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대어’ 이지스운용 두고 맞붙은 한화·흥국생명, ‘승자의 저주’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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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경쟁력 약화 생보업계, 보험손익 하락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위해 인수전 참전 인수 후 핵심인력 이탈 가능성, 부실자산 처리 등 불확실성도

국내 부동산자산운용업계 1위인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전이 치열해지면서 전체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보험업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대체투자와 운용 경쟁력 강화를 통한 체질 개선이 시급해진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이 강한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승자의 저주’ 우려가 제기된다. 인수 이후 핵심 인력 이탈이나 부실자산 리스크를 인수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직 계열화 통해 자금 내부화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11일 진행된 이지스자산운용의 본입찰에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실질적인 구도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간 경쟁으로 굳어졌다. 이지스는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67조원 규모의 운용자산(AUM)을 보유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이지스의 부동산 펀드 순자산총액은 27조원으로, 전체 부동산펀드 시장에서 14.54%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최근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경기 둔화로 펀드 수익률이 흔들리면서 지배구조 재편과 장기 성장 모멘텀 확보를 위해 매각이 추진됐다.
매각 주체는 창업주 고(故) 김대영 전 회장의 배우자이자 최대주주인 손화자씨와 주요 재무적 투자자(FI)들이고, 매각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맡고 있다. 매각 대상 지분은 최대 98%까지 확대된 상태며, 입찰가 수준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기업가치를 8,000억~1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인수전에 생보사들이 뛰어든 것은 최근 성장세가 둔화한 본업의 수익성을 만회하는 차원에서 자산운용사를 유망한 대체 투자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자산운용은 전통적으로 채권 중심이었다. 생보사 포트폴리오의 70~80%가 장기 채권에 묶여 있는 구조다. 그러나 금리 변동성이 커지고, 부동산·인프라 등 실물자산 비중이 확대되면서 보험사들은 단순 ‘투자자’에서 ‘운용 주체’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외적·내적 성장 모두 일군다는 복안이다. 또한 자산운용사를 수직 계열화하면 자금 조달·포트폴리오 구성·리스크 관리 전 과정에서 통합 시너지를 도출할 수 있고, 사모·대체·부동산 투자 전략을 내부화함으로써 외부 위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안정적 자금조달 한화 vs. 현금력 강점 흥국
한화생명은 이번 인수전에서 가장 안정적인 전략을 가진 후보로 평가된다. 한화그룹 오너 3세 중 둘째인 김동원 사장이 이끄는 한화생명은 일찌감치 이지스 인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한화생명은 한화그룹 계열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로 ㈜한화(45.06%)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1.75%) 등을 주요주주로 뒀다. 김 사장도 지분 0.03%를 보유했다. 한화생명이 이지스를 인수하면 ㈜한화의 연결기준 손자회사가 된다.
한화그룹과 한화생명은 이지스를 편입할 경우 연결이익이 늘고 실적 변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다.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상장사 지표 개선과 주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자산운용 등 그룹 계열사를 활용해 대체투자 딜 소싱과 리츠·오피스·물류센터 구조화 등에서 시너지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생명의 전략적 장점은 자금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금융 계열사와의 유기적 통합을 통해 펀드 운용 효율성을 높이고, 그룹 전체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교하게 재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미 대체투자 영역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축적해 왔다는 점에서, 이지스의 AUM을 그룹 포트폴리오와 결합할 경우 운용 효율성과 수익률 개선 효과가 동시에 기대된다.
또 다른 후보인 흥국생명은 모회사 태광그룹의 투자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과 연계해 이번 인수전을 준비해 왔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 회장(56.3%) 및 특수관계인(43.7%) 등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코스피에 상장하지 않았지만 상장사인 흥국화재 지분 40.06%를 갖고 있다. 태광산업도 흥국화재 지분 39.13%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흥국생명이 이지스를 사들일 경우 이지스의 이익은 흥국생명의 연결재무제표에 합산되지만 비상장사기 때문에 주가 등 시장 지표에는 노출되지는 않는다. 대신 이지스의 막대한 이익은 흥국생명의 내부자본 계정을 확충하고 재무안정성과 그룹 단위의 자본재조정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태광그룹 역시 이지스 인수를 통해 대체투자 역량을 그룹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다. 최근 흥국코어리츠에 서울 종로 본사 사옥을 7,193억원에 매각하고, 2,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총 9,000억원대의 현금을 확보한 점도 흥국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를 바탕으로 인수자금을 신속하게 조달할 수 있으며, 자금 조달 방식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해외 부동산 손실·인력 유출은 리스크
다만 매각 초반인 올해 상반기 6,000억원에서 출발한 이지스의 기업가치가 1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자, IB업계에서는 몸값이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부동산운용사의 핵심은 '운용 인력'인 만큼 이들의 이탈을 막지 못한다면 빈껍데기만 남는 격이 된다. 그간 이지스는 금융그룹이나 대기업 계열에 속하지 않은 독립계 운용사로서 독자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조갑주 전 단장이다. 한 IB 관계자는 “수많은 FI들이 합류하고 주요 운용역이 회사를 떠나지 않은 데는 조 전 단장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전 단장은 투자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안건 거운데 장기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끌어왔다. 실무진에 권한을 주고, 과감한 성과급을 도입한 것도 그의 전략이다. 조 전 단장은 이번 매각전에 보유 지분을 매도 대상으로 내놨는데, 실매각 후 2~3년의 의무 근무 기간을 지나 회사를 떠날 경우 일부 운용역도 이직할 수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현 경영진들 역시 새 주인이 나타나면 거취가 달라질 수 있다. 2010년 이지스 창립을 함께한 이규성 대표는 2018년부터 대표를 맡아 임대주택, 글로벌 리츠 등 상품다각화와 성과급 제도 인력 관리를 맡아왔고, 강영구 공동대표는 국민연금 출신으로 해외부동산 투자와 7,000억원 규모의 하남데이터센터 매각 등 대형 거래를 주도했다. 송선호 상무는 4,600억원 규모의 미국 뉴멕시코 아마존 물류센터 매각 등 산업물류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온 인물이다.
게다가 이지스의 새 주인은 그간 해외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손실 처리에 대한 부담도 이어가야 한다. 이지스의 기초자산 중 해외 부동산 비중은 약 30%인데, 독일 트리아논 빌딩과 국내 쇼핑몰 상가 투자 펀드 등 일부 상품은 두 자릿수에서 전액 손실이 났고 법적 소송도 있다. 이지스의 보수 구조도 리스크다. 경쟁사보다 성과보수 비중이 큰 이지스의 사업 구조는 부동산 업황이 출렁일 때마다 실적이 흔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성과보수·거래보수 의존도가 높은 부동산 운용사를 전통 자산운용사처럼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며 "1조원이란 숫자는 수수료 수입(FRE) 기준으로 보면 국내 상장 리츠 운용사 평균을 크게 웃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