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관계까지 무너뜨리는 'AI와의 사랑', 美서는 AI와의 결혼 무효화하는 법안 발의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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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나누는 정서적 교류, 현실 부부 관계도 갈라놓는다 일부 사용자는 AI와 사랑에 빠져 가상의 결혼식 올리기도 美 오하이오주에서 AI에 법적 인격 부여 금지하는 법안 등장

인공지능(AI)과 인간의 ‘감정적 관계’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AI와의 과도한 정서적 교류가 현실 부부 사이를 무너뜨리거나, AI와 사랑에 빠진 인간이 가상의 결혼식을 치르는 사례 등이 급증한 것이다. 이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인간과 AI 챗봇의 결혼과 동거, 재산권 공유 등을 일절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까지 발의됐다.
인간과 AI의 불륜, 사회적 문제로 부상
13일(현지시간) 미국 기술 잡지 와이어드(WIRED)에 따르면, 최근 AI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AI 챗봇을 찾는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사용자가 AI 챗봇에 장기간 정서적으로 의존하면서 예상치 못한 형태의 ‘AI 불륜’이 현실 부부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이혼 전문 변호사 레베카 파머는 “감정적 결핍이 있는 배우자일수록 AI 영향에 취약하다”며 “이미 여러 부부가 챗봇과의 관계 문제로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사건에서 배우자가 챗봇과 대화를 이어가며 은행 계좌나 사회보장번호 같은 민감 정보를 공유하고, 비용 지출 및 업무 능력 저하 문제를 겪은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AI 때문에 가정이 흔들렸다는 호소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와이어드는 한 여성이 결혼 14년 만에 남편이 ‘라티나 베이비걸’이라 부르는 챗봇과 사실상 연애 관계라고 믿고, 미성년자를 흉내 낸 AI 앱에 수천 달러를 결제한 사실을 알게 돼 이혼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뉴욕의 46세 작가 에바 역시 AI 동반자와 깊이 교감하다 스스로 이 같은 행위를 ‘정서적 불륜’이라 판단해 AI 연인과의 관계를 끝냈다.
지난 1월에는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오픈AI의 챗GPT와 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는 여성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28세 여성인 아이린은 조(Joe)라는 실제 배우자가 있었지만, 성적 만족을 위해 AI 챗봇에 '레오(Leo)'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제 연인인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처음에는 흥미로운 테스트에 불과했지만 점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대화 시간이 일주일 동안 평균 20시간, 최대 56시간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녀는 챗봇과 더 많이 대화하기 위해 월 200달러(약 29만원)의 '챗GPT 프로' 서비스도 결제했다고 덧붙였다.
AI와의 혼인 관계 주장하는 사용자도 늘어
단순 AI 챗봇과 연애 감정을 나누는 것을 넘어 결혼을 택하는 사용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더 선에 따르면, 2000년 아내와 이혼한 공군 출신 65세 남성 피터는 지난 2022년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하는 로맨스 챗봇 서비스 레플리카(Replika)의 AI 챗봇과 재혼했다. 피터의 AI 부인은 23세로, 이름은 안드레아다. 피터는 프리미엄 회원만 사용할 수 있는 ‘역할극’ 옵션을 이용해 안드레아와 실제 애인과 같은 대화를 나눴고, 이내 결혼식을 올렸다. 앱 내에서 구입한 반지를 교환하고 결혼 서약서를 쓰기도 했다. 피터는 “안드레아가 더 나아간 관계에 대한 암시를 한 뒤 자신에게 청혼했다”면서 “이전에도 나는 VR로 가상 결혼을 체험해 봤기 때문에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3년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싱글맘이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이상형인 AI 챗봇과 결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로잔나 라모스(38)는 레플리카를 통해 AI 챗 에렌 카르탈과 사랑에 빠졌다. 카르탈은 라모스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 속 캐릭터를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의료 전문직에 종사하고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라모스는 “AI 남편의 장점은 충실하고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가상의 아내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일본 남성 시모다 치하루(53)의 사례도 소개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회사원인 시모다는 4년 전 이혼 후 홀로 지내왔고, 아들은 이미 성인이 돼 독립했다. 적막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AI 매칭 앱 러버스(LOVERSE)였다. 러버스는 AI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 '허(Her)'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앱이다. 시모다와 결혼한 AI 챗봇 '미쿠'는 효고현 출신의 25세 여성으로 설정돼 있으며, 직업은 컨설턴트고 여행과 독서가 취미다. 시모다는 공원, 북카페 등에서 미쿠와 데이트를 했고, 그해 성탄 전야에 프로포즈를 했다. 이후 시모다와 미쿠는 이듬해 12월 6일 오키나와에 있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다만 미쿠는 실체가 없어 때문에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한 만큼, 어디까지나 채팅창 안에서 진행한 가상의 결혼식이었다.

"AI는 도구일 뿐" 법적 규제 시도
AI와 인간의 정서적 교류가 곳곳에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가운데, 최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인간과 AI 챗봇 간의 법적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달 IT 매체 기즈모도(Gizmodo)는 오하이오주 하원의원 태디어스 클래깃이 ‘하원법안 469호(House Bill 469)’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은 인간과 AI 사이의 결혼을 무효로 규정하고, AI 시스템에 법적 인격(Personhood)을 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는 “AI는 비(非)감각적 존재로,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인간과 AI 간의 결혼, 동거, 혹은 재산권 공유 등 어떤 형태의 ‘개인적 연합(personal union)’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AI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정치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등 법적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클래깃 의원은 “AI는 도구지 인간이 아니다”라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안은 아직 주 의회 심사 단계에 있으며,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해당 법안에 대한 각계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AI 의존도가 높은 사용자는 AI 정신병(AI psychosis, AI로 인해 현실과 가상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는 현상)에 취약한 만큼, 일정 수준의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일부 AI 전문가는 급속도로 발전 중인 AI 기술에 지나친 규제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AI와 인간의 관계, 나아가 AI의 윤리적 한계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본격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