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 경쟁 본격화" 동남아 시장 공략에 박차 가하는 中, 현지 제조업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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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 회피 나선 中, 동남아시아 시장 의존도 확대 동아시아 3국 동남아 내에서 격돌, 인력 확보·수주 경쟁 불붙어 현지 제조업계 성장 동력 약화, 고용 시장도 '적신호'

중국이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와 기술 규제를 피해 대(對)동남아 수출과 투자를 확대, 기존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일본과 한국에 도전장을 던지는 양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해외 시장 의존 흐름이 지속될 시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든 중국 제조업계의 위기가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中, 동남아 시장 적극 활용
7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1~9월 인도네시아·싱가포르·태국·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6개국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4,070억 달러(약 600조3,250억원) 규모로 전년 동기(3,300억 달러) 대비 23.5% 증가했다. 이는 최근 4년간 연평균 증가율(13%)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평균 47%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이 같은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를 경유해 우회 수출에 나서며 전반적인 수출 실적이 뛰어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기술 기업들이 동남아를 거쳐 미국의 인공지능(AI) 기술 규제를 우회하는 사례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FT는 해당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최신 대형언어모델(LLM)을 동남아 데이터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이 지난 4월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반도체 H20의 판매를 추가로 제한한 이후 해외 훈련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주로 비(非)중국계 기업이 소유·운영하는 해외 데이터센터를 임차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미국 수출 통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합법적인 구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우회를 막기 위해 도입했던 '확산 규칙'이 올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폐기됐기 때문이다. FT는 중국 기업들이 고성능 엔비디아 칩을 갖춘 동남아 데이터센터를 AI 훈련뿐 아니라 해외 고객 대상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에도 활용하고 있으며, 중동을 비롯한 다른 지역 데이터센터로의 진출도 확대 중이라고 전했다.
동아시아 3국의 새로운 전쟁터
중국의 동남아 시장 공략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동아시아 3국의 현지 경쟁 역시 눈에 띄게 심화하는 추세다. 일례로 최근 중국은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대거 밀집한 베트남 박닌성, 타이응우옌성, 하이퐁시 등에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 기업이 수년간 공들여 키운 현지 직원들이 더 높은 연봉을 약속하는 중국 기업으로 이탈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에 따라 고용 시장에서는 임금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한국 기업들의 인력 확보와 유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의 경우 중국의 대동남아 자동차 수출 확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토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브랜드를 선호하던 동남아 운전자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회계법인 PwC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동남아 6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은 62%로 떨어졌다. 2010년대 평균 점유율이 77%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하락세다.
세 나라는 베트남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불꽃 튀는 수주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북남고속철도'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북남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수도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총연장 1,541km를 시속 350km로 5시간 만에 연결하는 베트남 최초의 고속철도 사업으로 순수 사업비만 1,713조 동(약 95조원)에 달하며, 주요 역 주변 개발 사업 등을 포함한 규모는 족히 수백조원에 육박한다. 해당 사업을 따내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프랑스가 수주 경쟁에 나섰으며, 최근에는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을 비롯한 베트남 토종 기업까지 가세했다.
3국은 베트남이 최초로 추진하는 원전 사업 '닌투언 원전'에서도 맞붙었다. 해당 사업의 핵심은 2030년까지 베트남 중부 닌투언 지역에 원전 2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총사업비는 26조원 규모다. 베트남은 지난 2009년 해당 사업을 추진하면서 1호기는 러시아 로사톰을, 2호기는 일본 원자력발전주식회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자금난을 이유로 돌연 사업이 연기됐고, 최근 들어서야 다시 사업자 선정이 시작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1호기 사업자는 지난 10월 러시아 로사톰으로 확정됐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경쟁은 2호기 수주 쟁탈전인 셈이다.

현지 제조업 침체 가속화할까
문제는 중국이 동남아 시장에 힘을 실을수록 중국 현지 제조업계의 성장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 제조업 업황은 수개월째 위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보다 0.2포인트 상승한 49.2로 집계됐다. 이는 로이터통신(49.2)과 블룸버그통신(49.3)이 각각 집계한 이코노미스트 전망치 중간값에 부합하는 수치다. PMI는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기준치인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 국면을 의미한다. 중국의 제조업 PMI는 지난 4월(49.0) 이후 11월까지 8개월 연속 50을 밑돌았다.
중국 제조업의 침체 흐름은 민간 지표에서도 두드러졌다. 중국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레이팅독 중국 제조업 PMI는 11월 49.9를 기록했다. 해당 지표는 정부가 아닌 민간 조사를 토대로 하는 지표로, 과거 차이신이 담당해 왔으며 현재는 레이팅독이 산출을 맡고 있다. 레이팅독은 성명에서 “11월 신규 주문이 거의 정체되면서 제조업 생산 증가세가 멈췄다”며 “제조업체들은 인력과 구매량을 줄였고 재고 관리에 더 신중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의 핵심 사회 문제 중 하나인 청년 실업 심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국가통계국 자료를 살펴보면 중국의 16~24세(학생 제외) 청년 실업률은 지난 9월 17.7%, 10월 17.3%를 기록했다. 지난 8월 1,220만 명의 졸업생이 취업 시장에 진입하면서 대폭 치솟은 청년 실업률이 계속해서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양상이다. 내년 졸업생 수 역시 역대 최대 수준인 1,2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제조업 업황 침체가 이어질 경우 기업들의 채용이 축소되며 청년들의 설 자리가 한층 좁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