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IPO 자금 ‘강제 송환’ 조치 나선 중국, 기업 상장 전략 재편 흐름 속 홍콩에 ‘시선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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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본국으로, 상장은 재검토”
통제 범위 확대→홍콩 상장 유도
미·중 갈등 속 세계 IPO 경로 이동

중국 금융당국이 해외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의 본국 송환을 의무화하면서 글로벌 진출 기업의 상장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해외 증시에서의 상장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자금 운용의 자유도마저 낮아지면서 기존의 ‘미국 상장–해외 자금 활용’ 경로 또한 제약을 받는 형국이다. 이는 해외 상장 수요가 대거 홍콩으로 이동하는 흐름과도 맞물리며 미·중 갈등 국면에서 홍콩이 주요 상장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을 높인다.
해외 자금 보관·사용 경로 관리 목적
28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PBOC)과 국가외환관리국(SAFE) 등 금융당국은 지난 26일 ‘국내 기업의 해외 상장 자금 관리에 관한 문제 통지’를 발표했다. 중국 기업이 해외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원칙적으로 본국 송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해당 규정은 3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4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이에 지금까지 공격적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해 온 다수의 기업이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이번 통지는 해외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의 보관·사용 경로를 명확히 묶는 데 초점을 뒀다. 해외에서 조달한 달러 자금을 해외 법인에 상시 보유하며 자율적으로 집행하던 관행을 제한하고, 사용 목적과 시점에 따라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식이다. 기업이 해외 자금을 해외 직접투자 및 계열사 지원, 대여 등에 활용하려면 상장 이전 또는 집행 이전에 주무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원칙적으로는 본국 송환을 전제로 한 관리 체계가 적용된다. 이는 2014년 ‘54호 통지’로 열어뒀던 자율 운용의 폭을 11년 만에 다시 좁히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전 체제에서 중국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해외 IPO 자금을 글로벌 확장의 연료로 활용해 왔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은 미국 등 해외 증시에서 조달한 수백억 달러를 해외 법인에 남겨두고, 이를 인수·합병(M&A)과 신기술 투자, 해외 물류·콘텐츠·핀테크 사업 확대에 투입했다. 해외 현지에서 즉시 집행 가능한 달러 유동성은 의사결정 속도와 규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고, 이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해외 상장 자체가 글로벌 성장 전략의 전제가 됐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의 이번 결정은 지금까지의 기업 자금 운용 방식 전반에 절차적 제약을 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중국 기업들의 미국 상장 시도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중화권(중국·홍콩·마카오·대만) 기업 258곳이 IPO를 진행했는데, 이 중 미국 증시 상장 비중은 22.5%로 전년 동기(15.9%) 대비 6.6%p 뛰었다. 다만 같은 기간 미국 상장을 통해 조달한 총자금은 112억 달러(약 16조500억원)로 지난해 연간 230억 달러(32조 9,000억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벤처캐피털(VC) 투자 기업의 평균 공모 규모 역시 2021년 3억 달러(약 4,300억원)에서 2024년 5,000만 달러(약 717조원)로 축소됐다. 상장 건수는 늘었지만, 개별 IPO 규모가 작아지는 흐름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자본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둘러싼 규제 환경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나스닥은 중국 기업에 대한 상장 요건을 강화하는 개편안을 공개했다. 신규 상장을 추진하는 중국 기업에는 최소 2,500만 달러(약 358억원)의 공모 자금 조달 요건이 부과됐고, 일반 상장 기준도 상향돼 최소 공개 유통주 시가총액 기준이 500만 달러(약 72조원)에서 1,500만 달러(약 215조원)로 높아졌다. 아울러 시가총액이 500만 달러 미만으로 떨어질 땐 거래정지와 상장 폐지 절차를 더 신속히 진행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나스닥은 이 같은 개편안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해 승인 대기 중이다.
해외 IPO 승인 제도 개편 흐름
최근의 변화는 중국이 그동안 자국 기업의 해외 IPO를 경계하며 상장 경로를 관리해 온 기존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2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정부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투기와 시세 조종의 재료로 악용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본금이 적고 펀더멘털이 약한 소형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극단적인 주가 변동을 겪는 일이 빈번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홍콩 기반 소형 증권사 매직엠파이어글로벌은 2022년 나스닥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의 60배까지 치솟았다가 불과 1주일 만에 95% 폭락한 바 있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사례가 반복될수록 국가 이미지 훼손과 투자자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이에 해외 IPO 승인 제도를 손질하고 나섰다. 중국이 승인한 미국 IPO 신청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22건에서 하반기 11건으로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사실상 더 엄격한 통제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FT는 중국 내 IPO 전문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과거에는 2개월이면 가능했던 미국 상장 승인 절차가 이제는 1년 이상 걸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앞서 2023년 중국은 해외 증권시장 상장 및 관리 제도를 개편하며 자국 기업이 홍콩·미국 등 국외 시장에 상장할 때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를 비롯한 여러 규제기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전에는 해외 등록 절차와 지배구조 설정만 준비하면 됐지만, 이후에는 상장 구조와 자금 조달 방식 전반을 중국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여기에 우회 상장 경로로 활용돼 온 가변이익실체(VIE) 구조도 관리 대상에 포함되면서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주요 빅테크가 활용하는 해외 상장 방식 전반에 대한 통제 역시 강화됐다.

홍콩 증시 부활 신호탄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해외 상장 수요를 홍콩으로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미국 증시에 대한 규제 리스크 또한 커지자, 중국 본토 기업들로선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적고 제도적 연속성이 유지되는 홍콩을 대안적 상장 경로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국 상장 과정에서의 심사 강화와 승인 지연이 반복되면서, 자금 조달 시점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시장으로 홍콩이 다시 부각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실제 상장 신청 지표는 이런 변화를 수치로 보여준다. 홍콩증권거래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홍콩 증시에 신규 IPO나 2차 상장을 신청한 기업은 총 208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종전 상반기 최다 기록이었던 2021년의 189곳을 넘어선 역대 최대치다. 조달 규모 측면에서도 압도적인 성장세다. 올해 상반기 홍콩 증시의 신규 IPO 및 2차 상장 자금 조달 규모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제외하고 138억 달러(약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은 92억 달러(약 13조1,000억원),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78억 달러(약 11조1,000억원)에 그친 것과 상반된 성적표다.
시장 구조 변화도 눈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올해 홍콩 증시에 상장 신청을 한 기업 가운데 이미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한 뒤 홍콩에서 2차 상장을 추진한 기업은 47곳에 달했다. 이를 두고 KPMG는 “중국 본토 상장기업의 홍콩 상장은 갈수록 시장 활동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국내 경제 둔화 속에서 해외 사업 확장 자금을 확보하려는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보다 홍콩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로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제도적 요인 역시 홍콩 IPO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홍콩거래소는 2018년 매출 발생 이전(pre-revenue) 단계의 바이오 기업 상장을 허용하는 ‘18A’ 챕터를 도입했고, 2023년에는 이익 미실현 기술기업의 상장을 가능하게 하는 ‘18C’ 챕터를 추가했다. 이에 더해 올해 5월에는 기술기업 전용 상장 라인을 개설해 비공개 상장 신청을 허용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 결과 올해 홍콩 IPO 시장에서는 의약품·바이오테크 업종이 17곳으로 가장 많은 상장 기업 수를 기록했고, 조달 금액은 242억 홍콩달러(약 4조4,000억원)에 달했다.
제도 개선에 발맞춰 대형 거래도 줄을 이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 닝더스다이(CATL)는 지난 5월 홍콩에서 2차 상장을 통해 410억 홍콩달러(약 7조5,000억원)를 조달하며 올해 글로벌 IPO 가운데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또 항서제약은 114억 홍콩달러(약 2조1,000억원), 삼일중공업은 100억 홍콩달러(약 1조8,000억원)가 넘는 자금을 각각 홍콩 증시에서 조달했다. 이들 사례는 홍콩 시장이 미·중 갈등의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회피 경로를 넘어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한 실질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