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급 흔들리자 아시아 ‘탈석탄’ 시계 거꾸로, 석탄 의존 확대 속 장기 에너지 전략도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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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보다 더 큰 충격, LNG 공급 5분의 1 증발 韓·日 석탄발전 제한 완화, 대만은 석탄발전 재가동 단기적 석탄 확대, 장기 체질 개선 압박 요인으로

이란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충격이 아시아 전력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차질 우려가 겹치면서 아시아 각국은 다시 석탄발전 가동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다. 대만은 석탄발전 전력 구매를 재개했고, 중국은 석탄화학 투자 확대에 돌입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석탄발전 규제를 완화하며 비상 전력 확보 체제로 이동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發 LNG 쇼크, 亞 석탄 재가동
26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만 정부 소유 전력 공급업체인 대만전력공사는 지난달부터 마이랴오(Mailiao) 발전소의 석탄 발전 전력을 구매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들을 품은 대만은 전력 생산의 절반을 LNG에 의존하는 상태다. 지난해에만 LNG 수입량의 3분의 1을 카타르에서 조달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카타르 최대 LNG 수출 터미널 가동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공급망이 흔들렸다. 대만은 5월까지의 LNG 물량을 확보했고 6월 수요의 절반 정도는 계약을 마쳤으나, 추가 조달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즉 이번 조치는 LNG 공급 리스크에 대응하는 동시에 높은 가스 가격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석탄의 쓰임새를 바꾸는 전략을 택했다. 중국 최대 상장 석탄 기업 중국선화에너지는 올해 석탄 생산량을 오히려 0.6% 줄이면서, 남은 석탄을 태우는 대신 화학 원료인 올레핀(olefins, 플라스틱·섬유·용제의 기초 원료)으로 전환하는 설비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내년까지 연간 생산 능력을 현재의 2배인 140만 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배경은 원료 시장의 구도 변화다. 올레핀은 통상 석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나 액화석유가스(LPG)로 생산되는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들 원료 시장이 타이트해지면서 자국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의 경쟁력이 급등했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화학품 생산에서 석탄의 석유 대비 마진 우위가 2015년 이후 최대라고 분석했다.
남아시아 사정도 다르지 않다. 방글라데시는 3월 들어 석탄 발전량과 석탄 기반 전력 수입을 늘리고 있으며, 가스 공급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확충한 태양광 설비 덕분에 당시와 같은 대규모 정전 사태를 피하고 있지만, 국내 석탄 발전 확대와 수요 억제를 병행하고 있다. 인도 역시 석탄 수입을 늘리는 동시에 산업용 가스 소비를 줄이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정부 차원의 연료 전환 정책이 공식화되고 있다. 필리핀 에너지부 샤론 가린(Sharon Garin) 장관은 로이터통신에 “필리핀은 에너지 압박 속에서 석탄화력 발전량을 일시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개입이 없을 경우 필리핀의 다음 달 전기요금은 16% 정도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필리핀은 인도네시아에 석탄 안정 공급을 타진 중이다. 지난해 약 20년만에 처음으로 석탄 발전량이 감소했던 필리핀이 다시 석탄으로 돌아서는 셈이다. 베트남 국영 전력사 EVN은 LNG 절약을 위해 석탄 추가 도입 협상에 들어갔으며 태국도 자국 최대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는 한편 바이오연료 혼합률을 7%에서 10%로 상향했다.
한·일은 석탄 규제 완화
한국과 일본 역시 탈석탄 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3월과 4월 석탄 수입량은 882만 톤과 908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3%, 27.2% 증가했다. 3~4월 합산 수입량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2023년 3~4월(1947만 톤)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봄철인 3~4월 평년 초겨울 수준의 석탄 수입량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다. 석탄 수입은 냉난방 수요가 증가하는 여름과 겨울에 늘었다가 봄과 가을에는 줄어드는 패턴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LNG 주요 생산국 중 한 곳인 카타르의 불가항력 선언으로 LNG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대체에너지원인 석탄으로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실제로 3월 LNG 수입량은 전년 동월 대비 10.2% 감소한 데 이어 4월에는 14.6%나 줄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대기 질 보호를 위해 유지해 온 석탄화력발전소의 계절별 가동률 상한(80%)을 해제했다. 지난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제11차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올해 6월부터 폐쇄 예정인 하동 1호기와 보령 5호기, 태안 2호기 등 석탄발전소 3기에 대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LNG 공급 변동성을 상쇄하기 위해 원전 발전량도 늘리기로 했다. 석탄은 한국이 기존 발전 설비와 운영 경험을 활용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부족한 발전용 원유를 대체하기 쉬운 수단으로 꼽힌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한국과 유사한 산업·에너지 구조를 가진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을 높이는 긴급조치를 시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 원유 수입분의 90% 이상이 중동산이며, 이 가운데 70% 정도의 분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야 한다. 일본 NHK와 닛케이 등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1일부터 1년 동안 화력발전소에 가동률 제한을 풀어 에너지 쇼크에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정부는 다양한 경로로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석탄발전도 병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석탄 회귀와 동시에 커지는 에너지 자립 압박
다만 이번 석탄 회귀를 장기 흐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중동 의존 구조가 초래한 충격이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차 전환, 원전 재정비를 더욱 가속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제 에너지경제 분석기관들도 이번 사태를 에너지 전환 실패보다는 불완전한 전환 구조의 노출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LNG가 ‘브리지 연료’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은 정책 충격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아시아 각국은 석탄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사이의 과도기 연료로 LNG를 선택해 왔지만, 중동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자 LNG 가격은 단기간에 폭등했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LNG 중심 전환 전략의 취약성이 이번 전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실제 각국 정부의 정책 방향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추진했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전략 원자재와 전력망 안정 투자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에너지 안보 개념을 수정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역시 이번 중동 위기를 계기로 단순 탄소감축 수치보다 ‘공급망 복원력’ 자체를 정책 핵심 지표로 재설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은 이번 사태 이후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중국은 서부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초대형 태양광·풍력 단지 건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장거리 초고압(UHV) 송전망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인도는 배터리 저장장치(ESS)와 태양광 연계 프로젝트 인허가 절차를 단축했고, 베트남도 LNG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해상풍력 확대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석탄 소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장기 전략 축은 수입 화석연료 의존 축소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원자력 발전 재평가 움직임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단했던 원전 재가동 절차를 다시 가속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규 원전 건설과 수명 연장 논의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안정적인 기저전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 또한 공급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현실론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중동 위기 국면에서 원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전력 가격 변동성이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장치 산업도 안보 산업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탄소중립과 친환경 정책 중심으로 접근됐으나, 현재는 수입 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는 흐름이 강해졌다. 블룸버그 NEF(BNEF)에 따르면 아시아 주요국들의 ESS 투자 규모는 지난 2월 말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급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력망 안정용 ESS 구축 사업 역시 대폭 확대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가장 취약했던 간헐성과 저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