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운용, 한화·흥국 아닌 중국계 PEF 품으로, 금융당국 승인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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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한화 제치고 우협 선정 중국계 자본 꼬리표 변수 금융당국 심사 통과 주목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이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당초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간 ‘국내 보험사 2파전’으로 전망됐지만, 힐하우스가 본입찰 이후 인수가를 1조1,000억원까지 끌어올리며 판세를 뒤집었다. 관건은 힐하우스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지다. 시장에서는 국내 핵심 인프라 사업을 수행 중인 이지스운용의 경영권이 중국 자본에 넘어갈 경우, 민감 정보 유출은 물론 6조원이 넘는 연기금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프로그레시브 딜로 가격 올린 ‘힐하우스’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전날 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지스운용 지분 매각 대상은 창업주 고(故)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인 최대주주 손화자씨의 지분 12.4%와 분산된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합친 최대 98.8%다. 힐하우스는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컬리, 크래프톤 등 굵직한 투자에 참여한 바 있으나, 한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매각 주관사는 연내 힐하우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완료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매각 초반 이지스운용의 주주이자, 매각의 한 축을 잡고 있던 조갑주 전 이지스운용 신사업추진단장이 대외적으로 해외 매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만큼, 힐하우스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매각 초반 이지스운용의 분산된 주주 가운데 매각에 응한 지분율은 66.6%에 불과했고 해외 투자 자산의 부실도 예견돼 있어 이지스운용의 인수전이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막상 본게임에 들어가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수 후보들이 부르는 가격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앞서 본입찰에서는 1조500억원을 제시한 흥국생명 쪽으로 승기가 기울었으나, 힐하우스는 본입찰 이후 추가로 조건을 제안할 수 있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 호가식 입찰)을 통해 1,500억원가량을 올리면서 판을 뒤집었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제시해 본 입찰을 통과한 인수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가격 경쟁을 붙여 매각 가격을 높이는 방식이다. 최종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입찰 기한을 두지 않고 가격 경쟁이 진행돼 경매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본게임은 복잡, 당국 심사에 흥국 변수도
이로써 힐하우스가 우협으로 확정됐지만, 거래 완료까지는 금융당국의 심사가 관문으로 남아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힐하우스 자금의 성격이 심사 과정에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힐하우스가 사실상 중국계 자본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힐하우스는 베이징, 홍콩, 런던, 뉴욕 등에 지점을 둔 글로벌 PEF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계 자본이라는 규정에 선을 긋고 있지만, 이지스운용은 국내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정보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외국 자본의 인수를 넘어, 국내 주요 기반 시설 관련 정보 관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전 경쟁자인 흥국생명이 매각 과정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변수다. 흥국생명은 9일 입장문을 내고 매각 주관사의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흥국생명에 따르면 주관사는 본입찰 전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번복하고 힐하우스에 추가 입찰 기회를 줬다. 흥국생명은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제시했지만, 힐하우스가 프로그레시브 딜 과정에서 가격을 높이면서 역전당했다는 것이다. 결국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던 주관사 약속은 이지스운용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흥국생명은 주관사가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면서 흥국생명 입찰 금액을 유출했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이에 흥국생명은 비밀유지각서(NDA) 위반 여부를 포함해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흥국생명 측은 "이번 힐하우스로의 우협 선정은 한국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PEF와 거액의 성과급에 눈먼 외국계 매각 주관사가 공모해서 만든 합작품이고, 이는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IB업계에서는 거래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결과를 되돌리기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이번 딜의 최종 성패는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갈릴 전망이다. 적격성 심사에서는 재무건전성, 법 위반·제재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된다. 아울러 대주주의 사회적 신용도와 지배구조 투명성, 국가 안보 영향 등도 엄격히 심사한다. 단순 주식 인수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회사 지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관계인, 또는 출자 구조가 복잡한 법인도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계 자본’ 딱지 걸림돌
다만 전문가들은 힐하우스의 중국계 자본 딱지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출자 능력이나 자본건전성 등과 같은 정량적 심사 항목은 통과하겠지만, 금융 시장 안정성과 공익적 고려 등과 같은 정성적 항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지스운용의 경영권이 힐하우스에 넘어갈 경우 이지스운용이 중국 자본 부동산 투자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에 인수될 경우 의결권 및 경영권의 실질적 통제권이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한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지스운용은 2010년대 초 독립계 운용사로 출발해 업계 1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행정공제회 등 국내 연기금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수탁해 왔다. 이지스운용의 운용자산(AUM)은 67조원에 달한다. 중국계 PE가 이지스운용의 새 주인이 될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충돌, 자본 유출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유사한 논란은 올해 초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어피니티의 창립자인 KY 탕 회장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화교)인 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서류에 펀드의 주요 거점이 홍콩 주소로 기재되는 등 '중화권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면서다. 특히 어피니티가 롯데렌탈에 앞서 SK렌터카를 인수, 국내 렌터카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점 때문에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이를 의식한 듯 힐하우스 또한 중국색 지우기에 나선 상태다. 현재 힐하우스 홈페이지에는 '2005년 아시아에서 설립된 투자사'라는 표현만 적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1월 장 레이와 힐하우스를 다룬 기사에서 "힐하우스는 중국 직원을 줄이고, 웹사이트에서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상당 부분 삭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PEF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기술 유출 이슈 등을 계기로 중국계 자본에 대해 거리감을 두려는 국내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게다가 힐하우스가 국내 기업 투자 과정에서 고배당을 받아 간 전력도 금융당국의 평가에서 고려될 것이라는 분석이 팽배하다. 힐하우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SK에코프라임은 경영 첫해인 2024년 순이익 160억원을 기록했으나, 힐하우스가 가져간 배당금은 700억원에 달한다. 반면 그해 설비투자는 16억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