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만 ‘16만 가구 멈춤’, 공사비 급등·규제가 만든 재건축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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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등 일부 고가 지역만 사업 유지
대출 규제로 ‘완전 중단 구간’ 확산
재초환 폐지 카드로 사업성 회복 시도

공사비 급등에 시름하던 서울 재건축 시장이 각종 규제까지 겹치면서 빠르게 식어가는 모습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강남 등 일부 지역만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양극화가 심화한 가운데,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 제한과 거래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비강남권 정비사업은 사실상 멈춰 섰다. 분담금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조합들은 사업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건설사들은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잇따라 발을 빼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인 제도 개편으로 해법을 모색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근본 원인인 공사비 구조와 금융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공급 정상화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비 급등이 만든 ‘재건축 양극화’
4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16일을 기점으로 서울 전역과 분당·과천·수원 등 경기도 12개 지역이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상태다. 이들 규제 지역 내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40%로 낮아졌고, 15억원 이하 대출 한도 또한 6억원으로 제한됐다. 특히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재건축을 비롯한 정비사업이 대거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 집계에 의하면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양도 제한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210곳, 16만 가구에 달한다.
다만 시장의 한파는 이번 규제 이전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재건축 시장은 지역 간 극단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강남 등 일부 지역만 살아남는 구조가 고착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은 약 1,800억원의 공사비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된 바 있으며,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가구당 5억원대 추가 분담금 논란으로 시공사인 GS건설과 계약이 해지됐다. 이들 사업지 외에도 여의도, 목동, 서초 신반포7차 등에서 사업 철회 논의가 이어졌다.
다수 정비사업이 멈춰 선 결정적 요인으로는 단연 공사비 급등을 꼽을 수 있다. 2022년 이후 철근·레미콘 등 주요 자재 단가가 30% 안팎 상승한 가운데, 인건비와 금융비용까지 겹치면서 조합과 시공사 간 협상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시공사는 원가 손실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거나 입찰을 철회하고, 조합은 분담금 부담을 이유로 증액안을 거부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노원구 상계2구역에서는 조합원 분양가 9억2,000만원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며 관리처분계획이 부결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장에 코디네이터를 파견하고 공사비 검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애쓴다는 방침이지만, 성과는 요원한 실정이다. 정비업계의 근본적인 수익성 악화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이처럼 공사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국면에서 최근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으로 거래 및 제한까지 겹치면서 정비사업을 둘러싼 자금 조달 여건은 더욱 악화됐고, 대부분 사업장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금융 접근 차단되며 사업 추진 동력 사라져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로 실수요자들의 자금줄마저 막히며 시장 경색을 부추겼다. 가뜩이나 분담금과 공사비 부담으로 추진이 더뎠던 비강남권 재건축 사업들은 이번 조치로 완전히 정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금 여력이 부족한 조합원들은 이주비 대출 축소로 자금 마련이 막혔고, 거래 제한까지 겹치면서 사업 참여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 또한 속출했다. 이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치솟을 대로 치솟은 분담금을 감당할 길이 없다”는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노원구 중계주공4단지는 내년 초 추진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속도를 내던 중이었지만, 규제 발표 직후 “집을 팔고 나가겠다”는 조합원이 급증하며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 인근 상계주공5단지 또한 가구당 5억원대 추가 분담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출 한도까지 줄어들자, 사업을 미루자는 분위기가 퍼졌다. 3억원대 분담금이 예상되는 도봉구 쌍문한양2·3·4차 재건축 역시 많은 조합원이 현금청산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발을 빼는 분위기다. 이 같은 흐름은 1기 신도시로 확산되면서 분당과 평촌 등 경기권 재건축 예정 단지들까지 추진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실수요자의 금융 접근이 막히면서 시장 전반의 유동성도 빠르게 얼어붙었다. 재건축 사업장 인근 중개업소 현장에서는 계약이 끊겼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그나마 사업이 추진 중인 일부 중대형 단지는 수억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현금으로 지불할 여력을 갖춘 매수자만 참여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담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대출까지 막히면 조합원들로선 버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꼬집으며 “정부가 금융 지원 보완책 없이 규제만 강화한 탓에 재건축 시장은 되돌릴 수 없는 침체 국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세금 완화 정책으로는 공급 정상화 요원
정부는 세금 중심의 부동산 안정 정책으로는 시장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정비사업 침체를 완화할 제도적 보완책을 검토하고 나섰다. 현재 거론 중인 방안으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를 꼽을 수 있다. 당초 정부와 여당 모두 재초환 유지 기조를 견지했지만, 10·15 대책 이후 악화된 민심과 정비사업의 급격한 위축을 고려해 완화 및 폐지를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급 촉진에 도움이 된다면 유예나 폐지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면서 “지금은 적극적인 제도 개선으로 공급 확대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재초환은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원 1인당 8,000만원을 초과하는 개발이익의 10~50%를 환수하는 제도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재초환 적용 예상 단지는 전국 68곳, 조합원 1인당 평균 부담금은 1억5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일부 단지의 경우 평균 4억5,000만원에 달하는 초과이익이 환수되는 곳도 확인됐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사업 추진을 막는 결정적 규제”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폐지가 현실화할 경우 주택공급 신호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주를 이룬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가 “일부 의원의 견해일 뿐”이라며 당내 의견 대립을 시사한 만큼 실제 폐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재초환이 가져올 공급 촉진 효과보다 단기적 기대심리를 자극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공사비 급등과 각종 금융 규제, 낮은 수익성 등 근본적 제약이 남은 상황에서 일부 정책 완화만으로는 사업성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재건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정치적 고려나 공공 기여 등의 조건 없이 재초환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면서도 “정책 목표가 ‘공급 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임을 고려할 때, 정부가 추가적 금융 완화나 공사비 구조 개선을 병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우려 섞인 의견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