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메모리 가격, 격화하는 경쟁 속 각국 '활로 모색'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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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 급성장, D램·HBM 가격 나란히 치솟아 아시아 중심으로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투자, 메모리 수요 증가세 지속 전망 합종연횡하며 버티는 美 빅테크, EU는 부랴부랴 규제 완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경쟁이 격화하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가운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며 시장 전반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빠르게 확대되는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메모리 호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메모리 반도체 '대호황'
11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들어 메모리 반도체 제품 가격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 자료를 살펴보면 11월 PC용 D램 범용 제품의 평균 가격은 8.1달러(약 1만1,930원)이었다. 이는 올해 1월(1.35달러) 대비 6배가량 폭등한 수준이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 체결한 HBM4 공급 가격은 약 500달러(약 73만6,650원)로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300달러) 제품보다 1.6배가량 높은 수준에 책정됐다. 이처럼 높은 판매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요 메모리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내년 D램과 HBM 물량은 완판된 상황이다. 그만큼 시장 수요가 뜨거운 셈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메모리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고 글로벌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합류한다고 발표한 오픈AI의 경우,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월간 최대 웨이퍼 90만 장 규모의 D램을 사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 D램 월 생산량(150만 장)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은 “가격과 상관없이 가능한 모든 물량을 달라”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사실상 백지 위임 주문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한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을 휩쓴 AI 열풍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AI 학습·추론 비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AI 기술이 발전하고 시장이 확대될수록 메모리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메모리 제조사들이 한정된 D램 생산 물량을 HBM에 집중한 상태에서 데이터센터 서버용 D램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에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완전히 어긋나며 제품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셈이다.

AI 데이터센터, 아시아 위주로 우후죽순 늘어나
시장에서는 이 같은 메모리 호황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AI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며 메모리 제품 수요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AI 기업들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다. 데이터센터 건립에 필요한 대규모 부지와 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값싼 전기를 제공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아시아 데이터센터 시장 강자는 싱가포르였다. 하지만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며 국가 전체의 전력 부담이 가중되자 싱가포르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일시적으로 중단했고, 이로 인해 관련 수요는 주변국으로 분산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가 발표한 ‘아시아 태평양 데이터센터 투자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인구 대비 데이터센터 용량 개선 속도가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는 말레이시아다.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수요와 조호르 지역을 거점으로 한 AI 및 클라우드 기반 역내 수요가 맞물리며 동남아시아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구글은 지난해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주 엘미나 비즈니스 파크에 20억 달러(약 2조7,910억원)를 들여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시설 건설에 나섰고, 오라클도 같은 해 65억 달러(약 9조5,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존 웹서비스(AWS)의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는 이미 완공돼 운영 중이다.
태국은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태국의 데이터센터 시장의 메가와트(MW)당 인구수는 약 80만 명에서 2030년까지 약 22만 명 수준까지 개선될 것으로 예측됐다. 비록 현재 가동 중인 태국 내 데이터센터 용량은 89MW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에서 가장 낮은 편이지만, 2024년 하이퍼스케일러 투자 계획 발표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태국에서는 구글 아마존 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에퀴닉스 등이 방콕에서 가까운 촌부리 지역에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 중이다. AWS는 50억 달러(약 7조1,000억원)를 태국 내 AI 인프라 건설을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도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몰리고 있다. 중국 텐센트는 2030년까지 5억 달러(약 7,000억원)를 인도네시아 데이터센터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3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다. 엔비디아는 인도네시아 현지 통신사 인도샛와 함께 AI 센터 구축을 위해 2억 달러(약 2,94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베트남의 경우 지난 10월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AI·기술 기업인 G42의 20억 달러(약 2조 9,470억원) 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지로 낙점됐다.
AI 경쟁 속 각국 시장 '희비교차'
격화하는 시장 경쟁 속 AI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합종연횡' 전략을 택하며 입지를 유지 중이다. 지난 9월 엔비디아가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약 147조3,500억원)를 투자해 엔비디아 칩이 탑재된 10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향서(LOI)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10GW 규모의 해당 데이터센터에는 400만~500만 개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에는 MS가 엔비디아, 앤트로픽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해당 협약에 따라 MS는 앤트로픽에 50억 달러(약 7조3,670억원), 엔비디아는 100억 달러(약 14조7,350억원)를 투자한다. 앤트로픽은 MS로부터 3,000억 달러(약 442조500억원) 규모의 애저 컴퓨팅 자원을 구매하고, 최대 1GW 규모의 추가 컴퓨팅 용량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레이스 블랙웰·베라 루빈 시스템을 활용해 최대 1GW의 GPU 컴퓨팅 자원도 확보하기로 했다.
반면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 'EU AI Act(유럽연합 AI법)'를 앞세워 선제적으로 강력한 규제 체계를 정립한 EU의 경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려나며 '참패'를 겪었다. 혁신을 주도할 역내 기업들이 규제가 없는 타국으로 대거 이탈하며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AI 핵심 규제의 전면 적용 시기를 내년 8월에서 2027년 12월로 연기하고, AI 기업이 유럽인의 데이터를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보호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밝히며 입장을 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