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韓 경제, 수출 신기록 썼지만 체감 경기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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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내년 성장률 2.2% 전망 "한국 수출 올해보다 좋다" 실상은 반도체 빼면 마이너스 전환

올해 0%대 저성장이 예고된 한국 경제가 내년 반등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2%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제기됐다. 하지만 성장률이 올라도 내수 회복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싸늘한 실물 경제의 연속이다. 성장이 주로 반도체 수출 증가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내수 부문의 호전은 더디기 때문이다. 이른바 ‘반도체 착시’로, 그마저도 해외 공장 투자 확대 등에 기인한 결과여서 국내 고용이나 설비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향후 전망을 낙관하기 어렵다.
경제성장률 끌어 올린 ‘반도체 효과’
11일 한국금융연구원은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6년 경제 및 금융 전망 세미나’에서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올해 1.0%에서 내년 2.1%로 높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올해 실질 GDP 증가율을 1.0%로 예상한 것과 비교할 때 바닥을 찍고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성장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설비투자 부문이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의 미약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관련 투자 수요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서 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2.5%)에 이어 내년에도 완만한 증가 흐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같은 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25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종전 전망(8월·1.6%)보다 소폭 상향한 1.8% 성장으로 전망했다. 지난 8월과 비교해 올해와 내년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주된 상향 배경은 반도체 경기 호조다. KDI는 내년 역시 반도체 경기가 좋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11일 발표한 ‘2026년 세계 경제전망’에서 내년 세계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앞선 5월 전망치(2.9%)에서 0.1%포인트 높인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9%)의 전망치보다는 높고, 국제통화기금(IMF·3.1%)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앞선 국책연구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수출 회복을 주 상향 요인으로 꼽았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글로벌 IB 8개사가 제시한 우리나라 실질 GDP 성장률은 평균 1.9%였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 8월 제시한 전망치(1.6%)를 훌쩍 넘는 수치다. 구체적으로 씨티가 기존 1.6%에서 2.2%로 전망치를 대폭 상향하면서 평균치가 지난 9월 말(1.8%)보다 0.1%포인트 높아졌고, JP모건과 골드만삭스도 2.2% 성장을 전망했다. 노무라는 1.9%, UBS는 1.8%, 바클리와 HSBC는 1.7%로 보고 있다. IB들 역시 반도체 수출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호조를 보이며 성장률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편중’ 심화 경고등
이 같은 전망은 한국의 반도체 의존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은의 ‘최근 수출·경상수지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보고서를 보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올해 1~9월 기준 23%에 달했다. 지난달 수치도 다르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반도체 수출액은 157억3,000만 달러(약 23조원)로 10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6.4%에 달했다. 수출 2위 품목인 자동차(55억5,000만 달러·약 8조원)의 2.83배에 이르는 규모로, 사실상 단일 품목이 전체 수출 흐름을 견인하는 ‘반도체 편중’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반도체 효과를 걷어내면 수출 전반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 25일까지 실적 기준 누적 수출액은 5,646억3,300만 달러(약 828조원)로 전년 동기(5,545억2,600만 달러) 대비 1.82% 늘어났다. 하지만 반도체(1,314억6,000만 달러·약 193조원)를 제외하면 수출액은 4,331억7,300만 달러(약 635조원)로 전년(4,423억8,200만 달러)보다 2.08% 감소했다.
지난달 주요 15대 수출 품목을 보면 편중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반도체, 선박, 석유제품, 컴퓨터 단 4개에 그쳤고 자동차, 차부품, 이차전지, 철강, 일반기계, 가전, 무선통신,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섬유, 바이오헬스 등 11개 품목은 일제히 감소세로 돌아섰다. 전체 수출의 증가세가 반도체 독주에 의존하는 수출 구조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수출 집중도는 4,302로, 일본(2,459)보다 크게 높았다. 반도체 수출 집중도는 2000년 8,406에서 2010년 3,760으로 낮아졌지만 지난해 4,302로 다시 높아졌다. 또 한국,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주요 제조국가의 수출 상위 5대 품목의 비중(지난해 기준)을 보면 한국은 1위인 반도체가 17.6%, 2위 승용차는 10.0%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1위인 항공기는 5.9%, 2위 석유제품은 5.7%였고, 독일은 1위 품목인 승용차는 8.7%, 이어 소매의약품 3.9%로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1등 품목 비중이 지나치게 컸다. 이는 대외 충격 리스크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향후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전환하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예전보다 클 수 있다는 얘기다.

무너지는 실물 경제
더 큰 문제는 반도체 수출 호황이 정작 국내 경기 회복으로 직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국내 규제 부담을 피하기 위해 투자의 중심축을 해외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 발생한 수익이 국내 설비 투자나 신규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고 해외 공장 증설과 현지 인력 채용에 투입되면서 수출 호황의 낙수효과는 갈수록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자본집약적 산업인 반도체 특성상 대기업 중심 구조가 불가피해 반도체 호황이 곧바로 가계 소득 증가나 내수 진작으로 번져가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부 대기업에 의존한 수출 증대나 일회성 현금 지원만으로는 0%대 성장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를 살려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부진에 빠진 철강과 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들을 정리해 제 몫을 하는 기업들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최근의 뚜렷한 지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체감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600대 기업의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4.8로 44개월째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내수(97.6), 수출(94.2), 투자(91.6) 등 모든 부문에 대한 기업 전망이 부정적이다. 더구나 지금은 관세 불확실성이 크고 민간소비 개선의 마중물이 된 재정 효과 둔화가 불가피해 경기 여건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와 고용에 나서지 않는다면 성장의 불씨가 살아나기 힘들다. 아무리 정부가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졌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도 지속적인 성장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