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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조립기지는 끝” 베트남, 첨단기술법 개정으로 기술 산업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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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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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의존 축소→상향 이동 준비
법·제도 정비 누적 효과 노린다
공급망 과밀 속 관세 부담 가중

베트남이 해외 기업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 축소를 추진하면서 기존의 해외 자본 의존 생산기지 모델에서 기술 중심 산업구조로 이동하려는 의도를 선명히 드러냈다. 이에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공급망 과밀 등 복합적 부담에 시달리던 현지 진출 제조기업들은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나섰지만, 지리적 이점과 글로벌 시장 접근성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베트남을 대체할 현실적 선택지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베트남 산업 전반이 기술 경쟁력 기반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떠날 수 없는 시장’에 대한 장기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국면에 놓였다. 

현지 진출 외국 기업 직격탄 우려

1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 국회는 ‘고도기술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했다. 첨단기술 기업에 제공하던 최고 수준의 세금·관세·토지 혜택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해당 법안이 개정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상당한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베트남은 △기업의 혜택 범위 조정 △투자 우대 재편 △기존 인센티브 축소 등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법안 채택 여부는 오는 12월 결정될 예정이다. 

지난 수십 년간 베트남은 낮은 세율과 파격적 토지 혜택을 전면에 내세워 글로벌 전자·부품 기업을 유치해 왔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실효세 5% 수준의 특례를 적용받아 베트남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담당하며 핵심 투자자로 자리했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최저한세(GMT) 15% 도입으로 기존 저세율 기반 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이번 고도기술법 개정안 논의까지 급물살을 타면서 전략 전환이 시급한 상황에 놓였다. 베트남 정부는 핵심 투자자 보상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절차와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 상태다.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 속에서도 베트남 정부가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는 외국기업 중심 성장 모델로는 기술 자립이 어렵다는 내부 위기의식이 짙게 작용했다. 특히 미국이 지난 8월부터 베트남산 제품에 20% 관세를 적용한 데 이어 외국 부품 의존도가 높은 상품에 대해 최대 40% 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베트남은 기존 ‘저비용·조립 기반’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시각이 주를 이루게 됐다. 외생 변수에 지나치게 취약한 경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국 기술 기반 산업을 키우는 게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이번 정책 전환을 두고 ‘글로벌 공급망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변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올해 1~10월 베트남 내 한국 기업의 신규 투자 신고액은 37억 달러(약 5조4,000억원)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이는 일견 투자 활성화로 읽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인센티브 약화에 따른 비용 증가, 미국 관세 부담에 따른 환적 규정 불확실성 등 리스크 누적 구조에 대한 우려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실정이다. 이에 향후 투자는 현지 정부의 정책 변화 속도와 방향에 따라 극명히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년간 이어진 법체계 재정비 흐름

베트남 정부가 정책 전환 신호를 강하게 발신하면서 지난 수년간 자국 기술 굴기를 목표로 축적해 온 법·제도 정비 작업도 재조명되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지난 수년간 기술 이전과 연구 상용화, 디지털 전환, 국가 전략산업 육성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법 개정 패키지를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번 고도기술법 개정안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그 배경에는 국가 성장 모델을 기술·지식 기반 경제로 바꾸려는 중장기 방향성이 자리한다.

대표적으로 과학기술부가 주도한 ‘기술이전법’ 개정은 베트남이 조립·가공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제도 축으로 꼽힌다. 응우옌 마잉 훙 베트남 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달 초 브리핑에서 “우리 기업의 연구 성과가 ‘선반에 쌓여 사라지는’ 구조를 끊고, 실제 제품·서비스로 상용화되도록 유도하겠다”며 법안 추진 의지를 다졌다. 해당 법안에는 기술 이전 범위를 녹색성장 기술까지 확대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 확산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기술 가치평가 규제 정비 △정부 감독권 명확화 △기술 기반 자본 출자 인정 등이 포함됐다. 

이와 동시에 디지털전환·인공지능(AI)·첨단기술·지식재산권 등 5개 법안을 수개월 내 통과시키기 위한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디지털전환법' 초안은 종이 기반 행정의 예외 규정만 남기고 모든 공공서비스를 디지털 환경에서 기본 운영하도록 설계됐으며, 온라인 행정의 접근성·다국어 지원·보조 기능까지 규정해 전자정부의 기반을 넓히는 방향이다. '첨단기술법'과 '지식재산권법' 개정안 역시 연구 성과의 자산화·시장화를 목표로 인센티브 체계를 다시 짜고, IP 거래 절차를 명확히 하는 등 기술 자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 

기업의 투자 승인 절차를 대폭 손질하는 '투자법' 초안도 산업 전환 로드맵의 일부다. 베트남 재무부는 승인 대상 사업을 환경·국방·항만·공항 등 민감 분야로 제한하고, 국가·지방 마스터플랜에 포함된 사업이나 입찰·경매로 선정된 프로젝트는 승인 절차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규제 중복을 줄여 기업의 부담을 덜고, 기술 기반 프로젝트의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관리 공백 등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법 체계의 일관성과 심사 효율성 확보는 기술 주도 산업 전환에 필요한 기반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저비용 생산기지’ 한계 드러나

그럼에도 베트남은 여전히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선호하는 생산 거점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베트남의 상호관세율이 애초 예고됐던 46%에서 20%로 최종 확정되자, 현지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현지에 진출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관세가 46%로 확정됐으면 일부 라인 중단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20%도 가벼운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존 계약 구조를 전면 손보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감을 표했다. 

다만 베트남 생산을 둘러싼 부담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과거 적용되던 10% 관세와 비교하면 여전히 두 배 수준인 데다, 이에 따른 수출 비중 조정과 판매 단가 재협상, 설비 투자·생산국 다변화 등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다. 값싼 노동력과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공단 및 물류 인프라 덕분에 베트남의 생산 비용 매력은 유효하지만, 미국발 관세 이슈가 무겁게 자리 잡으면서 단순 ‘저비용 기지’ 전략만으로는 수익성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게 글로벌 산업계 전반의 인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까지 대거 유입되면서 베트남 제조업 생태계는 기회와 위험이 뒤섞인 과열 국면에 들어섰다. 올해 상반기 대(對)베트남 투자 총액에서 중국은 25억5,000만 달러(약 3조7,000억원)로 한국(30억8,000만 달러·약 4조5,000억원)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지만, 신규 프로젝트 수로는 600건을 웃돌며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이 기존 공장을 증설해 고부가 제품 전환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신규 법인 설립과 공장 신설을 통해 생산 기반을 넓히는 전략에 착수한 모양새다.

베트남 정부가 기술 자립과 첨단 제조 중심의 정책 전환을 밀어붙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때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던 글로벌 제조업 생태계 내 자국의 입지가 역설적으로 중국 업체들의 관세 회피형 투자 행렬에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베트남이 이번 기술 굴기에서 연구·개발(R&D), 고부가 제품 생산,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결합된 전략적 거점으로의 입지를 다지지 못하면, 지금까지 애써 키워 온 과실을 중국과 같은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내줄 수 있다는 게 내부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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