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 완판 자신감” 삼성전자, 가격 승부로 점유율 확대 노린다
입력
수정
실적 발표 후 HBM4 납품 진척 상황 밝혀 샘플 대거 생산, 1c D램 실험의 명암 손해 최소화 선에서 공격적 가격 전략 예상

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샘플 납품 사실을 공식화하며 시장 기대를 키웠다.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가격을 낮춘 HBM3E 공급을 인정하며 HBM4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첨단 공정 수율이 최근 안정세에 접어든 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HBM4 탈락설’ 무마
3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김재준 삼성전자 반도체(DS)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전날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이후 질의응답 세션에서 “현재 차세대 HBM4 샘플을 모든 고객사에 출하한 상태며, 고객 과제 일정에 맞춰 양산 출하 준비까지 마쳤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도 HBM 생산 계획은 올해 대비 대폭 확대해 수립했는데, 해당 물량에 대한 고객 수요를 이미 확보했고 추가적인 주문도 지속 접수되는 상황”이라며 “이에 내부적으로 HBM 증산 가능성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이번 실적발표에서 HBM3E와 HBM4 두 제품군의 시장 반응을 동시에 언급했다. 특히 HBM3E 12단 제품에 대해서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비 약 30% 낮은 가격으로 납품 중이라고 밝히면서 “HBM4 또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물량 전략을 병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중 HBM4 공급 계약을 확보할 경우, 엔비디아와 AMD 양쪽 모두에 일정 비율의 물량을 분산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이를 통해 SK하이닉스가 장악한 AI 메모리 시장의 균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발표는 시장 전반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계기도 됐다. 불과 사흘 전 한 인터넷 매체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6세대 HBM4 품질 인증 과정에서 탈락했다”고 보도했고, 27일 삼성전자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9만9,000원까지 밀렸다. 문제의 기사는 발행 직후 10여 분 만에 삭제됐으나, 투자심리 불안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컨퍼런스콜을 통해 HBM4 샘플 출하 사실을 공식화 하면서 주가는 빠르게 반등했다. 30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3,600원(3.58%) 오른 104,100원에 장을 마쳤으며, 31일에도 3,400원(3.27%) 추가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이번 컨퍼런스콜을 통해 HBM4 탈락설을 완전히 불식시키고, 기술 경쟁력과 공급 신뢰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김 부사장은 “HBM4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고객사의 성능 요구를 반영해 완성된 제품”이라면서 “초당 11Gbps 이상의 속도와 저전력 등 모든 특성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발언이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제공한 샘플이 기존 SK하이닉스 HBM3E와 성능상 대등하거나 일부 구간에서는 앞섰다는 신호로 풀이했다. 나아가 인공지능(AI) 가속기와 고성능컴퓨팅(HPC)용 GPU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HBM4의 본격 공급은 삼성전자의 DS 부문 실적 개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기술적 리스크 관리-품질 확보 병행
이처럼 낙관적 전망은 불과 한 달 전까지 업계에 만연했던 회의적 시각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9월 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6세대 HBM 샘플을 웨이퍼 기준 1만 장 내외로 대량 생산한다는 소식과 함께 “샘플 치고는 너무 많은 물량”이라는 반응이 확산한 바 있다. HBM은 일반 D램과 달리 고객사별로 스펙·패키지·전력 조건이 모두 달라 여러 고객에게 배포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물량은 불가피하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수율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품을 고르려면 애초에 생산량을 많이 깔아둘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샘플 대량 생산은 성능·전력 조건을 맞추지 못한 데 따른 조치라는 지적이다.
당시 지적의 핵심은 공정 선택에 있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HBM3E와 동일하게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5세대(1b) D램을 기반으로 HBM4를 올리는 반면, 삼성전자는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프런트다이로 차용했다. 1b는 이미 양산·신뢰성 검증이 끝난 공정이지만, 1c는 아직 궤도에 완전히 오른 단계가 아닌 탓에 후공정인 적층까지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된다. 1만 장 수준의 샘플 물량은 바로 이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자, “여러 곳에 뿌려도 될 만큼의 합격품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라는 게 회의론자들의 시각이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다시 ‘치킨게임식’ 전략을 꺼내 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 또한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HBM4는 베이스다이 단가와 공정 복잡도가 높아지면서 사실상 고가 메모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의 공급망에 어떻게든 진입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20% 미만 수준까지 낮추는 시나리오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은 수율 가능성을 물량으로 메우고, 물량을 기반으로 가격을 다시 내리는 구조가 작동하면, 향후 HBM4 시장은 기술 경쟁인 동시에 단가·마진을 두고 벌이는 체력전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HBM4 저가 전략 가능성
삼성전자는 이번 콘퍼런스콜에서 김 부사장의 “HBM3E를 기존 대비 30%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발언을 통해 시장의 관측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실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단기적인 수익보다 시장 점유율 확대에 방점을 찍었음을 시사한다. HBM 시장은 고사양 AI 칩 수요에 맞춰 매년 급성장하고 있지만,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가격 협상력이 막강해 제조사 간 가격 경쟁이 심화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이미 수율이 안정권에 진입했음을 내세워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구사할 여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달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 참석해 HBM4 실물을 공개하며 로직 다이 수율이 90%에 달한다고 밝혔다. 업계가 60%대 수율을 양산 기준으로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성숙도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11Gbps의 핀 속도와 1,024→2,048개로 늘어난 데이터 전송 통로, 10나노 1c 공정과 자체 4나노 파운드리 베이스 다이 등 기술 요소는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웨이퍼 단가 부담이 줄어들면, HBM4도 HBM3E처럼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전략은 표면적인 단가 인하를 넘어 시장 주도권 재편 시도로 읽힌다. 업계는 내년 HBM 시장이 최대 500억 달러(약 71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현재 17% 수준인 삼성전자의 비중이 30% 안팎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다만 신중론 또한 제기된다. 골드만삭스는 시장 경쟁 심화를 이유로 내년 HBM 가격이 10%가량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 삭스는 “파이가 커진다고 해서 제조사의 마진도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짚으며 “(HMB 시장은)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에서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삼성의 저가 공세가 단기 실적보다 ‘협상력 확보’를 위한 방어적 선택일 것이란 관측에 설득력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