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판 ‘빅딜’ 잇따라, 정부 완화책 부실 정리 촉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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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 저축은행도 매각에 속도
규제 완화에 PF 부실 정리 기대감
지역 격차·구조적 리스크는 여전

정부의 규제 완화와 자본시장 재편 움직임 속에 저축은행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상상인·라온·SBI저축은행 등 굵직한 인수합병이 연달아 이뤄지는 등 업권 재편이 본격화하면서다. 금융당국은 영업구역 규제 완화와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 조정 등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리를 돕겠다는 구상이지만, 지역 간 수익 편차와 중소형사의 부진은 여전한 상황이다. 수도권 중심의 흑자 집중과 지방권 대출 위축이 맞물리며 저축은행 업권 전반의 체력 회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본 확충 여력 없는 저축은행, M&A 외 생존책 부재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저축은행 업권의 구조조정이 활발해지며 정상화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달 상상인저축은행 지분 90% 이상을 인수한 KBI그룹을 꼽을 수 있다. 전선 및 자동차 부품 중심 제조업 기반 중견기업인 KBI그룹은 지난 7월 경북 구미에 영업권을 둔 라온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상상인저축은행 지분까지 추가로 사들이며 25년 만에 금융업 복귀를 알렸다. 이번 거래금액은 1,100억원 규모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이후 인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4월에는 교보생명이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의 지분 50%+1주를 9,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자금 집행을 완료해 SBI홀딩스로부터 지분을 단계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대형 보험사가 비은행권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저축은행 시장 내 지배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전통 금융지주가 아닌 중견기업이나 제조업 기반 그룹까지 잇따라 진입하면서 업권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흐름 또한 탄력이 붙었다는 진단이다.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곳은 애큐온저축은행과 애큐온캐피탈이다. 올 상반기 기준 애큐온저축은행의 자산은 5조3,698억원을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NPL) 또한 6.4%로 업계 평균 9.5%보다 양호한 수준을 보였다. 애큐온캐피탈 역시 총자산 4조162억원, 순이익 243억원을 기록하는 등 우량 매물로 평가된다. 수도권 기반의 이 두 회사는 금융지주사, 국내외 사모펀드, 중견기업 등 다수 후보가 인수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는 유럽계 사모펀드 EQT파트너스가 꼽힌다. 업계는 EQT파트너스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연내 1조원대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이 같은 인수합병(M&A) 훈풍의 배경에는 저축은행 업권 전반의 실적 개선이 자리한다. 저축은행중앙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79개 저축은행의 누적 순이익은 2,57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3,958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연체율도 전년 대비 1%p 낮아진 7.53%로 개선됐다. 다만 이 같은 회복세는 PF 부실 정리에 따른 일시적 효과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부실채권 매각과 일부 저축은행의 자회사 정리 작업이 병행되면서 재무구조가 일부 회복된 것에 불과하단 지적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저축은행의 근본적 체력 회복을 위해선 여전히 자본 확충이 필요하며, 결과적으로 M&A 외 생존 방안이 없는 저축은행들이 새 주인을 찾는 움직임 또한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산 건전성 개선 기대 커져
국내 중소형 저축은행들은 지난 3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려 왔다. 주원인은 부동산 PF 부실에서 비롯된 건전성 저하다. 건전성 악화로 대손충당금은 늘고 상각 규모가 커진 가운데, 2022년부터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조달비용까지 늘어난 것이다. PF 정상화펀드를 통해 부동산 PF 부실을 털어내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매각 후 재출자를 통해 수익증권을 취득 구조의 회수 가능성이 낮은 탓에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다.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 수익 창출 기반이 비교적 견고하고 유가증권 운용 등으로 버틸 수 있었으나, 중소형 저축은행은 이마저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업계는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저축은행 역할 제고 방안이 영업력 강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는 모양새다. 지난 5일 금융위가 의결한 상호저축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의 핵심은 영업구역 내 여신비율 산정 방식을 현실화해 수도권 편중을 완화하고 지역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 복수 영업구역을 보유한 저축은행은 앞으로 수도권 여신에 90%, 비수도권 여신에 110%의 가중치가 적용된다. 여기에 서민·자영업자 지원 확대를 위해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에는 150% 가중치가, 기존 130%였던 지역신보 보증부 중소기업 대출은 150%로 상향된다. 이는 지역 대출을 늘려도 규제 충족이 쉬워지도록 설계한 것으로, 지방권의 신용 흡수 능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중소형 저축은행의 제약을 완화하는 장치도 포함됐다. 총자산 1조원 이하 저축은행은 영업구역 내 여신비율 산정 시 ‘영업구역 외 비대면 개인신용대출’의 50%를 총여신에서 제외할 수 있다. 모바일 채널을 통한 리테일 대출 확대가 규제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왜곡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나아가 건전성 규제의 경직성도 완화했다. 고정이하 여신을 보유한 차주라도 예·적금 담보대출이나 금융기관 보증부 대출처럼 원리금 회수가 확실한 담보 여신은 정상 분류를 허용한다. 기존에는 요주의까지만 가능해 대손 설정 비율이 과도하게 커졌지만, 이번 조치로 포트폴리오의 실질 위험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PF 부실의 사후관리와 재편도 제도권 틀로 끌어올렸다. 그간 업계 모범규준으로 운용되던 ‘사업성 평가기준’을 감독규정에 상향 반영하고, 평가등급을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4단계로 명확히 했다. 이를 토대로 신규 취급과 기존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매각·회수 과정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종국엔 시장가격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아울러 시장 자율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저축은행 M&A 기준을 현행 대비 완화하는 한시 조치도 시행된다. 이 과정에서 정기 적격성 심사 면제 등 법령 개정이 마무리되면, 대형 그룹의 인수 검토가 빨라져 자본의 유입 경로 또한 넓어질 전망이다.

수도권 쏠림·지방 고전 계속
전문가들은 제도의 효과가 본격화되려면 여신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심사체계 고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반기 흑자 전환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지방 간 실적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기록한 순이익 2,570억원 가운데 약 69%는 서울권 23개 저축은행이 차지했으며, 지방권의 수익 비중은 15% 안팎에 그쳤다. 업계는 이런 격차의 핵심 요인으로 지역 내 의무여신비율을 꼽는다. 지방 저축은행은 전체 대출의 40% 이상을 해당 지역 개인과 중소기업에 공급해야 하지만,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대출 수요가 줄어 규제 충족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금리 환경 변화도 업권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달 초 기준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2.68%로 4대 시중은행 평균치인 2.65%와 사실상 차이가 없다. 불과 1년 전 0.8%p 높았던 격차가 사라지며 고금리 예금이 모두 소멸한 것이다. PF 부실과 대출총량 규제에 따른 신규 대출 위축으로 고금리 예금 유치 필요성이 줄어든 결과다. 여기에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기조도 예금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를 총 1%p 내렸다. 대출 이자를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금금리만 유지하면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자금조달 전략을 근본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실적 개선의 불균형도 뚜렷한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저축은행은 올해 1분기 443억원, 2분기 2,14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은 각각 8.5%·10.7%에서 7.5%·9.5%로 개선됐고, 대손비용은 지난해 상반기 2조7,000억원에서 올해 2조원으로 27.5% 감소했다. 하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SBI저축은행, OK저축은행, 한국투자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 등 상위 10개사에 집중됐다. 이들 상위 10개사는 업권 자산의 52.4%, 순이익의 56.1%를 차지하며 중소형사와 격차를 확대했다.
PF 대출 규모는 다소 줄었으나, 부동산·건설업 비중이 과도하다는 점 역시 불안 요소다. 13개 주요 저축은행의 PF 익스포저는 지난해 상반기 4조3,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조5,000억원으로 약 20%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체 기업대출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 같은 구조에선 경기 둔화 시 재부실화 위험이 크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실적 회복세가 다시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대주주 자본력과 내부 통제는 과거보다 강화됐지만, 저축은행 업권 자체의 체질 전환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PF 부실 정리와 지역 편중 해소, 리테일 강화라는 세 과제를 병행하지 못한다면 내년 이후에도 회복세가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