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 중앙은행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
입력
수정
금리정책만으로는 에너지·식료품 급등에 따른 물가 압력 대응 한계 수요 중심 인플레이션 목표제, 구조적 변화 대응 미흡 재정정책의 병행이 물가 안정의 핵심 과제로 부상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2년 8월,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310유로(약 45만 원)를 돌파했다. 이는 2021년 1월보다 약 15배 높은 수준이었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과 주요 가스관 폐쇄로 에너지 수급이 급격히 불안정해지면서, 유럽 전역의 시장은 심각한 혼란에 직면했다. 하지만 금리정책만으로는 이러한 공급 차질과 물리적 제약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은 기존의 통화정책 중심 틀을 유지하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에 계속 의존했다.
이 같은 인식 아래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중시하는 핵심 물가 지표는 2022년 여름 7.3%까지 상승했고, 유로 지역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Headline Inflation)은 2021년 2.6%에서 2022년 8.4%로 치솟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 상승을 자극했지만, 대응의 초점은 여전히 금리정책에 맞춰졌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신뢰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목표제와 신속한 금리 인상’만으로 물가 안정이 가능하다는 기존의 가정은 현실의 구조적 제약 앞에서 힘을 잃었다. 공급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금리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이는 정책 수단 간 역할 분담이 근본적으로 잘못 설계돼 있음을 보여준다.
통화정책 중심 틀의 구조적 한계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도입된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수요 압력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요인이던 시기에 설계됐다. 중앙은행은 목표를 설정하고 금리를 조정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정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운영했고,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효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최근의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은 그 취약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이 공급 요인과 수요 요인으로 구분된다고 분석한다. 공급 주도형 인플레이션은 유가 급등이나 공급망 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수요 주도형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 변화에 즉각 반응하며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르다. 다시 말해 금리 인상은 수요 과열에는 효과적이지만, 가스 부족이나 물류 병목, 공장 가동 중단 등 공급 제약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연구에 따르면 2021∼2022년 인플레이션 상승의 절반가량은 공급 제약에서 기인했다.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역시 팬데믹 이후 선진국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 공급 충격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수요 압력에는 반응하지만, 공급 병목·지정학적 리스크·에너지 의존 구조 등 근본 원인에는 작동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물론 통화정책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은 공급 충격이 임금과 가격의 악순환으로 확산되는 것을 억제해야 했다. 금리 인상은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체 품목으로 전이되는 속도를 늦추는 데 일정한 효과를 낸다. 그러나 가스 가격이 15배나 치솟은 상황에서 경기 둔화를 피하면서 물가를 2%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금리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은 인플레이션 완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며, 에너지·식품 가격 급등이 초래한 실질소득 감소를 통화정책만으로 상쇄할 수는 없다.

주: 연도(X축), 소비자 물가상승률(Y축)/공급 충격 시점(점선)
‘신뢰’에 머문 인플레이션 인식
지난 40년간 ‘신뢰’는 통화정책의 핵심 원리로 작동했다. 가계와 기업이 중앙은행이 목표 인플레이션을 지킬 것이라 믿는다면, 실제 물가도 그 수준에 수렴한다는 전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장기 저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효과적으로 작동했지만, 공급 충격이 본격화하자 한계를 드러냈다.
2022년 당시 인플레이션 기대는 비교적 안정돼 있었으나, 실제 물가는 급등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기대가 안정돼 있더라도 에너지 급등과 같은 대규모 공급 충격은 개별 품목 가격을 끌어올리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임금·가격의 2차 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뿐, 초기 충격 자체를 흡수하지는 못한다.
금융시장 흐름도 이를 입증한다. 2021년 세계 경제가 재개되던 시점, 공급 병목과 정책 요인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 등 공급 충격이 수요 회복 이전부터 기대 상승을 이끌었다. 미국의 급격한 긴축은 일부 효과를 냈으나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2025년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공급 요인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즉, 중앙은행의 신뢰와 금리정책은 필요하지만, 에너지·식품·물류 등 빈번한 공급 충격 앞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공공 담론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언론은 여전히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통제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단순한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초과했다고 해서 중앙은행의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중앙은행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응했다. 문제의 본질은 통화정책의 한계가 아니라 정책 수단 간 조정 부재다. 지정학적 결정이 전쟁과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고, 재정정책과 규제가 충격의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지 결정했다. 그럼에도 경제학 교육과 정책 논의에서는 여전히 ‘신뢰’만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낡은 전제가 반복되고 있다.

주: 연도(X축), 회귀계수(Y축)/공급 충격 시점(점선), 인플레이션 목표제 도입국(주황선), 인플레이션 목표제 미도입국(파란선)
재정·구조정책으로의 역할 전환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중앙은행의 단독 과제가 아니다. 2022~2023년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재정과 구조정책이 충격을 완화하고 실물 경제의 피해를 줄이는 데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2.4%에 해당하는 규모의 에너지 지원 패키지를 시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만약 각국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을 모두 보전하려 했다면, 약 1조 유로(약 1,500조 원), 즉 EU 전체 GDP의 6%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비록 이러한 조치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금리정책보다 직접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냈다.
식료품 등 필수재 가격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유로존 가계의 식비는 2019년 이후 34% 증가했다. 금리 인상은 사치품 소비를 줄일 수는 있어도, 밀 생산을 늘리거나 가뭄으로 손상된 농지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이에 각국은 선별적 현금 지원, 한시적 식품·에너지 바우처, 초과 이익세 등 재정 수단을 활용해 저소득층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투자, 수입 다변화, 생산·물류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구조적 탄력성을 높이는 개혁이 요구된다.
이러한 대응은 더 이상 ‘거시 정책의 외부 영역’이 아니다. 공급 충격이 반복되는 시대에는 핵심 정책 수단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교육도 “통화는 물가 안정, 재정은 성장 지원”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두 정책의 상호작용과 역할 분담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새로운 정책 프레임으로의 전환
중앙은행들도 점차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의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25년 초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재검토에 착수했으며,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5년간 현 체계가 비교적 잘 작동했다”라면서도 향후 개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정학적 분절, 기후 위험, 인공지능(AI) 확산 등 반복되는 공급 충격이 단순한 금리정책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를 예고한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2022년 인플레이션 급등의 원인을 분석하며, 공격적 금리 인상만으로는 병목 현상을 해소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과도하게 완화된 통화정책이 공급 충격을 키웠다고 비판하고, 다른 이들은 재정과 구조정책 의존이 정치적 교착과 재정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금리를 더 일찍, 더 높게 인상했다고 해서 경제적 고통 없이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근본적 문제는 에너지·공급망·시스템 복원력에 대한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현재의 과제는 이러한 교훈을 정책과 교육 체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2차 인플레이션 확산을 억제하되 일시적 목표 초과를 수용해야 하고, 재정 당국은 투명한 재원을 기반으로 한시적 지원을 해야 한다. 구조정책은 녹색 전환과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충격 완화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과 정책 교육기관은 기후, 무역, 에너지 안보 등 복합 요인을 포괄하는 거시 정책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2022년 유럽의 가스 가격 급등은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의 본질을 드러냈다. 물가 상승은 중앙은행의 신뢰 약화 때문이 아니라 실물 자원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팬데믹 이전보다 여전히 높은 식품 가격은 저소득층의 생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 하나와 금리 하나만으로는 이 복합적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중앙은행은 수요와 기대를 안정시키고, 재정·구조정책은 실물 충격에 대응하며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 역할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에서도 같은 오류가 반복될 것이며, 그 대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entral Banks Cannot Fix Broken Pipelines: Rethinking Monetary Policy for Supply Shock Infl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