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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11개국 8조 달러 외환 방패, 트럼프발 ‘환율 전쟁’ 대비에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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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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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불안 속 ‘방어 자산’ 구축 흐름
보유고 부족 인식에 불안심리 확대
관세 충격과 결합해 시장 불안 증폭

미국발 고율 관세와 환율 압박이 겹치면서 시장 불안정 우려가 커진 가운데, 아시아 전반에서 외환 비축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흐름이다. 외환보유 확충이 재정 부담과 통화정책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 속에서도 향후 환율 압박이 본격화할 경우를 대비해 ‘외환 방패’를 얼마나 더 두껍게 쌓아야 하는지가 각국 중앙은행의 핵심 고민으로 떠오른 것이다. 각국의 외환보유 전략이 단순 숫자 경쟁을 넘어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일 것인지에 대한 장기 과제로 인식되는 모양새다. 

韓 외환보유 위기 완충 사례도 재조명

20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시아 11개 주요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초 대비 4,000억 달러(약 589조원)가량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1,410억 달러(약 207조원)로 가장 큰 증가 폭을 그렸고, 일본이 1,160억 달러(약 170조원)로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연초 4,156억 달러(약 612조원)에서 9월 말 기준 4,288억 달러(약 631조원)로 132억 달러 늘었다. 그 결과 아시아 외환보유 총액은 8조 달러(약 1경1,788조원)에 근접한 규모로 파악됐다. 블룸버그는 올해 들어 이어진 비(非)달러 자산 가치 상승과 국제 금값 급등이 외환보유액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글로벌 금융 환경 역시 외환보유고 확대 압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됐고, 아시아 통화 전반에도 평가 절하 압박이 가해졌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 문제를 ‘비관세 부정행위(NON-TARIFF CHEATING)’의 첫 항목으로 명시하고, 환율 조작 논란을 무역 협상 변수로 지목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대응 여지는 한층 더 제한됐다. 

2022년 사례는 이번 외환보유 확충 흐름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참고 지점으로 거론된다. 아시아 신흥국의 외환보유고 합계는 2021년 10월 2조8,000억 달러(약 4,100조원)를 넘겼고, 이듬해 9월에도 2조6,0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이를 두고 당시 블룸버그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사전에 비축해 둔 외환보유고 덕분에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미국 금리 인상 충격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의 통화가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일본 엔화나 유로화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면서 채권시장 또한 견조하게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의 흐름은 일부 아시아 통화가 뚜렷한 약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3년 전과 다른 모습이다. 인도 루피화는 달러 대비 환율이 최근 두 달 사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올해 들어 3% 넘게 상승(루피화 약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인도중앙은행(RB)은 역내·역외 시장에 개입해 9월 말 기록한 최고치(달러당 88.80루피)를 넘지 않도록 방어에 나서고 있다. 한국 원화 환율도 지난 한 달간 3.2% 상승해 정부가 국민연금과의 전략적 환헤지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각국의 통화가 달러 강세와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 관세 관련 리스크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GDP 대비 외환보유고 비율 격차

한국으로 범위를 좁혀봐도 기존 외환보유고는 안정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인식이 대내외적으로 자리 잡힌 형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나들며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원화 가치는 올해 들어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75%에 달하는 한국의 높은 무역 의존도와 국제 결제 내 달러 비중 70%를 감안하면, 이 같은 환율 급등은 한국 경제 전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9,200억 달러(약 1,360조원)를 제시했는데, 이는 현재 외환 보유고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해외 주요국과의 비교도 한국 외환보유고가 상대적으로 얇다는 인식을 키운다. 현재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8,697억 달러, 외환보유액은 4,288억 달러로 GDP 대비 비율이 22.9%에 그친다. 반면 대만은 GDP가 7,824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외환보유액이 5,766억 달러로 GDP 대비 73.7%에 이른다. 심지어 스위스와 홍콩은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이 120%를 넘어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비교가 겹치면서 한국의 ‘달러 방패’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국내외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동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투자의 15%, 광의통화(M2)의 5%, 상품 수출의 5%를 합산한 뒤 여기에 150%를 곱한 값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공식을 한국의 지난해 말 수치에 대입하면 5,220억 달러(약 770조원)가 나온다. 여기서 유동외채를 단기외채의 두 배로 잡을 경우, 적정 외환보유고는 8,150억 달러까지 늘어난다. 현재 4,300억 달러 미만인 실 보유액과 이들 추정치 사이의 격차는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1조 달러 외환보유’ 논쟁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논쟁은 재정 및 금융 안정성 지표와도 맞물린다. 한국은행 연구에서 한국의 유위험 금리평형(UIP) 프리미엄 민감도는 2.11%포인트로 조사 대상 신흥국 평균 1.68%포인트를 한참 웃돌았다. 특정 국가가 대외 차입 시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비용을 의미하는 UIP 프리미엄은 환율 변동 위험, 채무 불이행 위험 등 다양한 리스크를 반영하는 지표다. 한은은 “이러한 특성은 글로벌 리스크가 확대될 때 외화 조달 비용이 더 빨리 뛰는 배경이 된다”고 짚으며 “재정건전성 관리를 비롯한 다층적 안전판을 동시에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수출 의존 국가 간 ‘환율 인하 경쟁’ 가능성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옮겨갈 가능성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 이후 “약한 달러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고 거듭 발언하며 달러 약세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 1기 집권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장을 지낸 인사 스티븐 마이런을 연준 이사로 지명하면서 통화정책 기조에도 자신의 인식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관세 정책과 금리 정책, 환율 인식이 서로 연동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마이런 이사가 작성한 보고서 또한 시장의 경계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역·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모든 교역국에 최대 20% 관세를 부과하고, 관세 부과 이후 강달러 압력이 커질 경우엔 다자 간 환율 협정을 통해 주요국 통화 가치를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미 정부가 원하는 환율 레벨을 정치·외교 협상으로 맞추겠다는 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사가 금리 결정에 표를 행사하는 위치로 이동하면서 시장은 그의 발언 기조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일각에선 이미 국가별 상호 관세가 공식 발효된 상황에서 미국이 다음 단계로 환율을 직접 겨냥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제기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은 조만간 관세·방위비를 지렛대 삼아 글로벌 환율 조정 전략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우선 대미무역 흑자국에 개별적으로 환율 절상 압력을 넣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관세·환율 연계 전략이 현실화하면, 원·엔·위안 등 아시아 통화가 동시에 압력을 받으면서 역내 금융시장 변동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국들 사이에서 ‘각자도생식’ 환율 인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나라일수록 자국 통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수출 가격 인상 폭을 상쇄하려 할 유인이 큰 까닭이다. 예컨대 관세율이 20%인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가 5% 떨어질 때마다 미국에서 팔리는 자국산 제품 가격 상승폭이 15% 수준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보는 식이다. 다만 이런 시도가 본격화할 경우 달러 약세를 통해 무역수지 개선을 노리는 미국의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어 미국이 이를 용인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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