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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부자 전유물된 청약 시장, 당첨돼도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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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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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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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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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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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통장 가입자 이탈 ‘줄줄이’
분양가상승·규제강화·가점경쟁 등 복합적 요인
주담대 한도까지 줄어 서민들에겐 '남 얘기'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사다리로 여겨졌던 청약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분양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데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 따른 대출규제로 자금 조달마저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수도권 주요 단지 청약은 ‘현금부자’를 위한 시장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도한 분양가를 억제하겠다는 취지의 분양가 상한제가 ‘로또 청약’ 열풍이라는 부작용을 낳으면서 서민들의 박탈감은 더욱 짙어지는 모양새다.

3년간 225만 개 증발

1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의 청약통장 가입현황 통계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체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631만2,993명으로 전월(2,634만9,934명) 대비 3만6,941명 감소했다. 이는 올해 월별 기준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의 재원이 되는 청약통장의 금리를 인상하고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등 가입자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음에도 청약통장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양상이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지난 2022년 6월 2,859만9,279명에서 2025년 2월 2,643만3,650명까지 꾸준히 줄었다. 지난 3월과 8월 소폭 반등했지만 다시 감소세다. 지난 9월에도 가입자 수가 2만3,335명이 줄었다. 감소세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22년 6월과 비교해 3년 3개월 동안 무려 224만9,345명이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줄면서 청약 경쟁률도 함께 하락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7.1대 1로 2020년(26.8대 1)에 비해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청약통장 감소의 주된 이유는 규제 완화, 공사비 등으로 분양가가 치솟으면서 '청약 메리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활황기에는 당첨만으로 수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공표한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전국에서 신규 분양된 민간아파트의 단위면적(㎡)당 평균 분양가격은 10월 말 기준 605만2,000원이다. 전월 대비 2.47%, 작년 동월과 비교하면 5.09% 각각 올랐다. 이를 3.3㎡로 환산하면 2,000만6,000원으로 2,000만원대에 처음 진입했다.

특히 서울의 ㎡당 평균 분양가는 전월 대비 3.25% 오른 1,422만6,000원이다. 이를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로 환산하면 15억9,615만원에 달한다. 수도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에서도 전용 84㎡의 분양가가 15억원을 넘어서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과천에서는 21억원대 아파트가 나왔고 최근 수원, 광명에서도 15억원 선을 뚫은 데 이어 안양까지도 국평 기준 분양가가 15억원을 돌파하고 있다.

‘수십억 로또’ 단지, 4인 가구 만점도 탈락

당첨 가점 인플레이션도 심화하고 있다. 올해 서울 인기 단지였던 송파구 신천동 ‘잠실르엘(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에서는 4인 가족 기준 만점인 69점의 청약 가점으로도 탈락하는 사례가 나왔다. 이 단지 전용면적 74㎡ 타입 당첨 최저 가점은 74점(전용 59㎡D형)이다. 4인 가족이 받을 수 있는 만점으로도 당첨이 불가능하니 1, 2인 가구는 통장을 유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처지다. 아울러 잠실르엘에서는 올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청약 만점(84점) 통장도 나왔다. 청약 가점 만점은 7인 이상 가족이 15년 이상 무주택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최대 30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로또 청약이라 불린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의 청약 당첨도 최고 만점에서 2점 모자란 82점을 기록했다.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 역시 4인 가족 만점 통장으로도 청약 당첨이 어려웠다. 최저 당첨 가점은 70점으로, 최소 5인 가족이어야 이번 청약의 당첨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미다.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보다 입지가 좋은 반포 1·2·4주구의 청약 가점 커트라인도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포 1·2·4주구에서는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보다 3배 많은 1,900여 가구가 일반분양으로 풀리지만 래미안 트리니원보다 한강에 가깝게 위치해 한강뷰 아파트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청약 가점 커트라인이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하고 있는데, 무주택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분양가 대비 시세 차익이 더 커지고 있어 경쟁률이 심화되기 때문”이라며 “반포 1·2·4주구는 한강뷰 물량이 많아 만점 통장이 3개나 나온 반포 원페타스 수준으로 가점이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출 규제에 자금 조달 여건도 악화

다만 당첨이 돼도 문제다. 반포래미안트리니원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분양 가격이 전용 59㎡의 경우 18억4,900만∼21억3,100만원, 전용 84㎡의 경우 26억3,700만∼27억4,900만원으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 마련 부담은 더 커졌다. 6·27 대책과 10·15 대책의 잇따른 대출 규제로 인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70%에서 40%로 줄었고, 분양가에 따라 대출 한도도 제한돼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최대 2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이뿐 아니라 중도금 대출은 분양가의 40%까지만 가능하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현금 부자’들만 청약이 가능한 단지란 얘기다.

실제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은 이 같은 자금 조달 부담에도 1순위 청약(230가구 공급)에 무려 5만4,631개 청약통장이 몰리며 수요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수십억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이 기대되면서 현금 두둑한 청약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집값 안정을 기치로 한 분상제와 대출규제가 되레 현금부자들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단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제도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가점제 중심 경쟁 구조는 자녀가 많거나 장기 무주택자에게 유리한 반면 청년·신혼부부 등 신규 수요층에는 사실상 당첨 확률이 거의 없다. ‘희망의 제도’가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차별의 제도’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1977년 도입된 청약통장은 그동안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했다. 목돈이 없어도 매달 성실하게 돈을 모으면 언젠가 번듯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최근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청년들은 “더 이상 월급을 모아 서울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거주가 불안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청약통장 가입자 이탈은 주택도시기금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청약통장 저축액을 기반으로 한 이 기금의 여유자금은 2021년 말 49조원에서 올해 상반기 9조3,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여유자금이 10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15년 만이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정책대출 확대 탓에 지출이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청약자 감소로 재원 확충마저 막힌 결과다. 이에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행 가점제에서는 1~2인 가구 당첨 확률이 희박하고, 청약통장을 오래 거머쥐고 있더라도 자금이 받쳐주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며 “특별공급 확대나 민영주택 추첨제 비중 확대 등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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