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할 곳 없는 국내 자금, 해외로 몰리며 환율 상승 압력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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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기관투자자 해외투자 전 분기 대비 5.3%↑ 10월 개인 해외주식투자, 경상수지 흑자 넘어서 국내 기업 70%, '보수적 경영 기조' 유지할 계획

최근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이 해외로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최근의 환율 급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다. 내년에도 경기 둔화와 기업들의 보수적 경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투자 환경이 당분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외투자 확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사부터 보험사까지, 해외투자 급증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주요 기관투자자 외화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의 외화증권투자 잔액(시가 기준)은 4,902억1,000만 달러(약 718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2분기(4,655억3,000만 달러) 대비 246억7,000만 달러(5.3%) 증가한 수치다.
업권별로는 자산운용사의 해외증권투자액이 2분기보다 178억5,000만 달러(약 26조원) 증가한 3,429억6,000만 달러(약 502조원)를 기록하며 외화 투자 증가세를 주도했다. 이어 보험사가 같은 기간 33억6,000만 달러 늘어난 759억5,000만 달러(약 111조원)로 집계됐다. 외국환은행(479억3,000만 달러)과 증권사(233억6,000만 달러)도 각각 14억6,000만 달러, 20억1,000만 달러 증가하며 2분기에 이어 모든 업권에서 해외투자 확대가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별로 보면 해외 주식투자가 가장 컸다. 주식은 191억3,000만 달러(약 28조원) 증가한 2,762억9,000만 달러(약 405조원)로 집계됐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가 7.8%, 나스닥 지수가 11.2% 오르는 등 주요국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 확대로 투자 잔액이 증가했고,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순투자도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유로스톡스50(4.3%), 일본 니케이225(11.0%) 등도 상승하며 주요국 증시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한은이 지난 5일 발표한 국제수지 자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10월 기준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자산은 172억7,000만 달러(약 25조원) 증가했으며, 특히 해외주식투자가 180억4,000만 달러(약 26조원) 늘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잔액 기준으로는 비중이 작아 보이지만, 최근 두 달간 유입은 해외투자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0월 해외주식투자는 74억 달러(약 10조8,000억원)로, 같은 달 경상수지 흑자 68억1,000만 달러(약 9조9,600억원)를 웃돌았다.
금융당국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급등 원인"
해외투자 확대가 심화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이 ‘자금의 이동 방향’에 있다고 진단한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거나,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국내 자금이 해외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이창용 한은 총재도 “현재 환율은 외국인 자금이 아니라 내국인의 해외투자로 좌우되고 있다"며 "외국으로 나간 자금이 외국인 국내 투자 유입의 3~4배 많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오죽하면 청년들이 해외투자를 하겠냐"며 "해외로 눈을 돌리는 선택에 정서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주체가 서학개미인지 연기금인지와 관계없이 투자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내 시장의 기대 수익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자금이 자연스럽게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며 해외로 향하고, 이러한 추세가 환율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처가 제한된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흐름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과거 일본은 장기 불황과 저금리로 자산 증식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중·상류층 주부들은 저금리 엔화를 활용해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며 자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며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가계의 자산 구조와 해외투자 트렌드에 변화를 가져왔으나 이후 일본 통화 당국의 레버리지 규제 강화로 쇠퇴했다.

OECD, 내년 韓 성장률 0.1%P 하향 조정
문제는 일본의 장기 침체처럼 내년에도 국내 경제 상황이 쉽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인 이상 기업 22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기업 경영 전망조사'에 따르면 새해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 39.5%가 ‘현상 유지’를, 31.4%는 ‘긴축 경영’을 택했다. 응답기업의 70%가 내년에 보수적·방어적 경영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긴축경영을 선택한 기업의 61.6%가 인력 운용을 합리화하겠다고 답했는데, 이는 기존 인력 감축과 신규 채용 축소를 의미한다.
불황 업종과 수출 중심 기업들은 이미 구조조정과 조직 개편에 착수하며 다각적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기간 부진이 이어진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업종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 고환율 환경까지 겹치며 압박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이에 일부 기업은 인공지능(AI) 전환과 임원 세대교체, 계열사 간 통폐합 등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위한 사업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변동성 확대, 국내 규제 부담 등을 완전히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경제 성장률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 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기존 2.2%에서 2.1%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성장을 지탱하고 있으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세 관련한 불확실성 등이 한국의 중기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업 투자는 글로벌 경기 불안과 높은 금리 탓에 좀처럼 늘지 않고 있으며, 가계부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도 지역별로 차이가 벌어지며 경제 전반의 구조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