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품 예전만큼 필요 없어" 반도체 자립 가속화하는 中, 무역 전략 재정비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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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 수년 사이 쪼그라들어 급성장하는 中 반도체 생태계, 美 수출 통제 완화에도 자립 의지 굳건 "문화·서비스로 밀고 나가야" 대중국 수출 전략 재편 필요성 부각

한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나날이 급감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노력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중국 시장 내 입지가 눈에 띄게 좁아지는 양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반도체 등 기술 제품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문화·서비스 수출 중심으로 대중 무역 전략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中의 자체 반도체 생태계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의존도는 최근 수년에 걸쳐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중국, 홍콩이 한국의 전체 반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61.1%에서 지난해(1∼11월) 51.7%로 9%P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중국과 홍콩을 분리해서 살펴보면 중국 비중은 40.2%에서 33.3%로, 홍콩 비중은 20.9%에서 18.4%로 떨어졌다. 한국 반도체의 핵심 수출국이었던 중국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축소된 것이다.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노력이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자금 지원을 앞세워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3기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ICF·빅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산업에 3,440억 위안(약 69조4,900억원)을 투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더해 국유 기업과 민간 빅테크 기업에 자국산 칩 사용을 권유하거나, 국가 자금이 투입된 신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자국산 AI 칩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기존 시장 강자였던 엔비디아의 입지를 좁히기 위한 움직임도 속속 가시화하는 추세다.
이 같은 정부의 지원사격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전례 없는 고성장으로 이어졌다. 주요 업체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하이곤(Hygon)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 54억6,400만 위안(약 1조690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5.21% 증가한 수준이다. 순이익은 12억100만 위안(약 2,350억원)으로 40.78% 성장했다. 수년간 적자에 시달렸던 캠브리콘(Cambricon) 역시 상반기 매출액이 28억8,100만 위안(약 5,6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7.82% 폭증했고, 순이익도 10억3,800만 위안(약 2,030억원)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기술 수준 또한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다. 여러 전문 매체는 화웨이가 지난 5월 출시한 '어센드 910C'의 추론(Inference) 기능이 2023년 11월 출시된 엔비디아 H100의 약 60% 수준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역시 뛰어나다. 엔비디아의 이전 세대 칩인 A100과 비교했을 때, 910C의 가격은 약 30%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성능은 80%에 달한다. 현재 화웨이는 어센드 910C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차세대 AI 칩 어센드 910D를 개발 중이며, 업계에서는 이 칩이 H100을 능가하는 성능을 보일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美, 엔비디아 칩 앞세워 '방해 공작'
중국산 반도체가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가운데,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 완화를 통해 부랴부랴 중국의 자립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미국이 강력한 국가 안보를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조건하에 엔비디아가 H200 제품을 중국 및 기타 국가의 승인된 고객에게 선적하는 것을 허용할 것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H200 칩은 H10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AI 추론 성능 등이 중국 수출용 제품인 H20의 6배에 달하며,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인 '블랙웰' 대비 고급 추론 능력은 떨어지지만 대형언어모델(LLM)과 과학 컴퓨팅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분석가들을 인용, 트럼프 미 행정부가 H200 수출을 허용한 것은 미국의 시장 점유율 유지와 중국의 기술 자립을 늦추기 위한 이중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침 리 선임 애널리스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중국 내의 혁신 인센티브를 줄일 목적으로 구형 기술을 수출하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미국의 강수에도 불구, 중국은 반도체 자립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최근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중국 기업들의 AI 프로세서를 정부 승인 공급 업체 목록에 추가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목록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IT 제품 조달에 지출하는 정부 기관, 공공 기관 및 국영 기업을 위한 지침 역할을 수행한다. 이 목록에 자국 핵심 반도체 기업을 추가했다는 것은 결국 외국산 반도체 제품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정부 차원의 의지 표명인 셈이다.

움직이는 대중국 수출 중심축
중국의 자체 반도체 생태계가 눈에 띄게 굳건해지자,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중 무역 전략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 제품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문화 상품 수출에 보다 힘을 실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중국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갈등 이후 한류 콘텐츠 금지령인 한한령을 작동하며 보복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공표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한국산 음악·드라마·영화의 중국 진출이 전면 차단되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한한령은 최근 수년 사이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듯 보였다. 2022년 11월에는 중국 플랫폼에서 6년 만에 한국 영화 스트리밍이 재개됐고, 그해 12월엔 한국 게임 7종이 한꺼번에 중국 시장 진출을 허가받았다. 그러나 2023년 이후 외자판호(외국 게임이 중국에 출시될 때 필요한 인허가권) 명단은 매달 요동쳤고, 테마파크·영화·음원 등 콘텐츠 산업의 중국 내 허가는 한중 외교 상황에 따라 그 속도와 범위가 급변했다. 최근에는 중국 내 K팝 공연이 현지 사정을 이유로 잇따라 취소 혹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문화 수출이 완전히 재개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현재 양국 정부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년 맞이 개정 협상은 이 같은 한계를 명확히 겨냥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FTA 2단계인 서비스·투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중국 시장에 진출할 만한 유망 분야로 여행·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꼽는다. 한 시장 전문가는 "현재 한국 여행사는 한국 방문을 원하는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없고, 한국 가수들이 중국에서 공연 수익을 올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문화 및 콘텐츠 산업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2단계 협상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