로, 화물은 기존 철도로 분리 운영하는 이원화 모델을 택하면 효율성과 비용을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중국이 속도와 자금, 정치 채널로 밀어붙였다면, 일본은 안전과 품질, 체계화된 운영 경험으로 승부를 보겠단 전략이다.
일본의 접근은 단발성 기술 협력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ODA 차관과 기술 컨설팅을 하나로 묶는 방식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대출에만 의존한다는 인상을 희석할 수 있는 데다, 노선·차량·신호 시스템을 일본 표준에 맞춰 가면서 운영·유지보수까지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 측에 매우 매력적인 시나리오로 인식된다. 특히 일본이 제안하는 신칸센형 고속철은 안전 장치와 제동 시스템, 열차 간격 제어, 터널·교량 구조 해석까지 통합 설계돼 사업 주체가 지나치게 쪼개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실제 베트남 정부 내부에서도 중국이 북부 연결선을 선점한 상황에서 본선까지 중국에 맡기면 조달·기술·운영이 한 나라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과 공동 추진하는 북부 노선에 이어 남북을 관통하는 주력 고속철까지 중국식 표준으로 가면, 베트남이 구상하는 ‘열린 철도 기술 플랫폼’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본이 제시하는 고품질·고비용 트랙을 일부 구간에라도 도입해 두면, 추후 서남부 도시철도나 공항 연계 노선에 유럽식·일본식 시스템을 병행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 같은 일본식 모델은 한계가 명확하다. 일본은 기술 신뢰성과 ODA를 내세우는 대신 공정별 착공 시점을 베트남이 원하는 만큼 앞당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며, 환경·사회영향평가 요건도 비교적 엄격하다. 반대로 중국은 북부 접경선과 도시철도, 항만·공항을 한꺼번에 연결하는 속도전 구상을 앞세워 베트남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는 ‘누가 더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베트남이 어느 정도까지 중국 의존 위험을 분산할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수주 성적이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