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글로벌 금융시장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제기, 변수는 엔화 방향성
입력
수정
지난주 BOJ 기준금리 인상에도 외환시장 반응 제한적 글로벌 IB “연초 엔화 강세 시 대규모 청산 가능” 경고 현실은 연초부터 엔저 이어지며 엔 캐리 자금 '고착화'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글로벌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나갔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여전히 엔 캐리 트레이드(엔화를 저리로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 청산 시점을 둘러싼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연초 엔화가 강세로 전환될 경우 대규모 청산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가운데,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고착화되며 캐리 자금이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 모습이다.
남아있는 엔 캐리 포지션 5,000억 달러 추정
28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주요 IB들은 최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30년 만에 최고치인 0.75%로 인상함에 따라 내년 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후폭풍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현재 금리 인상의 시장 충격이 제한적인 것은 헤지펀드의 선제적 청산과 연말 연휴를 앞둔 기관투자가들의 거래 공백이 겹친 결과"라며 "연초 기관들이 자금 배분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엔화가 강세로 전환될 경우, 엔 캐리 자금이 연쇄적으로 청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인 엔화를 차입해 미국 등 고금리 국가의 주식, 채권, 가상자산 등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노리는 투자 자금을 말한다. 이 경우 일본 기준금리가 올라가고,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차입 비용 증가와 환차손 부담이 커져 청산이 불가피해진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에서 0.25%로 인상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엔 캐리 자금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미국 증시는 물론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동반 급락했고, 시장에서는 이를 ‘블랙 먼데이’로 불렀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시장에 5,000억 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엔 캐리 포지션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유동성이 취약한 연말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0엔대로 상승할 경우 마진콜이 발생해 엔 캐리 자금이 주식,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에서 급격히 이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일본은행의 사전 예고로 충격이 일부 완화됐으나, 여전히 청산 여력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JP모건은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대규모 청산보다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재진입 과정에서 변동성 확대가 리스크로 부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日 재정 건전성 우려도 '엔화 약세' 압력 키워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시점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는 엔화의 방향성이 꼽힌다. 엔화가 약세를 유지하는 한, 캐리 전략의 수익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엔 환율은 반등 없이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150엔 후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리 인상 직전인 지난 18일 장중 1달러당 155.4엔이었던 환율은 인상 발표 직후 오히려 157.7엔까지 상승했다. 당초 미국이 이달 10일 기준금리를 인하한 가운데 일본이 금리를 올리며 양국 간 금리 차가 3년 만에 최저로 줄어든 만큼 엔화 약세가 주춤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기대와 달리 엔화 가치는 약 1.5% 하락했다.
엔화가 거꾸로 움직이는 이유로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발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과 관련해 “경제·물가·금융 상황에 따라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일본은행이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베팅이 약해지면서 금리 인상 이후에도 엔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이 유지됐다”며 “이 같은 인식이 엔화 약세 압력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일본 주식 정보 사이트 민카부에는 “금리를 올렸지만, 환율을 되돌릴 만큼의 정책 확신과 가이던스는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거품 경제 붕괴 직전 수준까지 어렵게 끌어올린 만큼,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통상 중앙은행이 기존 틀을 깨는 금리 정책을 단행한 이후에는 경제 주체의 반응을 살피는 관찰 기간을 두는 만큼, 기준금리가 상당 기간 현재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엔화 가치를 짓누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추진하는 21조3,000억 엔(약 200조원) 규모의 지출 계획으로 인한 재정 압박이 현재 엔화의 이상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내년 상반기 일본은행 기준금리 인상 전망 우세
이런 가운데 우에다 총재는 지난 25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주관한 강연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날 그는 “경제와 물가 전망이 실현된다면 정책금리를 계속 올려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겠다”며 “실질금리도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금과 물가가 사실상 동결된 제로 노멀의 시대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하면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는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은 12월 금융정책결정회의 의사록에서도 확인된다.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일본의 실질 정책금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낮은 실질 정책금리가 외환시장을 통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통화 완화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은 "글로벌 환경이 올해의 정책금리 인하 기조에서 내년에는 인상 기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다만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을 두고는 시장의 의견이 엇갈린다. 다수의 전문가는 내년 상반기, 특히 6~7월을 유력한 인상 시점으로 꼽으면서 엔저 흐름과 물가 동향이 핵심 변수로 지목한다. 시장조사업체 도쿄단기리서치 등에 따르면 시장이 예상하는 기준금리 인상 시점으로 '2026년 상반기'가 될 가능성이 60%로 집계됐다. 반면 일본은행 내부에는 엔저가 지속되고,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유지되거나 내년 춘계 임금협상에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나타날 경우, 내년 4월께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매파적 시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