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 박차 가하는 유럽, 자체 무기 공급망 강화에 韓·美 방산 현지 입지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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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심으로 유럽 국방비 지출 확대 흐름 가시화 "유럽산이 우선" 재무장 과정서 외국산 무기 수입 축소 韓·美 등 방산 수출국, 유럽 시장 내 입지 좁아져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정세가 급변하며 방위력 증강 필요성이 두드러진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국방비 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미국을 비롯한 외국산 무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재무장 수요 대부분은 유럽권 국가에 흡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 재무장 착수한 유럽
26일(이하 현지시간) 미 군사 전문지 디펜스뉴스는 이스라엘 경제지 글로브스(Globes)를 인용, 독일 정부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과 ‘애로우 3’ 미사일 방어 시스템 추가 도입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은 이미 지난해 8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약 5조1,200억원) 규모의 애로우 3 도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번 추가 협상은 독일 영토를 넘어 나토군 전체를 위한 장거리 방어 능력을 확충하려는 독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애로우 3는 대기권 밖(고도 100km 이상)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직접 타격해 무력화하는 ‘히트 투 킬(hit-to-kill)’ 방식을 채택한 방어 시스템으로, 사거리가 최대 2,400km에 달해 핵이나 생화학 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도 가능하다.
독일은 현시점 EU의 방위력 강화 흐름을 이끄는 국가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EU 최대 경제국이자 최다 인구 국가인 독일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은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투입 비용을 지난해 520억 유로(약 82조원)에서 올해 624억 유로(약 98조4,000억원), 2029년 1,529억 유로(약 240조9,000억원)로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독일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3.5%까지 뛰는 것은 동서 냉전 시절인 1975년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국방비 증액 흐름은 독일을 넘어 유럽권 국가 전반에서 관측된다. 올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전체의 국방비는 1조5,000억 달러(약 2,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55%를 차지한다. EU 집행위원회는 EU 회원국들의 국방비가 2024년 3,430억 유로(약 580조원)에서 2025년 3,810억 유로(약 645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체 무기 공급망에 무게 실어
시장은 유럽의 재무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기 수요가 대부분 유럽권 국가에 흡수될 것으로 보고 있다. EU가 자체 무기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EU는 회원국 전원이 방위산업육성안(EDIP)에 합의함에 따라 무기 생산과 공급망을 확대하고, 2027년까지 18억 달러(약 2조6,300억원)를 방산벤처를 비롯한 관련 기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을 2035년까지 65%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한국·미국 등 비EU 무기 도입 비중을 35% 이하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EU는 군사 무기와 시스템의 60% 이상을 EU 외부, 특히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역내 방산업체들의 시설 확충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는 추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유럽 전역의 700만㎡가 넘는 지역에 새로운 방산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이전보다 3배는 빠른 건설 속도다. 가장 큰 규모로 확장을 진행 중인 곳은 유럽 최대 방산 기업인 독일의 라인메탈과 헝가리 국영 방산기업 N7의 합작 프로젝트 무기 시설이다. 양 사는 2022년 당시 농장이었던 헝가리 서부 바르팔로타 용지가 단 2년 만인 2024년 7월 탄약과 폭발물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라인메탈은 해당 공장에서 다양한 크기의 포탄을 만드는데, 이 중 155㎜ 포탄은 연간 생산량이 2022년 7만 발에서 2027년 110만 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역시 유럽 방산주의 성장에 막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독일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라인메탈의 주가는 지난 1년간 약 200% 급등했다. 라인메탈은 지난 3월 시가총액 562억 유로(약 93조5,000억원)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폭스바겐 시총(당시 547억 유로)을 넘어섰고, 올 6월에는 프랑스 명품그룹 케링을 밀어내고 유로스톡스50지수 구성 종목에 편입됐다. 유로스톡스50지수는 유럽 우량 기업을 모아둔 주요 지수다. 같은 기간 라인메탈과 함께 유럽 방산주 랠리를 이끈 영국 BAE시스템스(40.4%), 프랑스 탈레스(58.2%)의 주가 역시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韓·美, 유럽서 고배
이 같은 흐름 속 여타 국가들의 유럽 시장 내 방산 경쟁력은 약화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과 한국이다. 폴리티코 유럽판이 지난 9월 입수한 독일 정부의 최신 군사 조달 계획에 따르면, 독일은 재무장을 위해 주로 유럽산 무기를 구매할 예정이다. 독일 정부가 의회 예산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이 계획은 2026년 12월까지 총 154건의 방위비 지출 내역을 자세히 담고 있다.
독일은 미국산 무기 구매를 위해 68억 유로(약 11조2,000억원)의 예산만을 배정했다. 미 레이시온의 MIM-104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과 발사기를 51억 유로(약 8조4,000억원)에, 보잉의 해상초계기 P-8A에 부착할 어뢰를 개당 1억5,000만 유로(약 2,470억원)에 구매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재무장 예산은 대부분 유럽산 무기 구매에 투입된다. 독일은 자국 방위산업체 TKMS가 설계할 예정인 차세대 방공 호위함 F-127 구축함 6척을 260억 유로(약 43조원)에, 에어버스 등이 제작한 유로파이터 트렌치5를 40억 유로(약 6조5,900억원)에 구매한다.
한국은 폴란드 정부가 발트해 안보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신형 잠수함 사업 ‘오르카(Orka)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했다. 한화오션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장보고‑III급(도산안창호급)을 앞세워 폴란드 현지 상시 정비·유지(MRO) 센터 설치, 1억 달러 규모 현지 투자, 기술이전 및 현지 생산 등을 포함한 ‘토털 솔루션’을 제시하며 공격적으로 움직여 왔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폴란드와의 K2 전차·K9 자주포·FA‑50 경공격기 등 대규모 무기 패키지 수출 이후 굳건해진 방산 협력을 확장한다는 전략 아래 장보고함 무상 이전 방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부 장관은 26일 내각 회의 직후 “신형 잠수함 사업자로 스웨덴 사브를 선정했다”며 “늦어도 내년 2분기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2030년께 첫 함정을 인도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브가 제안한 A26 블레킹급 잠수함은 업체 측에서 ‘세계 최초 5세대 잠수함’으로 홍보하는 디젤‑전기식 플랫폼으로, 공기불요추진(AIP) 체계를 적용해 장기간 잠항 능력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발트해처럼 수심이 얕고 해저 지형이 복잡한 연안·내해 환경에서 은밀 작전이 가능하도록 저소음 설계, 대형 모듈형 임무공간(MMP) 등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폴란드 해군이 요구한 조건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