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생산 늘리겠다" 韓 생산 기지에서 힘 빼는 현대차, 국내 기업 脫한국·대미 투자 확대 흐름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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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2030년까지 美 생산 비중 80%까지 확대 예정 삼성전자·SK하이닉스 비롯한 주요 기업도 대미 투자 줄줄이 늘려 "규제 심하고 인력 운용 어려워" 韓 시장의 근본적 한계

현대자동차가 미국 내 생산 역량 확충에 착수했다. 현지 생산을 늘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리스크를 상쇄하고,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탈한국' 및 대미 투자 확대 흐름은 비단 현대차를 넘어 국내 산업계 전반을 휩쓸고 있다. 기업들이 높은 인건비와 강력한 규제, 상속세 부담 등을 피해 생산 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 관세 리스크 상쇄 위해 '미국행'
19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지난 14일 무역·안보 협상의 세부 합의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 자료, JFS)’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는 앞으로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하향 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는 앞으로는 토요타, 혼다 등 일본 경쟁사들과 동일한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판매·생산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관세 전쟁' 발발 이전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으로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를 내지 않았고, 일본은 2.5%의 관세를 부과받아 왔다.
현시점 현대차·기아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토요타와 혼다의 미국 생산 비중은 각각 50%, 80%에 달한다. 반면 현대차·기아의 해당 비중은 4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쟁사들에 비해 관세 부과로 인한 타격이 더 컸고, 미국에서 판매 가격을 정하는 데도 불리한 측면이 많았다.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한 현대차그룹은 이미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가진 ‘2025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8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조지아 공장의 생산 능력을 현재 연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리고,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까지 현지에서 생산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현대차가 미국 생산 비중을 확대할수록 국내 공장의 생산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전기차 생산라인은 '제조 공동화'의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주말 특근이 사라졌고, 며칠간 공정을 멈추는 부분 휴업도 올 들어 벌써 8차례나 반복되고 있다. 시간당 생산 대수를 줄이는 '피치다운'도 상시로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본사의 해외 생산 기지 의존도가 높아지고, 수출 물량이 줄어들며 가동률이 줄어든 것이다.
美 생산 확대하는 국내 대기업들
이런 탈한국 행보를 보이는 국내 기업은 비단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한국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해외 생산 자산은 2016년 209조2,000억원에서 2024년 말 490조7,000억원으로 약 134.6% 늘었다. 이 중 가장 크게 상승한 것은 미국 내 자산 비중이었다. 기업분석 전문기관 CEO스코어 자료를 보면, 한국 10대 대기업의 미국 내 생산 자산은 2024년 말 기준 157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116조6,000억원)과 베트남(52조1,000억원)의 생산 자산 합산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한·미 JFS에도 국내 기업의 1,500억 달러(약 219조원) 규모 대미 투자 로드맵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미국 텍사스주와 인디애나주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및 첨단 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수십조원대 투자 계획을 확정짓고 증설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 등을 건설하는 데 370억 달러(약 54조3,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SK그룹도 인디애나주 SK하이닉스 첨단 패키징 생산 기지(38억7,000만 달러 규모)를 포함해 총 130억 달러(약 19조원) 이상을 투입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도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루이지애나주 신규 전기로 제철소 건설, 로봇 공장 신설 등 밸류체인 구축에 260억 달러(약 38조1,600억원)를 투자한다. LG그룹은 배터리 및 가전 분야의 현지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며, LS그룹도 미국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과 전력기기·솔루션 분야에 30억 달러(약 4조4,000억원)를 쓴다. 대한항공 역시 362억 달러(약 53조1,300억원)를 투입해 미국 보잉사의 고효율 항공기 103대 구매 등을 추진하고 있다. 1,500억 달러(약 220조1,500억원) 규모의 한미 간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가 대규모 투자를 준비 중이다.

韓 시장, 왜 외면받나
생산 기지 해외 이전을 택하는 국내 기업은 글로벌 시장 존재감이 큰 대기업 외에도 많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5년 초 기준 전 세계 84개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9,930개에 달한다. 이 중 단순한 판매 법인이 아닌 제조·생산법인의 비중은 약 28%다. 공장 자체를 해외로 옮기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2014~2022년 평균 해외 진출 기업은 2,600곳 이상이며, 복귀 기업은 고작 126곳에 그친다.
이들이 탈한국을 택하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높은 인건비와 경직된 노동시장이 큰 문제로 지목된다. 한국의 인건비는 개발도상국에 비해 높지만, 노동 유연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주 52시간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해고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확대된 탓이다. 꾸준히 강화되는 각종 인허가, 환경·안전 기준 역시 기업 활동의 자유도와 효율성을 저하하는 족쇄로 지목된다. 특히 '노란봉투법'처럼 기업의 책임을 확대하는 법안은 기업들의 리스크 회피 수요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높은 경영권 승계 난이도도 한국 산업계 특유의 한계로 꼽힌다. 한국의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높아진 뒤 변동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주식 상속 시 최대 주주에게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가 된다. 이에 세금 부담을 피하고자 본사를 해외로 옮기거나, 외국 투자 유치를 선호하는 기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