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에 막힌 미국 vs. 파이프라인으로 무장한 중국, AI 인프라 균형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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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전력 인플레이션 우려 현실화 중국은 초저가 전기료로 산업 지원 러시아 가스관 협력으로 ‘굳히기’ 시도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확산 속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운데, 그 중심에 선 미국과 중국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미국은 노후한 전력망과 연료 가격 변동 등이 겹치면서 공급 기반이 빠르게 흔들린 반면, 중국은 저렴한 산업용 전기료로 변동성을 최소화하며 AI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 중이다. 이러한 양국의 격차는 AI 인프라 투자 속도 차원을 넘어 국가별 기술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 수급 자체의 우위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전력망 노후화에 인프라 확충 지연
13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전력 공급 부족으로 인해 데이터센터가 완공 이후 수년째 가동을 못 하는 사례가 현실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디지털리얼티트러스트의 ‘SJC37’과 스택인프라스트럭처의 ‘SVY02A’는 각각 100메가와트(MW) 규모 전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준공 후에도 수년째 방치 중이며,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는 대규모 전력망 이탈 사고가 발생해 지역 내 60여 개 데이터센터가 한때 자체 발전 모드로 전환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전력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AI 칩이 재고로 쌓일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미국 내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는 미리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전력 생산량은 지난해 4,387테라와트시(TWh)로 25년 전인 1999년(3,936TWh)에 비해 1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전력 생산량은 사실상 ‘제로 성장’ 상태”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개별 단지의 전력 수요가 한 번에 수백 MW 단위로 치솟으면서 기존 발전원·신규 발전소·송전 인프라가 모두 동시에 병목에 걸린 상황이다. 과거에는 데이터센터 효율 개선으로 전력 증가분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지만, 대형 AI 모델의 급증으로 더 이상 그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력난은 비용 압력으로 이어졌다.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의하면 지난 8월 기준 뉴저지의 소매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19% 급등해 전국 평균 상승률 6%를 크게 웃돌았고, 동부 PJM 전력망 지역의 도매 가격 또한 꾸준한 오름세를 지속했다. LBNL은 “소비자 전기요금 체납 건수가 올해 400만 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력 인플레이션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그 원인으로 데이터센터를 지목했다. 거대한 전력 수요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지역 단가를 밀어 올렸다는 지적이다. 실제 블룸버그 집계에서는 미국 전역 2만5,000여 전력 노드 중 일부는 5년 전 대비 전력 단가가 267%까지 뛰었는데, 이들 노드의 70% 이상이 데이터센터 반경 50마일 내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 인프라의 노후화 역시 전력난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은 여전히 송전 손실이 큰 110볼트(V)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용량 송전을 위한 765킬로볼트(kV) 이상의 HVDC 라인은 워싱턴-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네바다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 정부는 송전·변전 인프라 건설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최근 5개 주를 잇는 8,600km 규모 송전선 재구축에 16억 달러(약 2조3,000억원)대출을 집행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안정적 전력,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
이 같은 미국의 상황은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중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영국 경제지가 주최한 ‘AI 미래 서밋’에 참석해 “낮은 에너지 비용과 느슨한 규제가 중국을 앞서가게 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충격을 안겼다. 그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AI 규제 논쟁과 기술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기반을 한꺼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에서는 사실상 데이터센터 전기료가 무료”라고 말했다. 이는 양국의 비용 격차가 불러올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의 전기요금 구조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적 전기료 급등 흐름과 정반대의 궤적을 보여왔다는 점도 이 같은 발언에 무게를 싣는다. 중국에서는 광둥성 등 전력 개별 계약이 활발한 일부 지역의 지난 1년간 전기 요금이 약 5%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전력 소비가 연평균 5% 증가하는 동안 설비 용량은 연평균 10% 이상 늘어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빨리 확대된 데 따른 결과다. 여기에 태양광·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원이 급성장하며 발전원가가 크게 떨어졌고, 석탄·원전 등 기저발전 확충이 병행되면서 장기적인 전력 도매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처럼 발전원 구성 변화 또한 중국의 에너지 비용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서북부 사막 지대에 조성된 초대형 태양광 및 풍력 단지는 발전 단가를 MWh당 0.3달러 수준까지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는 중국 주력 석탄 발전(약 0.7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단가다. 동시에 중국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원전 투자를 확대하고, 석탄 발전소 역시 피크 수요 대응을 위해 유지 중이다. 값싼 재생에너지와 안정적인 기저발전이 결합된 구조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장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인프라적 기반을 강화한다.
정책 환경 역시 산업 경쟁력 강화에 우호적이다. 중국 규제당국은 화웨이·캠브리콘 등 자국산 AI 칩을 사용하는 기업에 전기요금 감면을 적용하고, 산업용 전력요금의 절반 수준을 적용하는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데이터센터 운영비를 낮췄다. 이 과정에서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가 운영하는 대형 데이터센터에 보조금이 집중되면서 AI 인프라 확장 속도에 날개를 달았다. 이는 곧 예측 가능하고 저렴한 전력망 환경을 의미하며, 상대적으로 전력 소모가 큰 중국산 AI 칩을 채택해도 비용 부담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LNG 장기 공급 체계 마련
중국은 이 같은 에너지 우위를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핵심은 러시아와의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협력이다. ‘시베리아의 힘 2(PoS2)’로 불리는 해당 신규 프로젝트는 연간 50bcm(1bcm=10억㎥) 규모의 공급 능력을 목표로 하며, 이미 가동 중인 PoS1(38bcm→44bcm 확장 전망)과 결합하면 중국이 확보하게 되는 파이프라인 물량은 최대 94bcm 수준에 달한다. 러시아가 유럽 시장을 잃은 틈을 타 안정적이고 저렴한 육상 가스 수급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국 제조업과 데이터센터 중심의 고전력 산업 비용구조를 안정화한다는 게 중국 당국의 구상이다.
이런 전략은 중국의 에너지 안보 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기존 중국 에너지 시장은 말라카해협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해상 운송에 대한 물리적 위험을 떠안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LNG 파이프라인이 완성되면 리스크의 상당 부분이 대륙 경로로 분산된다. 이는 대규모 장기 파이프라인이 중국 내 난방·산업용 전력 수요의 기저부를 안정적으로 떠받쳐 에너지 비용 변동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에도 반영된다. 중국은 AI 연산용 칩의 효율이 미국산 대비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하지만, 저렴한 에너지 공급 덕분에 단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된다. AI 연산은 수요가 급증할수록 냉각과 전원, 부하 안정성을 동시에 요구하게 되는데, 파이프라인 가스는 이를 뒷받침하는 기저발전에 안정적인 연료원 역할을 한다. 러시아발 가스 공급 확대가 양국의 단순한 에너지 거래를 넘어 중국 AI 산업의 기반을 안정시키는 ‘전략적 자산’으로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