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쿠팡이 보여준 위기 대응 전략 - 사업은 한국에서, 채용-운영-상장은 외국으로
입력
수정
쿠팡, 해킹 사태 터졌지만 능력 위주, 비용 절감 차원의 외국인 채용 기조 바뀌지 않을 것 전망 국회 청문회 앞두고 백인 신임대표 임명, 사실상 외국인 이용한 방패막이 전략으로 평가 해킹 사건 터졌지만 미국 상장된 주식도 잠잠, 국내 사건이 주가에 큰 영향 미치지 않는 듯 외국인 채용, 해외 상장 등으로 국내 정부 감시 비켜가, 향후 국내 경영계에 유사 사례 늘어날수도

지난 11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이래 지난 3주간 쿠팡이 보여준 대응은 그간 한국 기업들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경우들이다. 최근 해킹 사태 논란이 불거졌던 SKT, KT, 롯데카드 등은 회사 경영진이 사과에 나서고, 소비자 보상책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를 내놓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보이기도 했고, 사후약방문이기는 하지만 IT보안에 더 인력을 보강하고 투자를 늘리겠다는 경영 목표의 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쿠팡은 공식 사과 공지가 웹사이트 링크와 연결되어 추가 소비를 이끌어내는 꼼수였다는 지적이라는 불만까지 제기됐다. 국회 청문회가 임박했다고 알려진 가운데, 지난 11일 한국 운영 총괄을 맡고 있는 박대준 대표가 사임했고, 미국 모 회사에서 최고관리책임자를 맡고 있던 해롤드 로저스 신임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업계 주요 관계자들은 국회 청문회에 한국어를 쓰는 대표를 투입하기보다 영어를 쓰는 백인을 투입해 청문회 진행을 어렵게 만들겠다는 쿠팡 김범석 의장의 전략이 반영됐다고 평가한다. 상황 해결, 해명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라기보다 한국의 정부-기업 감시·감독 구조를 회피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채용, 외국인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기업
쿠팡 내에 현재 외국인 인력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정보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대략 10%에서 최대 20% 내외의 인력이 현재 국내 쿠팡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이터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이미 중국 개발자 위주로 채용이 돌아간지 이미 3년이 넘었고, 주요 경영진에 대해서는 '미국 아마존 모델'을 따라가던 사업 구조상 해외 이커머스 출신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때문에 이번 해킹 사태가 터지고 난 다음에 일각에서는 다시 국내 개발자 위주로 채용 전략을 바꾸지 않을까는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개발 실력에서 중국 개발자들이 한국 개발자들보다 우위에 있는데다, 임금도 저렴한 점,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김 의장의 경영 전략에도 적합한 점 등을 들어 채용 구조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개발자들의 역량이 글로벌 개발 시장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도 낮은데다, 코로나-19 시즌부터 국내 개발자 부족에 따른 개발자 몸 값의 비대칭적인 향상, 국내 개발자들의 업무 태도 문제 등등이 현재 쿠팡의 개발 인력 현황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관련해서 국내 한 IT스타트업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개발자들을 '상전 받들듯이 떠 받들어줘야 되는 시절'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때문에 국내 IT업계에서는 쿠팡이 한국 개발자들을 채용하겠다고 전략을 바꾸기보다, 이번에 쿠팡의 중국인 개발자 채용 전략이 상세하게 알려지면서 되려 다른 한국 기업들마저 더 적극적으로 해외 개발 인력을 채용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23년부터 베를린으로 사업체를 옮긴 한 전직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이번 쿠팡 사건을 들어 중국인 개발자들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직접 다루는 개발자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사건이라며, 데이터 암호화, 접근 단계 강화 등의 내부 보안 문제를 지적해야하는 상황이지, 국적이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에서도 서유럽보다 동유럽에서 저가 인력을 채용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쿠팡과 유사한 사례를 인도 개발자들을 쓰면서 이미 겪었던 문제들인만큼, 동유럽 개발자들의 데이터 접근 권한에 대해 보안 업계 시스템이 한국과 비교 불가능한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는 상황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타국의 저가 인력을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외국인으로 운영, 외국인으로 비용 절감, 외국인으로 방패막이
쿠팡은 외국인력 활용 전략은 단순히 비용 절감에 크치지 않는다. 쿠팡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은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로저스 신임대표로 국내 대표자를 교체하는 것을 놓고도 김 의장의 방패막이 전략으로 평가한다.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 대표를 이용해 국회 청문회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백인 대표가 영어로 입장문을 밝히도록 해서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통역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영어 자료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청문회 준비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관계자들의 불만과 달리, 경영계에서는 김 의장의 이번 선택이 낳을 파장에 주목한다. 과거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계 투자은행(IB) 및 금융사, 전략컨설팅 업체, 최근들어서는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한국 진출을 위해 한국인 대표를 선임하고, 한국에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사업 확장에 일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국회 청문회 소환 등의 사건이 벌어질 경우 언론 노출에 따른 각종 정치적 부담, 회사 이미지 문제 등등으로 고민을 하는 일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로저스 신임대표가 국내 언론 및 정치권, 사법기관 등과 대응하면서 한국 여론이라는 날선 칼을 피할 수 있다면, 향후 같은 전략을 쓰는 해외 업체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홍보(PR)업계 관계자는 백인 대표자가 국회 청문회에 참석할 경우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통역하는 과정에서 긴장도가 낮춰질 수밖에 없고, 시간 지연, 국내 시청률 저하 등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해킹 터졌지만 미국 상장된 주식도 잠잠, 해외로 법인 이전하는 사례 늘 수도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것도 본 사건에 대한 쿠팡의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해킹 사건이 최초로 보도됐던 지난 11월 20일 쿠팡 주가는 26.56 달러였다. 전일 27.40 달러에서 약 3.1% 하락한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면 배상 책임 등에 대한 부담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SK텔레콤의 경우 유심 무료 교체가 확정되면서 주가가 전일 대비 6.75% 급락하기도 했다. 쿠팡의 경우는 11월 24일에 다시 27.51 달러로 주가가 회복됐고, 28일에는 28.16 달러까지 주가가 뛰기도 했다. 국내에서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건이 미국 뉴욕의 주가를 흔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간 국내에서 투자 유치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해외로 법인을 이전한 스타트업 및 중견 기업들에서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는 언론, 정부 및 관련 기관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 잦았던 반면, 외국 기업으로 외국인과 함께 한국에 들어가면 장벽이 크게 낮아지고 국내 기업 담당자들이 위축되는 사례들을 여럿 공유하면서 로저스 대표가 한국 여론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연쇄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쿠팡처럼 이미 한국사회에서 안정적인 영업 기반이 마련된 기업일수록 더더욱 한국어 사용이 불가능한 비한국계 외국인을 한국 대표자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시선이 글로벌 시장으로 넓어지면서 한국 정부 및 관계자들이 한국 내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될 가능성도 지적한다. 쿠팡 김 의장이 사실상 출석을 거부하고 백인 대표를 내세워서 국내 여론이 잦아드는 것이 확인되면 향후 국회 청문회의 영향력도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