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제3 AI 스택 도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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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한국 등의 일부 국가들이 제3 AI 생태계 도전 중 한국은 반도체 생산 역량만 있을 뿐, 연구 인재 부족, 소프트웨어 역량 부족 등으로 어려울 것 전망 아랍 지역에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되면서 하드웨어 장점 희석 중 인재 확보로 장기전을 노리는 방향으로 AI 정책 전환해야
미-중 간의 AI 기술 개발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럽에서는 미-중과 별개로 돌아가는 제3의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미-소 냉전기를 거치며 미국에 기술적 의존도가 높아진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계속해서 미국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유럽중심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어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연합(EU)의 정책적 지원이 빈약한데다 인력들이 대부분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유럽 내에서 기업을 키우려는 생각들을 하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이 일반적이다. 프랑스의 미스트랄AI를 비롯한 몇몇 유럽 AI 기업들이 탈 미국, 소버린AI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유럽이 미국처럼 공격적으로 자본 투자를 진행한 경험이 부족한데다, 미국 기업들의 인재 풀, 중국 정부의 자금력과 대비해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탈 미국, 탈 중국, 제3의 AI 생태계에 대한 도전
최근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제3의 AI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소리가 정부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에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독일 등의 주요 유럽 국가들이 '3rd AI Stack (제3 AI 기술군)'을 만들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겠다고 나선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도전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의 AI 도전을 비관적으로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업계 관계자들이 보는 AI 시장은 크게 AI연구, 서비스 개발, 그리고 하드웨어 설비 구축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AI연구 시장은 수학, 통계학 훈련이 미국 주요 연구 중심대학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을 통칭하는 미국식 '이과' 전공 표현) 박사 과정 전공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지난 20여년간 중국 대학들이 우수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시키며 추격을 거듭한 가운데 최근들어서는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수준으로 추격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1월에 공개된 딥시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비스 개발 시장은 IT 개발자들 시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던 산업의 중심이 인력 기준으로 저가 인력은 인도, 동남아시아로 이동했고, 고급 인력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지역은 유럽이며, 그 외에도 중국, 한국 등의 국가들이 미국에서 만들어 놓은 표준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끝으로 하드웨어 설비 구축 부분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중국이 자체적으로 하드웨어 설계, 생산에 모두 도전하면서 거센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중국을 제외하면 하드웨어 설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서유럽의 일부 국가들 및 일본, 한국 정도가 후보군으로 평가된다.
유럽에서 최근 3rd AI Stack 논의가 활발해진 이유는 첫째, 미국 STEM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비 아시아인 학생의 대부분이 유럽인이라는 점, 미국 교육이 무너지면서 포기했던 수학·과학 이론 교육을 유럽은 아직도 대학 교육 과정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위에 언급했던대로 미-소 냉전기를 거치며 글로벌 질서의 주도권을 잃은 것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만, 네덜란드의 ASML, 영국의 ARM, 프랑스의 미스트랄AI 등으로 대변되는 반도체 시장, AI 시장 주요 기업들의 높은 기술력 등이 언급된다.
유럽과 한국의 격차 - 인재
한국이 삼성전자, SK하아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생산 설비를 수십년 동안 구축한 덕분에 데이터 센터를 저가에 확보할 수 있는 장점과, 유럽의 ASML, ARM, 미스트랄AI 등의 기업이 갖추고 있는 반도체 설계 역량, AI 기술력 등의 장점 등은 한국과 서유럽을 3rd AI Stack 후보군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3rd AI Stack이 탄생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평가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재의 질적 차이다.
한국은 기초 과학 역량이 부족한 가운데 공학 연구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바쁜 교육 시스템을 지난 50년간 운영한 탓에, 대학원의 AI 관련 교육도 탄탄한 수학적 기초보다는 코드 기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더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반값 등록금 등의 정책으로 정부 지원금에 철저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대학 사정상, 대학원에서 연구할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AI 기술 스택이나 학술 논문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 받는 사례가 희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인 것이다.
반면, 유럽은 여전히 미국 대학의 STEM 박사 전공에 인재를 공급할 수 있는 대학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유럽 내부적으로도 수학, 통게학, 논리적 사고력 기반의 훈련이 잘 된 인재들의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더 높다. 필자가 재직 중인 스위스AI대학은 2021년 가을부터 2025년 가을까지 만 4년간 약 80여 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학부 2학년에서 석사 1학년 수준에 걸친 AI 및 데이터 과학 교육을 한국에서 진행한 바 있는데, 교육 프로그램 진행 중 난이도를 낮춘 과정을 추가로 만들고, 한국어 지원 조교, 시험 문제 추가 해설 등의 각종 지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11명이 졸업 논문을 내고 졸업했다.
2025년부터는 같은 교육 과정으로 치른 동유럽 지원자들에게 교육을 진행 중인데, 한국 학생들과 달리 수학적으로 추상화 된 논리를 이해하고 시험 문제 및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국내에서 첫 학기 수업으로 운영했던 학부 2학년 수준의 수학, 통계학 과목을 입학시험으로 치뤘을 때, 한국에서는 각종 지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30% 미만이 C학점 이상을 받았던 반면, 동유럽에서는 26명의 지원자 중 21명이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대학 운영팀은 동유럽 학생들과 면담을 거친 후, 한국 교육을 중단하고 교육 인력을 동유럽 인재들에 집중시키는 것이 학교 졸업생들의 훈련 수준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상태다.
유럽식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학생들과 시험 결과를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시험 이외에도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응용하는 능력, 수업 중 질문에서 보이는 이해도 등에서 대단히 큰 차이를 반복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AI반도체 설계 역량과 소프트웨어 글로벌 표준 설계 경험
업계에서 또 주목하는 부분은 반도체 설계 역량이다. ASML, ARM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럽은 업계 주요 인력들이 반도체 설비 역량, 설계 역량을 갖춘 인재들로 고수익을 내는 생태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 진출한 퓨리오사AI가 설계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 있으나, 국내에서 길러낸 인재가 퓨리오사AI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상황은 아니다.
하드웨어적인 생산이 가능하다고 해도 엔비디아의 쿠다(CUDA, 그래픽 카드를 통한 병렬 컴퓨팅 플랫폼 소프트웨어)와 같은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새로운 도전 과제다. 엔비디아의 성공도 그래픽 카드를 일반 이용자들이 AI 알고리즘을 돌리는데 쓸 수 있도록 CUDA 시스템을 제공해줬기 때문에 시작됐다. CUDA가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이 차단됐고, 3rd AI Stack에 대한 도전도 하드웨어적인 도전이라기 보다는 CUDA를 대신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표준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이 부분에서 글로벌 전문가들은 유럽 출신 컴퓨터 과학자들이 아시아 출신 컴퓨터 과학자들보다 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프로그램 개발이 아니라 설계를 할 수 있는 역량,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통한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인 반면, 글로벌 IT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운영체제 중 하나인 리눅스(Linux)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업계 주요 오픈소스가 대부분 유럽산(産)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낸 기업 업무용 툴인 오피스와 호환되지만 무료로 공개된 리브레 오피스(Libre Office)로 잘 알려진 리브레 브랜드의 경우, 리브레 번역기(LibreTranslate)도 일반 프로그래머가 자기 상황에 맞게 고쳐서 쓸 수 있도록 '오픈 소스 서비스(Open Source Service, OSS)'로 출시되어 있다. 유료 AI번역기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에서 나오고 있는 반면, OSS는 모두 유럽에서 제공되고 있다.
최근들어 중국의 AI 굴기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로 풀어놨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하드웨어적으로는 미국 엔비디아와 큰 격차가 있지만, CUDA를 대신하는 소프트웨어가 제공되고,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정보가 소통되면서 새로운 기술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과 달리, 각종 프로그램에서 수십 년간 OSS 경험이 쌓인 유럽이 3rd AI Stack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강력한 이유 중 하나다. 영어권 및 유럽어권에 개발 문서를 배포하고, 사용자 지원을 돕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오류를 수정하고 완성도를 높여온 프로그래밍 인프라 경험을 겪은 인재를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랍과 연계해 풀어내는 자본 부족 문제
지난 10월, AI반도체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엔비디아의 주요 제품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는 것을 미국 정부가 승인하면서 하드웨어 구매 대신 아랍 지역에서 제공하는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것으로 논의의 중심이 옮겨갔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UAE에 2029년까지 79억 달러를 투자해 AI데이터 센터를 더 확장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력 공급 문제가 극심한 유럽, 미국과 달리, 넘쳐나는 천연 자원을 산업화 하고 싶은 아랍의 산업 전략을 활용해 데이터 센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간 하드웨어 비용 문제로 AI 프로젝트 진행에 부진을 겪던 기업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아랍 지역에 인프라가 대규모로 건설될 경우, 클라우드 기업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하드웨어 확보를 위해 지불해야하는 막대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갖고 있던 가장 큰 장점인 저가 데이터 센터가 아랍과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장점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전문가들이 한국보다 유럽에서 3rd AI Stack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