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비용 상승이 먼저 시작되는 나라, 이탈리아의 공급망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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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압박 누적, 생산·운송 비용 함께 불안정해지는 흐름 높은 해외 투입 의존도, 중소기업 기반이 대체 속도를 제한하는 구조적 요인 충격을 비용으로 흡수하지 않기 위한 공급망 재설계와 디지털 전환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제조업·물류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유로 지역 산업 생산은 2021년 9월까지 1년 동안 약 2.6% 감소했다. 이 수치는 에너지 위기 이전부터 생산 기반이 이미 압박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충격은 이탈리아에서 비용과 지연으로 바로 이어졌다. 2024년 홍해 우회 항로로 운송 일정은 최대 2주 늘었고, 아시아–유럽 운임도 다시 뛰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과 400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SME)은 이 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공급이 늦어지는 순간 공장과 학교의 운영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고 생산 조정도 연쇄적으로 뒤따랐다. 이탈리아의 위험 구조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압박의 고착화
글로벌 제조업·물류 공급망은 팬데믹의 후유증에 전쟁발 에너지 급등, 물류 혼란이 겹치며 장기적 압박 상태에 놓여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0~2021년 병목 현상만으로도 유로 지역 산업 생산이 약 2.6% 감소했다고 분석했고, 이어진 에너지·공급 충격은 2022년 말 인플레이션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2024년 초에는 예멘 후티(Houthi) 무장 세력의 홍해 공격으로 선박이 희망봉을 우회하게 되면서 운송 시간과 컨테이너 비용이 동시에 상승했다. 2024년 중반 선복량 확대 영향으로 운임이 잠시 안정됐지만,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며 다시 상승 압력이 높아졌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반복되면서 충격은 점차 누적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 누적 압박은 이탈리아의 학교와 공장에도 같은 방향으로 전달됐다. 이탈리아는 2021년 가스 수입의 43%를 러시아에 의존한 만큼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기업과 교육기관의 운영비가 크게 늘어난 데 더해 홍해 사태까지 겹치면서 여러 부문에서 리드타임(lead time, 공급 주문부터 실제 도착까지의 기간)이 길어졌다.
이에 따라 투입재 부족과 높은 에너지 비용이 동시에 발생했다. 통계청(ISTAT)은 2023년 수입이 전년 대비 10.4% 감소했다고 발표했으며, 2024년 말 기업 조사에서는 주문 약화와 설비 가동률 하락이 확인됐다.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이탈리아의 생산과 운영 현장에서 직접적인 부담으로 전환된 것이다.

주: 직접 노출보다 간접 노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단계 연결 고리가 지역 경제 위험의 주요 경로로 나타난다.
이탈리아 공급망의 구조적 제약
이탈리아의 무역 구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가치추가(TiVA)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탈리아 수출에서 해외 투입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7%로, OECD 평균 26.7%보다 낮다.
그러나 제조업의 외국 투입 의존도(FIR)는 62.2%, 외국 시장 의존도(FMR)는 55.8%에 달한다. 생산과 판매의 양측에서 글로벌 흐름에 깊게 얽혀 있는 구조다. 어느 지점에서든 공급이 흔들리면 즉각적인 대체가 어렵고, 이러한 제약이 조정 속도를 늦추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입 파트너 구조도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이 이탈리아 수입의 14.1%, 중국이 9.1%를 차지했다. 평상시에는 이런 집중 조달이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지만, 공급망 충격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체 가능성이 제한되는 구조로 바뀐다.
특히 기계·장비, 금속 가공, 패션·식품 가공용 고급 소재처럼 맞춤형 부품 의존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제약은 더욱 크다. 구성품이 특수해질수록 대체 공급자의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지고, 그만큼 전환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구조와 디지털 격차가 만든 조정 한계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많은 400만 개 이상의 SME를 보유하고 있고, 이들이 국가 부가가치의 65% 이상을 담당한다. 기업 기반은 폭넓지만 SME의 공급망 대응 능력은 제한적이다. 다수 기업이 한두 개 공급자에 의존하며, 운송 지연에 대비해 재고를 충분히 쌓을 여력도 부족하다.
2022년 이탈리아 중앙은행 조사에서도 많은 제조 기업이 투입재 부족과 배송 지연, 물류비 상승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상당수 기업은 판매 가격을 인상했고, 일부는 생산을 축소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격차도 조정 속도를 늦추는 요소다. 공급자를 추적하고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는 AI 기반 예측 시스템이나 실시간 운송 데이터 분석 도구는 주로 대기업에만 도입돼 있다. 로이터(Reuters)는 2025년 보도에서 2024년 이탈리아 기업의 AI 활용률이 8%에 그쳤다고 전했다.
기술 적용 속도가 느리다 보니 지연을 조기에 감지하거나 대체 공급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전반적으로 더디다. 산업 구조와 기업 구성, 기술 활용도의 차이가 겹치면서 이탈리아의 대체 능력은 지속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유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주: 노출이 큰 지역일수록 동일·인접·비인접 노동시장까지 전방위 연결이 확대돼, 위험이 전체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는 구조가 나타났다.
공급망 재설계를 위한 정책 전환
이탈리아가 홍해 사태가 만들어낸 외부 변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외부 충격이 내부 비용으로 번지는 속도는 관리할 수 있다. 우선 기계 부품, 화학제품, 특수강, 실험 장비 등 핵심 투입재 부문에서 EU와 우방국 공급자를 함께 확보하는 다중 소싱 전략이 필요하다. 수출신용보증과 유사한 방식으로 조달 위험을 분산하면 공급 지연에 대응하는 체력도 커진다.
동시에 2021~2022년 위험 노출을 키웠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계속 낮춰야 한다. EU는 이탈리아가 2021년 가스 수입의 43%를 러시아에 의존했다고 밝힌 바 있고, 이후 대체 조달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교육기관과 공공기관도 공급망 운영 방식을 함께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시약, 센서, 칩, 서버처럼 학기마다 반드시 필요한 품목을 구분하고, 주요 공급자와 예비 공급자를 미리 정해 최소 재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복잡한 AI 시스템이 아니어도 주문 추적과 간단한 예측 도구를 활용하면 리드타임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다. 공공 구매 방식 역시 단순 국산 규정에서 벗어나 성과 기반 기준을 강화해 공급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ISTAT는 2024~2025년 조사에서 중소기업(SME)의 디지털 활용 격차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이 격차는 공급망 전반의 운영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
반복되는 충격과 설계의 과제
글로벌 공급 충격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급망이 짧고 대체 속도가 느린 구조에서는 동일한 충격도 지역 비용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이탈리아는 제조업의 해외 투입 의존도, 집중된 파트너 구조, 디지털 활용도가 낮은 SME 기반, 조달 지연 사례가 겹치며 위험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
지금 필요한 과제는 구조적 개선이다. 이를 위해, OECD의TiVA 데이터를 활용해 취약 구간을 세밀하게 식별하고, 대체 공급자를 미리 확정해야 한다. 에너지 조달의 다변화를 정착시키고 SME와 공공기관의 공급망 추적 능력을 강화하는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학교와 연구시설의 필수 물품에는 최소 재고 체계를 두어 운영 차질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공급 충격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최종 피해 규모는 공급망을 어떤 설계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runcated Supply Chains, Local Damage: Why Italy's Margin for Error Is Thinner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