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계대출 증가 폭 급감, 2금융·비규제 쏠림 속 집값·가계부채 안정은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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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가계대출 증가 폭 '반토막', 대출 수요는 2금융권으로 이동 서울·경기 규제지역 거래 76% 감소, 지방·비규제 지역·대형 오피스텔로 쏠리는 자금 GDP 대비 90%대 가계부채, 락다운식 대출 규제 장기화에 따른 질적 악화 우려

11월 가계대출 통계가 고강도 부동산 대출 규제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전월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경기 규제지역 아파트 거래가 급감하는 사이 막힌 자금이 제2금융권과 비규제 지역, 오피스텔·지방 주택시장으로 옮겨 가면서 집값 안정 효과와 금융경색 부작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은행 대출 축소에 2금융권 쏠림 현상 심화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75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9,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은 6월 6조2,000억원까지 치솟은 뒤 6·27 대책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가 10월 3조5,000억원에서 11월 1조9,000억원으로 다시 떨어지며 9월 수준(1조9,000억원)으로 회귀했다. 한 달 만에 증가 폭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던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7,000억원에 그치며 2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와 금융당국의 연말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압박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제2금융권은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상호금융·보험·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달 2조3,000억원 늘며 전체 증가세를 이끌었다. 1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금리 부담이 더 큰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옮겨간 것이다. 은행권을 누르자 2금융권이 부풀어 오르는 전형적인 ‘풍선효과’가 금융시장 내에서 먼저 나타난 셈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은행·비은행권 대출과 기타 신용을 모두 포괄한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Global Debt Monitor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에 달해 조사 대상 38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집계에서도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보다 13.8%포인트 높아지며 중국과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1금융권 중심의 총량 관리가 자칫 부채를 더 취약한 영역으로 밀어내는 ‘규제의 역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규제가 느슨한 2금융권과 비규제 부동산 시장에서 부채가 빠르게 늘어날 경우, 가계부채의 양뿐 아니라 질까지 나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규제 덜한 오피스텔과 경기 외곽으로 수요 이동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이 눈에 띄게 줄었음에도 전체 가계대출 규모가 여전히 4조1,000억원 증가세를 유지한 배경에는 비규제 부동산 시장으로의 ‘유동성 이동’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권의 빗장을 걸어 잠그자 갈 곳 잃은 자금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오피스텔이나 수도권 외곽으로 쏠리며 전체 대출 총량을 떠받친 것이다.
지난달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규제지역과 비규제 지역의 거래 절벽과 쏠림 현상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10·15 대책 발표 직후 20일간(10.16∼11.4) 서울·경기 등 규제지역 37곳의 아파트 거래량은 2,424건에 그쳐 직전 20일(1만242건) 대비 76% 급감했다. 반면 규제를 피한 수도권 비규제 지역은 같은 기간 거래량이 5,170건에서 6,292건으로 22% 증가했다. 대출과 세제 부담을 피해 실수요자와 관망 수요가 빠르게 이동한 결과다. 서울 시장이 얼어붙은 사이 막힌 유동성이 규제 장벽이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풍선효과가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아파트 대체재인 오피스텔과 경기 외곽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도권 대형 오피스텔(전용 85㎡ 초과)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16% 상승해 통계 개편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아파트 진입 장벽이 높아지자 대출 및 청약 문턱이 낮은 주거용 오피스텔로 수요가 집중된 것이다. 지역별로는 10·15 대책 직후 20일간 수원 권선구(73%↑), 화성시(58%↑) 등 경기 외곽의 거래량이 폭증했다. 심지어 침체해 있던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지수(한국부동산원 11월 첫째 주)마저 100주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 전환(0.01%)하며 전국적인 자금 이동 징후를 보이고 있다.

통계 착시 우려 속 여전한 가계부채 리스크
규제 빈틈을 노린 자금 이동이 뚜렷해지는 사이, 정작 정부가 최우선 정책 목표로 내세운 ‘서울 집값’ 지표는 혼선에 휩싸였다. 현재 시장에서는 정부 통계와 민간 통계의 방향이 엇갈리는 '통계 괴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1월 셋째 주 기준 한국부동산원은 서울 아파트값이 0.20% 상승했다고 발표했으나, 민간 조사업체인 부동산R114는 0.05% 하락했다고 집계하는 등 지표 간 온도 차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거래량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가격 지표만으로는 시장의 방향성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집값 안정세가 수요 감소에 의한 자연스러운 조정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대출 차단에 따른 '일시적 멈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고강도 규제’의 지속 가능성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 상황을 사실상 금융 락다운(Lockdown)에 비유하며, 대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현금 동원력이 있는 계층만 주택 매입이 가능한 ‘자산 양극화’가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규제 기조가 수년 내 완화될 경우, 그동안 억눌린 대기 수요가 일시에 분출하며 가격 변동성을 다시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정도 수준의 락다운식 규제가 3~5년가량 이어진다면 서울 집값이 조정될 여지는 있겠지만, 그 기간 동안의 금융 경색과 경기 위축을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