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쇼핑 후퇴, “탐색은 AI·결제는 플랫폼” 쇼핑 권력 나뉜다
입력
수정
AI 단독 커머스 모델 실효성 한계 확인
자사몰 및 플랫폼 경쟁력 재평가 기류
SNS 라이브 등 신규 채널 실험 확대

오픈AI가 자사 인공지능(AI) 모델 챗GPT 쇼핑 서비스에서 직접 결제 기능을 축소하고, 대신 상품 검색과 비교 중심으로 방향을 조정했다. 챗봇 내부에서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낮은 전환율과 소비자 신뢰 문제가 겹치면서 실제 거래는 유통사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구조가 다시 강조되는 흐름이다. 이에 따라 월마트 등 주요 기업들은 결제 주도권을 자사 시스템에 유지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반면 갭 등 일부 기업은 AI 플랫폼과 결제를 결합하는 실험을 이어가며 대화형 커머스의 확산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AI 내 구매 경험 22% 그쳐
25일(이하 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최근 오픈AI는 챗GPT를 통해 제공 중인 쇼핑 서비스 ‘인스턴트 체크아웃(Instant Checkout)’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검색 결과에 표시된 상품을 사용자가 챗봇 내부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해당 서비스는 지난해 9월 출시 당시만 해도 월마트와 쇼피파이, 엣시 등 다수의 대형 유통 기업이 참여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늦은 업데이트와 잦은 오류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에 오픈AI는 직접 결제 대신 검색·비교·추천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같은 결정은 실제 이용 데이터와 맞물려 나타난 결과다. 대니얼 단커 월마트 AI 가속·상품·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챗GPT 내부에서 결제까지 완료된 비율은 월마트 웹사이트를 통해 구매가 이뤄진 것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디지털 마케팅 분석 기관 셈러시(Semrush)의 설문 조사에서도 AI 도구 안에서 직접 구매를 완료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2%에 그쳤고, 절반 이상은 AI를 통해 상품을 탐색한 뒤 별도의 경로에서 결제를 진행했다고 답했다.
이러한 현실은 유통 기업의 대응 방식에 그대로 반영됐다. 월마트는 오픈AI와 협업을 유지하면서도 자체 AI 쇼핑 보조 시스템 ‘스파키(Sparky)’를 챗GPT와 내부에 동시에 탑재하기로 했다. 이용자가 챗GPT 안에서 상품 정보를 확인하더라도 계정 연동, 적립금 적용, 결제는 모두 월마트 환경에서 마무리하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단커 부사장은 “쇼핑은 월마트 앱이든 챗GPT든 어디서나 시작될 수 있다”면서도 “어디서 시작하든 우리만의 속도와 개인화된 경험을 그대로 누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오픈AI가 결제 기능을 중심으로 한 통합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데에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봤다. 소비자 신뢰와 결제 안정성, 브랜드 기반 경험이 결합된 기존 유통 구조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신뢰가 쌓이는 데는 수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결제 단계에서의 보안 사고나 오류 경험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AI 쇼핑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챗GPT는 탐색과 비교 중심의 ‘쇼핑 의사결정 허브’로 역할이 재정립되는 흐름이다.

브랜드 생태계 ‘잠금’ 모드
반면 기존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자사몰에 대화형 커머스를 도입해 적잖은 효과를 누리는 모양새다. 그간 업계에서는 AI가 상품 탐색부터 결제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AI 커머스’ 모델이 확산될 경우, 기존 플랫폼과 브랜드 자사몰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이와 다른 장면이 포착된다. 다수의 유통 기업이 AI를 외부 플랫폼에 맡기기보다 자사 시스템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며 거래 구조를 유지하고 나서면서다. AI는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도구로 활용되고, 최종 구매와 결제는 여전히 기존 유통망 안에서 이뤄지는 형태다.
미국의 다국적 의류 및 액세서리 소매업체 갭(Gap)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갭은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Gemini) 플랫폼에 직접 결제 기능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이용자는 제미나이와의 대화를 통해 상품을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갭이 운영하는 브랜드 제품을 즉시 구매할 수 있다. 기존 웹사이트나 앱을 거치지 않고 AI 인터페이스 안에서 탐색과 결제가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는 월마트가 챗GPT와의 협업에서 상품 정보를 확인 외 모든 단계를 자사로 끌어온 것과 대비된다. 다만 갭 역시 결제 주체는 자사 브랜드 측 시스템으로 유지했다.
여타 유통업체들의 전략도 유사한 방향을 보인다. 타깃, 노드스트롬, 로우스, 홈디포, 웨이페어 등 주요 기업들은 챗GPT 등 외부 플랫폼에 상품 데이터를 제공하면서도 결제 권한은 자사 사이트에 남겨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코스메틱 유통업체 세포라 역시 챗GPT 전용 앱을 통해 맞춤형 추천과 멤버십 연계를 제공하지만, 결제 기능은 추후 단계로 미뤘다. 이는 AI를 통한 탐색 경험은 수용하되 거래 데이터와 고객 관계는 자사 생태계에 묶어 두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화형 커머스가 기존 전자상거래 구조와 완전히 결합될 때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경훈 채널코퍼레이션 부대표는 “과거에도 플랫폼 중심 구조가 기존 채널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번 나왔지만, 모두 자취를 감췄다”면서도 “다만 쇼핑이 구매 이전 탐색과 경험을 포함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자사 채널을 유지하려는 브랜드들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경로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AI 역시 이처럼 다양한 경로 안에서 하나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로 정착할 것이란 관측이다.
데이터 정합성 등 과제 산적
대화형 커머스는 소비자들의 구매 선택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된다. 핵심은 결제 이전 단계다. IBM 기업가치연구소와 미국소매협회(NRF)가 공동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글로벌 소비자의 72%는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구매 과정에서 AI를 활용한다는 응답자 역시 45%에 달했다. 이 가운데 41%는 제품 조사, 33%는 리뷰 해석, 31%는 할인·혜택 탐색에 AI를 활용했다.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가거나 특정 브랜드 앱을 실행하기 전부터 이미 AI와의 대화를 통해 후보를 좁히고 비교를 마친다는 뜻이다.
많은 브랜드가 다양한 채널에서 대화형 도구를 시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신저와 앱, 음성 인터페이스, 문자, 푸시 알림까지 판매 접점이 다층화되는 만큼 소비자의 결정을 강력하게 끌어당길 수 있는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함이다. 뉴욕의 백화점 체인 블루밍데일스는 화상 통화와 라이브 채팅을 결합한 1대1 맞춤형 스타일 추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포시즌호텔앤리조트는 전용 앱에서 대화형 컨시어지 기능을 제공한다. 또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버크스포츠는 AI 챗봇으로 고객이 필요한 자전거와 관련 제품을 찾도록 돕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홈쇼핑 이후 유통 기업들이 새로운 매체를 시험해 온 과정의 연장선에 가깝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 들어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라이브 방송을 통해 상품을 실시간으로 소개하고, 시청자와의 채팅·즉각적인 반응을 기반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SNS 라이브는 기대했던 만큼의 대규모 전환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탐색·비교·질문·추천·결제를 하나로 이어 붙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끈 시도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대화형 커머스가 즉각 새로운 지배 채널로 굳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NRF와 IBM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AI 활용 의지를 분명히 보였지만, 브랜드 경영진의 54%는 채널·시스템 간 데이터 정합성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또 51%는 내부 AI 전문성 부족이 전환의 걸림돌이라고 지목했다. 대화형 커머스가 소비자의 선택 과정에 강하게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결제 신뢰나 비교 정확도, 데이터 연결, 채널 통합까지 한 번에 해결하기까지는 여전히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