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 시 80만 나토군 동원" 비밀 계획 수립한 독일, 유럽 反러시아 행보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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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러시아 침공 대비해 1,200페이지 비밀작전 계획 수립 폴란드 등 NATO 동부 지역 내 군사적 긴장감 가시화 유럽 국가들, 줄줄이 병력 확충·무기 확보 등 국방력 강화 착수

독일 고위 장교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대비해 1,000쪽 이상 분량의 작전 계획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영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본격화한 가운데, 유럽권 국가들의 전면전 대비 행보에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러시아 침공 가능성 경계하는 독일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이 러시아와 전면전에 대비해 최대 80만 명에 이르는 독일군과 NATO 병력을 동쪽 전선으로 신속 배치하는 1,200페이지 분량의 비밀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작전 계획(OPLAN DEU)'으로 불리는 이 청사진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직후 베를린 율리우스 레버 병영에서 고위 장교 12명이 작성했다.
계획의 핵심은 러시아가 NATO 회원국을 공격할 경우 동쪽 전선으로 이동하는 최대 80만 명 규모의 독일군, 미군, NATO 병력을 신속하게 수송하는 것이다. 유럽의 남부는 알프스산맥 때문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 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인 만큼,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질 경우 NATO 병력은 독일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러시아와 전쟁 시 최전선 국가가 아닌 전초기지 역할을 맡게 되는 셈이다. 계획에는 병력이 이동할 항구, 강, 철도, 도로가 구체적으로 명시됐으며, 이동 중 보급과 보호 조치도 상세히 기술됐다. 독일은 독일연방군 단독으로는 이 같은 규모의 병참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전사회적 접근”을 작전 실행의 핵심 요소로 지목했다.
러시아, 폴란드에 직접적 위협 가해
독일이 이처럼 '전면전'을 대비하고 나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추가로 NATO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유럽 내부에서 확산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독일 연방국민보호재난지원청(BBK) 수장인 랄프 티슬러 청장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 독일에서 전쟁은 우리가 준비할 필요가 없는 시나리오라는 믿음이 팽배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며, 우리는 유럽에서 대규모 침략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특히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역은 NATO가 '동부 측면'이라고 칭하는 발트해 국가들과 폴란드다. 지난 9월 폴란드에서는 러시아 드론(무인기) 여러 대가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폴란드군은 “러시아가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국 영공을 전례 없이 침범했다”며 “레이더가 10개 이상의 비행체를 포착해 이 중 위협이 될 수 있는 일부를 무력화(격추)했다”고 발표했다. EU는 해당 사태의 원인을 러시아의 '도발'로 규정하며 폴란드에 대한 전적인 연대를 표명했다.
지난 15~16일에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와 우크라이나 인접 도시 루블린을 잇는 철로에서 파괴 공작으로 의심되는 시도가 적발되기도 했다. 바르샤바-루블린 구간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물자를 실은 화물 열차 다수가 이용하는 철로다. 바르샤바 남동쪽 미카 철로에는 폭발물이 설치됐고, 이곳에서 약 20km 거리인 푸와비에서는 철제 클램프가 철로에 부착되는 등 열차 탈선을 유도한 흔적이 발견됐다. 단 폭발물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폴란드 당국은 이 사건을 러시아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은 사보타주로 규정하면서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에 있는 마지막 러시아 영사관의 운영 허가를 철회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면 침공을 택하기보다는 취약한 소수 국가를 대상으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옛 소련 구성 공화국이었으며 러시아 접경이고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조지아,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는 러시아 우방이지만,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는 벨라루스도 충돌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 행보
이에 유럽 국가들의 국방력 강화 노력도 눈에 띄게 가속화하는 추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7일 프랑스 그르노블 인근 육군 기지를 방문해 2026년 중반부터 시행될 새로운 자발적 군복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18~19세 청년을 자발적으로 10개월간 군에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2026년 첫해 3,000명을 선발해 프랑스 본토에서만 복무시키고, 이후 단계적으로 규모를 확대해 2030년에는 1만 명, 2035년에는 연 5만 명의 병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제도가 “전 세계적 위협이 가속하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역시 사실상 징병이 가능한 새 병역 제도를 확정했다. 독일 연정을 이끌고 있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은 지난 13일 기존의 모병제를 유지하되, 신병 모집이 부족할 경우 강제 징집을 가능하게 하는 병역 제도 개편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새 제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내년부터 만 18세가 되는 독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서면으로 군 복무 의사를 묻는다. 여성은 답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남성은 의무적으로 답해야 한다. 2027년부터는 만 18세가 되는 남성 모두가 의무적으로 군 복무에 적합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기존 모병제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징병이 가능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모병만으로 부족한 상황이 오면 법 개정을 통해 징병제로 전환하며, 이 경우 징병 대상자는 추첨으로 선발한다.
국방력 강화를 위한 자금 투자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까지 늘릴 예정이다. 투입 비용을 지난해 520억 유로(약 82조원)에서 올해 624억 유로(약 98조4,000억원), 2029년 1,529억 유로(약 240조9,000억원)로 상향하겠다는 구상이다. 독일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3.5%까지 뛰는 것은 동서 냉전 시절인 1975년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국방비 증액 흐름은 독일을 넘어 유럽권 국가 전반에서 관측된다. 올해 NATO 회원국 전체의 국방비는 1조5,000억 달러(약 2,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55%를 차지한다. EU 집행위원회는 EU 회원국들의 국방비가 2024년 3,430억 유로(약 580조원)에서 2025년 3,810억 유로(약 645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북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본토에 닿는 미사일 도입을 잇달아 추진 중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육군은 최근 정부에 낸 보고서에서 적국 후방의 군사·기간 시설을 타격할 사거리 2,000km 무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사이 거리가 약 1,000km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러시아 내륙의 군 시설을 겨냥한 조처로 풀이된다. 앞서 덴마크도 지난 9월 장거리 정밀 타격 무기 도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덴마크가 장거리 미사일 보유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