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던 LNG선 다시 만드는 日, 구형기술 탈피·숙련인력 확보가 재건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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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LNG 98% 수입 의존 “운송도 안보” 대만 유사시 발언 놓고 중·일 긴장 여전 중국서 건조한 선박 못 받을 우려 확대

한때 세계 조선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이 7년간의 공백을 깨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시장에 전격 복귀한다. 자국 내 대형 조선사 간의 전략적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운 일본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일본은 구형 기술을 고집하다 한국과 중국에 패권을 내준 데다, 7년에 걸친 공백으로 인력 단절과 설비 노후화까지 누적돼 있어 산업 재건이 순탄하게 전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7년 만에 LNG선 건조 타진, 1위 이마바리 낙점
2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국토교통성은 전날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 2019년 이후 중단된 자국 내 LNG선 건조를 재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다수의 조선과 해운,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LNG 운반선 건조 추진은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중점을 두는 경제안보 강화 관련 정책으로, 일본 최대 조선업체인 이마바리조선이 규슈 나가사키현 오시마조선소의 고야기 공장을 활용해 선박을 건조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고야기 공장은 원래 미쓰비시중공업의 LNG선 거점이었던 곳이다. 2019년 미쓰비시중공업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오시마조선소로 넘어갔다. 현재 이곳에서 벌크선을 건조하고 있지만, 일부 설비는 유휴 상태라 LNG 건조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부터 자국 내 2위 업체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와의 합병을 추진, 올해 1월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국 HD현대중공업, 중국 CSSC 등과 경쟁할 세계 4위 조선사로 덩치를 키웠다.
LNG선 건조 재개는 일본 정부의 조선업 재건 계획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조선업 재생 로드맵’을 내놓고 2035년까지 자국 선박 건조량을 1,800만 총톤(GT)으로 현재의 2배 수준까지 확대하고, 조선소 자동화와 스마트 야드 구축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정부가 직접 조성하는 ‘국가 조선소’ 모델이다. 일본 정부의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에서 핵심은 정부 그 자체다. 일본 정부가 향후 10년간 민관 합산 1조 엔(약 9조4,600억원)을 투입하고, 필요할 경우 국영 조선소 설립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조선업계가 각각 3,800억 엔(약 3조5,900억원), 3,500억 엔(약 3조3,100억원)을 2035년까지 출자하고 공적자금까지 출연해 1조 엔 규모 조선업 펀드도 조성할 예정이다. 일본 조선업계는 138개에 달했던 도크(선박 건조 시설)를 1980년대 구조조정을 통해 46개로 축소할 정도로 생산 시설을 조정했는데, 조선업 인프라를 정부 주도로 다시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성보다 안보, 에너지 수송망 ‘자국화’ 속도
일본이 LNG선 건조를 재추진하는 배경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자리한다. 일본 선사들은 그간 한국이나 중국 조선소에 LNG 운반선을 발주해 왔다. 중국 후둥중화조선은 카타르 LNG 프로젝트에서 미쓰이OSK라인 발주 LNG선 7척을 수주했고, 닛폰유센과 가와사키기선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LNG선 일부가 중국 조선소에 발주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전략 물자인 LNG의 운송 수단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국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LNG 운반선을 발주할 수 없게 되거나 중국에서 건조한 선박의 공급이 지체될 경우 에너지 수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석유의 약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에 있어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은 해상 수송이다. 선박 확보 능력이 곧 국가 에너지 안전망과 직결된다. 이미 중국은 대일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면서 에너지 안보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이 에너지 수송망 확보에 집착하는 또 다른 요인은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경험이다. 당시 중동발 공급 충격을 겪은 일본은 이후 50년간 에너지 안보를 국가 핵심 정책으로 관리해 왔다. 최근 지정학적 환경도 이런 취약성을 자극하고 있다. 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으로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높아지고, 대만해협을 둘러싼 역내 군사적 긴장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본으로서는 해상 수송로 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멤브레인형 기술·인재 확보 관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전 세계 건조량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조선 강국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건조 수준은 지난해 기준 11%까지 고꾸라졌다. 질적으로는 한국, 양적으로는 중국의 수준이 지배적이라 쉽게 뒤집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공격적인 태도에 우리나라 조선업계 역시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전 세계 건조량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중국과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숙제에 더해 일본의 추격까지 따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각에서는 한국 조선업계에 제2의 중흥기를 안겨주고 있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일본이 호기롭게 선언한 목표가 현실화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일본 조선업 생태계부터 재건해야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양분한 시장에서 이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특히 노동 집중형 산업 특성상 숙련된 노동력 확보가 중요한데, 2010년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글로벌 조선업 침체를 겪으면서 일본 내 조선업 숙련 인력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여기엔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가 크게 작용했다. 1~2차 오일 쇼크 이후 글로벌 조선업 전망을 오판한 일본 정부는 1978~1980년, 1987~1988년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른바 ‘조선 합리화 정책’이었다. 정책 여파로 60여 개에 달했던 조선업체가 20여 개로 줄어들었고, 도크 절반이 강제로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설계, 용접, 도장 업무 등에서 고도의 업무 숙련도를 지녔던 노동자들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8년 일본 도쿄대의 학과명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환경해양공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사실상 조선업 미래 인재까지 포기한 것이다.
일본은 노동력뿐 아니라 기술력도 한계가 뚜렷하다. 일본은 구형 저장 탱크인 ‘모스(Moss)형’ LNG 화물창에 특화돼 있으나, 현재 시장은 대형화에 유리한 ‘멤브레인(Membrane)형’이 주도하고 있다. 멤브레인형은 선체 형상에 맞춰 제작할 수 있어 공간 효율성이 좋지만 충격에 취약해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빅3는 멤브레인형 기술에서 압도적인 숙련도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7년 동안 LNG 운반선을 건조한 실적이 없어 새로운 기술 표준에 적응하고 신뢰를 쌓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일본은 중국과 달리 원자잿값이나 인건비가 높아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여력이 없다. 일본 조선업계가 수년 안에 한국, 중국 조선업계와 경쟁할 능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